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근에 1심보다 낮은 구형한 檢, 형량거래일까[판결왜그래]

김형환 2023. 10. 1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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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억 수수’ 징역 3년 구형한 檢, ‘이례적’
‘민주당 돈통부 사건’과 형량거래 의혹 제기
검찰·이정근 모두 부인…“사실이 아니야”
제도 도입 찬반…“효율적 제도”vs“부정거래”

[이데일리 김형환 기자] 플리바게닝(형량 거래). 피고가 유죄를 인정하거나 다른 사람에 대한 증언을 하는 대가로 검찰 측이 형량을 조정해주는 제도입니다. 미국·영국·프랑스 등에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법적 근거가 없는 상황으로 검사가 플리바게닝을 시도한다면 명백한 불법입니다.

사업가로부터 약 10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에 대해 검찰이 1심 판결(징역 4년 6개월)보다 낮은 징역 3년을 구형했습니다. 그럼에도 2심 재판부는 검찰의 구형보다 높은 징역 4년 2개월을 선고했습니다. 두 재판부에서 징역 4년 이상을 선고했지만 이례적으로 검찰이 두 차례 연속 징역 3년을 구형한 것을 두고 플리바게닝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청탁 대가 명목으로 사업가로부터 거액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 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이 지난해 9월 서울 서초동 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민주당 돈봉투‘ 단초 제공…플리바게닝?

이같은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는 이 전 부총장이 ‘더불어민주당 돈봉투 살포 의혹’의 핵심 증인이자 피고인이기 때문입니다. 이 전 부총장의 휴대전화에 담겨 있던 약 3만개의 녹음 파일은 이른바 ‘이정근 녹취록’으로 검찰이 민주당 돈통부 살포 의혹 수사를 시작할 수 있었던 단초가 됐습니다. 게다가 이 전 부총장이 지난해 9월 구속된 이후 지난 4월까지 총 42차례 검찰 출정조사를 받은 것으로 밝혀지며 플리바게닝에 대한 의혹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출정조사에서 변호인이 입회하지 않은 경우도 꽤 있었다는 뒷얘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검사 출신인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사실상의 플리바게닝 같은 게 좀 있지 않았겠냐”며 “10억대 금품수수, 알선수재면 제 감으로는 한 5년 정도 구형을 해야 마땅한 거 아닌가라고 보는데 3년 구형을 했다는 것은 ‘집행유예로 내주세요’라는 의미 아닌가”라고 주장했습니다. 즉 검찰의 구형이 이례적으로 낮았다는 것입니다. 징역 3년까지는 집행유예 선고가 가능합니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도 10억원 상당의 알선수재 혐의에 대해 징역 3년 구형은 낮은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10억원대 알선수재에 (징역) 3년을 구형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며 “검찰이 어느 정도 수사에 대한 협조를 반영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검찰은 이를 강력히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검찰은 “통상적인 구형기준에 맞춰 구형했으며 수사 편의는 전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1심 선고에 불복해 항소하지만 법리 오해를 다투기 위한 항소이지 구형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 전 부총장 역시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하게 부인했습니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지난달 4일 서울 서초구의 한 호텔에서 열린 ‘2023 서울 국제형사법 컨퍼런스’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대검찰청 제공)
제도 도입 찬반…“효율적 제도”vs“부정거래”

이같은 플리바게닝 제도를 우리 형사 절차에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 범죄가 고도화됨에 따라 수사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는데 플리바게닝을 도입한다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지난해 12월 “미국 형사절차의 95%를 차지하고 있는 플리바게닝 등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해 우리 검찰제도의 발전 방향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플리바게닝을 도입한다면 마약·조직적 성범죄 등 조직범죄의 실체를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조직범죄의 경우 말단 조직원이 체포될 경우 그가 입을 닫으면 실체를 파악하기 어려운데 플리바게닝 제도가 있다면 자연스럽게 서로가 서로의 감시자가 돼 실체를 파악하기 용이하다는 것입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금 당면한 재판 지연 제나 조직범죄를 해결하기 위해선 플리바게닝 제도 도입이 시급하다”며 “플리바게닝 제도가 없다보니 ‘우선 부인하고 보자’는 식의 분위기가 팽배한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해외 다수 국가에서는 플리바게닝 제도를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1971년 플리바게닝 제도 도입 이후 형사사건의 90% 이상을 플리바게닝으로 해결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일본·영국·프랑스·독일 등이 플리바게닝 제도를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명재 뉴욕주 퀸즈 카운티 검사는 지난 9월 서울 국제형사법 컨퍼런스에서 “플리바게닝 없이는 조직범죄를 뚫기 굉장히 어렵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범죄자와 수사기관이 부정적 거래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누명을 쓴 A정치인과 A정치인 관련 비리사건에 연루된 B정치인이 있다면 B정치인이 자신이 생존하기 위해 거짓 자백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 형사소송에서 검찰의 지위가 피고인에 비해 상당히 높은 상황에서 플리바게닝이 인정되면 자신이 수사할 사안을 피고인의 부담으로 떠넘기는 경우들이 생겨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이를 제어할 수 있는 수단이 마련돼야 플리바게닝 제도를 도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김형환 (hwani@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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