여성 노동의 역사를 밝힌 ‘셜록 홈즈’ 노벨상 받다

서영민 2023. 10. 1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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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아 골딘은 탐정입니다. 노벨 위원회 온라인 페이지에서 그는 '셜록 홈즈' 모자를 쓰고 있습니다. 오른손엔 돋보기를 쥐고, 왼팔엔 파일을 낀 상태입니다. 서류함 앞에 서 있는 그의 옆에는 리트리버로 보이는 개가 있습니다.

사실은 탐정이 아니고 경제학자입니다. 전 생애에 걸쳐 여성 노동시장이라는 주제를 연구했습니다. 주로 남성인 주류 경제학자들이 '알려하지 않고, 말하려 하지 않은 주제'죠. 그런데 탐정으로 묘사한 가장 큰 이유, '데이터가 없어서 연구할 수 없다'고 하면 창의적인 방법으로 우회로를 찾아내면서 장애물을 극복해왔기 때문입니다.

그 '새로운 내러티브'는 탄탄한 통계적 설득력을 갖췄습니다.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논리적 정합성이 있습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골딘처럼 '통계의 빈자리를 채우는 새로운 방법론'을 찾아나섭니다. 노벨 위원회는 이 성과가 추리소설같이 흥미로운 내러티브로 가득하다고 본 것 같습니다.

여성인 그에게 '여성 노동'이란 질문은 숙명적인 것이었습니다. 그가 이 질문을 던지며 평생에 걸쳐 쌓은 성과는 우리 인류가 '다 알지만 말하지 않아 왔고, 답이 없어 외면해온 문제'를 더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 기나긴 탐색의 여정을 전해드립니다.

■ 경제성장이 여성을 해방시켰다는 통념

‘남녀 불평등... 있지, 있는데... 경제가 성장해서 여성의 고용이 증가하였어’

남녀평등, 하면 우리는 흔히들 이렇게 생각합니다. 통념입니다. 골딘은 이 통념을 이렇게 반박합니다.

『성장이 여성을 불평등에서 해방시킨다구요? 웃기지 마세요. 지난 100년만 보면 그런 잘못된 결론에 도달할 수 있어요. 그러나 200년으로 기간을 넓혀보면 달라져요.

너무 오래전이라 여성 고용과 관련된 통계가 없다고요? 창의적으로 생각하세요. 그때는 집에 있으면 일 안 한다고 분류해서 통계가 없어 보이지만, 사실을 보려는 더 깊고 끈질긴 노력을 하면 다른 방식으로 그 통계의 빈틈을 메우는 새로운 숫자를 찾아낼 수 있어요.

그러면 뭐가 보이냐구요? 산업혁명 이후 200년 기간 가운데 첫 100년 동안은 사실 경제가 성장하는 동안 여성 고용이 급격히 감소했어요. 그리고 나머지 100년 동안 좀 회복했을 뿐이란 사실이 보이죠.

무슨 뜻이냐고요? 한 번 더 풀어드리죠. 경제가 성장하고 기술이 발전하면 자연히 여성이 해방된다(그 전에는 불가능하다.)는 사고방식은 틀렸다는 겁니다. 그런 결정론으로 단순하게 보는 건 잘못된 시각이에요. 단견입니다.』

여성 고용의 U 커브, 경제성장은 처음에는 결혼한 여성의 고용을 급격히 감소시켰고 20세기 들어서 증가시켰다




■ '줄었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남녀 임금 격차

고용률 말고, 남녀 임금 격차도 들여다보죠. 남녀 임금 격차에도 통념이 있습니다. ‘예전엔 컸지만, 이제는 줄어들어’라는 단선적인 설명입니다. 역시 ‘단견’입니다.

골딘의 연구에서 미국에서 임금 격차가 줄어든 시기는 3번 있습니다. 첫 번째는 1820~50년대, 2번째는 1890~1930년대, 그리고 3번째는 1980년대~2005년 정도입니다.

1, 2번째는 ‘산업혁명 초기여서, 행정 서비스 수요나 사무직 등 화이트컬러 수요가 급증해서’ 정도의 설명이 가능합니다만,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3번째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의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왜 80년대 이후 성별임금 격차가 급격히 해소되는 방향으로 역사가 전개되었는가? 그 자체가 중요합니다. 우리 시대의 이야기이기 때문이죠. 또 이 질문을 곱씹어보면 '그러면 왜 두 번째와 세 번째 격차 해소 사이, 그러니까 왜 1930~1980년대에는 임금 격차 해소가 상대적으로 더뎠는가?'라는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두 질문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왜 2005년 이후로는 다시 격차 해소가 더뎌지는 것인가? 왜 남녀가 평등하다고 모두가 잘 인식하고 있고, 또 여성의 고등교육 수준이 오히려 남성을 초과하는 이 시점에도 남녀 고용률 차이, 또 임금 차이가 사라지지 않는가? ②왜 격차는 여전히 남아있는가, 를 물어야 합니다.

1930~1980 : 이름 없는 문제, 혹은 진창 속의 작은 진실

골딘은 여기서 '모두가 알고 있지만 말하기 꺼리는 무엇'이 있다며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학자입니다.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는 이 '이름 없는 문제'를 Dirty Little Secret(진창 속에 있는 작은 진실)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 문제는 결혼입니다. 결혼과 출산, 그리고 육아가 여성 고용 격차에 심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우선 1930년대, 결혼한 여성의 사회 참여를 막는 '사회적 낙인이나 법률적 제약, 또 제도적 장벽'이 있었습니다. 골딘은 Marriage Bars라고 합니다. 결혼하면 일터에서 일하지 못하는 법률 제약, 사회-제도적 장벽으로 30~40년대 초반까지 여성은 일터로 나서지 못하고, 대우받지 못합니다.

당시 속박을 풀어준 것은 '경제성장'이 아닙니다. 전쟁입니다. 2차대전이 격화되며 전시 동원체제가 되자 막대한 군수물자가 필요하게 됩니다. 남자는 전쟁을 치르러 갔습니다. 여성이 공장으로 들어갔습니다.

2차대전 후반, 여성은 전쟁터에 나간 남성을 대신해 군수물자를 생산했다


물론 위에서 설명한대로, 이 시기 자체는 임금 격차 개선의 측면에서는 정체기입니다. 더 많은 여성이 노동의 현장으로 나왔어도 임금 격차는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사회 변화와 일치하지 않는 일입니다. 노동현장의 변화만 보면, 1950년대가 지나가면 사무직, 금융직에서 컨설팅 부문까지 여성이 업무성과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방향으로 산업 구조가 변화하기 시작했으니까요.

여성 자신의 기대, Women's Expectation

골딘은 여성 자신의 기대(Women's Expectation)라는 개념을 등장시킵니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여자는 “결혼 전에만 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경력을 오래 유지하는 경우가 드물었습니다. 여성은 이 환경에 맞춰 '스스로의 기대'를 형성합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교육에 많은 투자를 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인간은 주어진 조건이란 운명을 거스를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회적 상황이 변한 50년대가 되어도,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은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은 일입니다. 교육수준이 낮고 경험도 일천하기 때문이죠. 능력 개발을 위한 교육 투자는 이미 25~30년 전에 끝난 상태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50년대까지는 양육을 끝내고 노동시장으로 돌아온 중년 여성들의 경우, 임금 격차는 당연한 조건입니다.

이 여성들의 '딸 세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50년대 노동시장으로 돌아온 어머니 세대처럼, 이 딸 세대 역시 교육에 대한 투자 결정을 마친 상태입니다. (대학을 갈지 말지 결정은 지금도 그때도, 20살이 되기 전에 끝납니다) 세상이 변해서 여성도 더 길게 일하고 경력을 관리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건만, 엄마도 딸도 그 시대 주인공은 아니게 된 겁니다.

1970년대까지 여성의 고용률이나 상대임금이 남성보다 현저히 낮은 상황이 지속된 이유입니다.

'월급제' 노동 관행 정착도 한몫을 합니다. 과거에는 옷감 한 단, 연필 한 다스 만들어 오면 그 수량만큼 노동 대가를 지불하는 '과업 기반 임금제'가 대다수였습니다. 언제 만들든, 어디에서 만들든 물건만 만들어오면 됐죠.

공장 제조업은 다릅니다. 정확히 9시까지 출근해서 6시까지 엉덩이를 붙이고 생산 활동을 해야 합니다. 사장님은 자연히 '더 오래, 더 쉬지 않고 육체 노동을 할 수 있는 노동자를 우대하는 방식'으로 고용 관행을 가져갑니다.

결혼하면 살림을 해야 하고, 아이를 낳고 돌보아야 하는 여성을 차별하는 방식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2005~, 왜 아직도 임금 격차가 존재하는가?

그렇게 지연되긴 했지만, 여튼 사회 규범 변화와 함께, 또 노동시장 패턴이 새로워짐과 함께, 그리고 여성 교육수준이 점점 높아짐에 따라 남녀 임금 격차는 1980년대 이래 2005년까지 지속적으로 축소됩니다.

피임약도 한몫합니다. 이 이야기 들어보셨을 겁니다. 피임약이 여성의 독립적 선택과 직업 활동을 가능하게 한 '게임체인저'가 됐단 연구. 이것도 골딘의 연구입니다.

로렌스 카츠(배우자이고 경제학자입니다)와 함께 '미국의 주별로 서로 다른 피임약 허용 시점'을 이용해 그 영향을 계량적으로 살폈습니다. 그랬더니 피임약은 '여성의 결혼과 출산을 늦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또 경제학, 법학, 의학을 공부하는 여성의 수도 늘렸습니다. 미래를 스스로 계획하고 결정할 수 있는 힘이 피임약에서 나왔다는 겁니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입니다. 격차는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6월에 발표한 OECD 남녀 임금 격차를 보면, 여전히 평균 12% 수준입니다. 2005년 이후 개선세는 뚜렷이 느려졌습니다. 골딘의 관측입니다. (정말 대단한 학자입니다. 모든 시대 여성의 노동 관련 통계를 살피고 가공해서 상황을 지속적으로 진단합니다. 통계가 없으면 대체물을 만들어냅니다.)

왜 대졸 여성 비율이 남성보다 높은 21세기에 남녀 임금 격차가 존재하는가? 골딘은 Parenthood effect, 자녀 양육기 효과로 정식화합니다.


■ 비슷한 대학 나온 커플의 임금 격차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비슷한 대학을 졸업한 고학력 남녀의 취업 초기 임금은 비슷합니다. 그러나 10년이 지나면 달라집니다. 이유는 다시 한번 결혼입니다. 출산과 육아기를 거치면서 가사 일을 더 많이 해야 하는 여성의 근속연수나 임금이 줄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물론 남녀 차별하는 고용주가 존재하고, 그런 사람은 도덕적 지탄을 받아야 하지만 골딘이 집중하는 것은 도덕적 지탄이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나쁜 누군가의 의지'보다는 다시 한번 제도적인 배제의 작동 원리에 집중합니다.

골딘은 이를 위해 '탐욕적인 직장 Greedy Job'이란 단어를 사용합니다. 컨설팅이나 회계, 금융업 같은 고소득 직업군일수록 '직장에서 일하는 시간이 길수록' 임금은 불균형하게 급증(dispropotionally)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언제 어느 시간이고 부르면 나와서 일하고, 오버타임 노동을 불평하지 않을수록 임금은 불균형한(dispropotionally) 상승 곡선을 그립니다.

커플이나 부부는 이 상황에서 5:5의 노동 분담을 말하기 쉽지 않습니다. 한 사람에게 사회적 성공을 몰아주어야 산출 임금이 극대화됩니다. 지금까지는 그 노동의 집중이 주로 남성을 향했습니다. 골딘은 제도적으로 자리 잡은 이 탐욕적 상황을 해소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골딘은 코로나 19가 남녀 평등 차원에서는 새로운 전기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비대면 상황이 유연 노동을 가능하게 했고, 또 재택 근무를 확산시켰습니다. 굳이 멀리 이동하지 않아도 학회를 할 수 있고 경제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남녀 불균형을 해소하는 요소로 장기적으로 노동시장에 자리 잡을 것이라는 것이 골딘의 관측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골딘 덕분에 '지난 200년 간 여성 노동시장에서 벌어진 일'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됐습니다.

골딘은 멈추지 않을 겁니다. FT와의 인터뷰에서 남녀 격차가 여전히 남아있다(remaining residual gap)는 점을 강조합니다. 더 연구할 게 남았단 뜻이지요.

■ 우리나라는 어떻냐고요?

OECD가 지난 6월 발표한 세계 경제전망의 뒷부분을 보면 우리나라의 남녀 노동 격차를 선진국 평균과 비교해볼 수 있습니다. 남녀 고용률을 보면 OECD 평균(2021년 기준)은 14.7%p 차이가 납니다. 우리(KOR)는 17.5%p 차이가 납니다. 평균 이하입니다.


임금 격차는 훨씬 심각합니다. OECD 평균은 11.9%p이지만, 우리는 31.1%에 달합니다. 최하위입니다. 그다지 말을 보탤 필요가 없을 겁니다.


사실 고등교육을 받은 정도만 보면, 우리나라 여성은 세계 최고수준입니다. 아래 그래프의 빨간 세모가 고등교육을 받은 (Tertiary Education) 여성의 비율입니다. 초록색 네모는 남성 비율입니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여성이 더 높은 고등교육 수준을 기록하고 있고, 한국은 그 중에서도 가장 높습니다.


■ 경제학적 일반론 너머의 세계

경제학은 원자화 된 '개인의 선택'이라는 가정을 좋아합니다. 수요와 공급의 단순한 개념과 엄밀한 정확성을 가지고 세상을 설명합니다. 그 원리와 엄밀성은 학문적으로 아름답고, 또 세상 진보의 아주 많은 부분을 설명하기도 합니다. 경제학이 현대 자본주의 철옹성을 지키는 학문이 된 이유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주류 경제학'이 모든 걸 설명하지는 못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개인은 사실 원자화되어 있지 않고 크고 작은 집단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는 국가, 지역, 역사, 제도적 차이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한 정치, 경제, 사회적 불평등이 작동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논란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당면한 가장 큰 불평등 가운데 하나가 남녀 불평등입니다.

주류 경제학은 바라보지 않았지만, 역사적인 방식, 또 제도적인 방식으로 그 주류 경제학의 빈자리를 메워온 경제학자들이 있습니다. 일반론 너머의 세계입니다. 그리고 올해 노벨상은 그 ‘일반론으로 설명되지 않는 특수론’의 성과에 돌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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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민 기자 (seo01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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