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은 부모님 간병… 60세 딸은 직접 요양원을 세웠다[서영아의 100세 카페]

서영아 기자 2023. 10. 15. 07: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임수경 보아스골든케어 대표

예고없이 닥쳐온 부모님 간병
노인의 삶이 삶인 채 존재하는
‘내 집’ 같은 요양원 꿈 꿔
‘효도 못 받는 첫 세대’가 될
동세대들 미래 위해서도 절실

15년 전 어느 금요일 밤. 어머니(당시 72세)가 좀 이상했다. 뇌졸중 전조증상이었지만 가족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다음날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12시간을 기다린 뒤에야 뇌자기공명영상(MRI)을 찍었다. 뇌경색으로 이미 왼쪽 뇌가 하얗게 변했다고 했다. 기나긴 간병생활의 시작이었다.

4년 뒤에는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아내가 투병생활을 시작한 뒤 마음 둘 곳 몰라하던 아버지는 어머니와 같은 병원에 입원하면서 차라리 편안해보였다. 그 뒤 대학병원과 요양병원, 재활병원을 옮겨다니는 부모님 간병이 이어졌다. 월 700만~800만 원 씩 들어가는 비용은 네 형제가 분담했지만 버거운 일이었다.

임수경 대표는 어르신들의 근력을 지켜주는 물리치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요양원에는 도합 100평 규모의 물리치료실을 갖췄다. 뒤에 어르신들이 타고 있는 전동자전거는 페달이 자동으로 움직여 어르신들의 몸이 굳지 않고 근력을 유지할 수 있게끔 도와준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임수경 보아스골든케어 대표(62)의 고민도 깊어갔다. 돌봄이 필요한 어르신들이 편하게 지내고 보호자에게도 힘을 줄 공간은 없는 걸까. 어디에도 없다면 내가 한번 만들어볼까. 마침 그가 8월에 낸 책 ‘우리 부모님은 요양원에 사십니다’(삼인)가 손에 들어왔다. 5일 그의 일터이자 ‘집’인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의 요양원을 찾았다.

잘 나가던 IT전문가, 요양원장이 되다

그는 잘 나가던 IT전문가였다. LG CNS 상무, KT 전무, 국세청 첫 여성 국장, 한전KDN 첫 여성 사장, 광주과학기술원(GIST) 이사장 등 공·사기업을 오가며 화려한 이력을 쌓았다. 이런 그가 인생 마지막 ‘사명’을 노인요양으로 정했다.

-요양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은 알겠는데 직접 요양원을 짓는 건 차원이 다른 도전이네요.
“아픈 부모님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요양원을 찾다가 이렇게 됐네요. 형제들 모두 바쁘게 생활하면서 부모님을 온전히 모시지 못했다는 죄책감도 작동했어요.”

형부가 마침 갖고 있던 현재의 부지를 내어줬다.여기에 어떤 요양원을 지을지 구상하던 2014년 그가 한전KDN 사장으로 발탁돼 전남 나주로 내려가게 되면서 프로젝트는 지연됐다. 2018년 임기를 마친 그는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양해를 구하고 부모님을 직접 모시기로 했다. 재활의료기기를 갖춘 집을 마련하고 간병 도우미도 구했다. 7년 만에 한 방에 누운 부모님은 깜짝 놀랄 정도로 즐거워했다. 늘 무표정에 가까웠던 어머니의 활짝 웃는 얼굴이 사진에 남아 있다.

같은 병원에 입원해있으면서도 남녀 병실에서 따로 지냈던 부모님은 임 대표가 집에서 직접 간병을 시작하면서 7 년만에 한 방에 누울 수 있게 됐다. 두 분이 기뻐하는 표정을 임대표 언니가 사진으로 남겼다. 임수경 씨 제공

“더 이상 해드릴 게 없습니다. 퇴원하세요”

노인성 질환의 특징은 분명 아프고 불편한데 병원에서는 더 이상 해결해줄 수 없다는 점이다. ‘더 이상 해줄 게 없다’니, 보호자 입장에서는 이보다 막막한 말이 없다. 그렇게 병원에서 내쳐진 노인이 갈 곳은 집이나 요양병원, 요양원 재활병원 중 하나다.

“이런 현실에 대해 최소한의 안내도 없는 경우가 많아요. 지금도 통탄스러운 게, 어머니가 처음 뇌경색으로 입원했다가 퇴원할 때의 정보부족이예요. 그때 의사가 ‘재활병원으로 가라’는 한마디만 해줬어도 어머니가 와상상태까지 가지는 않았을 거예요.”

뒤늦게 간병인의 귀띔으로 재활병원에 들어간 어머니는 재활치료 덕에 다리에 조금 힘이 생겼다.

요양원을 짓기 위해 설계만 14번 바꿨다. 10여 년간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아쉬웠던 점을 깨알같이 반영했다. 그에 따르면 원칙은 ‘노인의 삶이 삶인 채로 존재할 수 있는 집과 같은 곳’.
“단순 치료 외에 노인의 건강과 정서 상태에 따라 운동·인지·정서 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 예컨대 아버지가 운동 삼아 병실 밖에 나가려 하면 간병인이 막아섭니다. 혹시 넘어져 골절상을 입을까봐. 꼼짝 말고 침대에 누워있으라는 겁니다. 노인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가 대개 이래요. 늙고 병들었어도 여전히 오늘을 사는 사람이란 걸 간과하죠. 노인에게도 요양 돌봄 재활치료뿐 아니라 친구 여가 웃음 놀이 쉼이 모두 필요해요.”

한전 KDN 사장 시절 임수경 대표. 나주 본사 준공식 장면이다. 임수경 씨 제공

부모님 모시고 요양원서 생활

그렇게 2020년 4월 문을 연 요양원은 연면적 3000평에 침상 250개로 민간에서는 국내 최대 규모다. 4층짜리 2개동이 요양원이고 부속동에는 노인요양연구소와 채플을 넣었다.

개인생활과 공동생활의 균형을 갖추도록 ‘유니트 케어 시스템’을 도입했다. 유니트(이곳에선 ‘마을’이라고 부른다)마다 거실을 중심으로 주방이 있고 개인 침실이 배치된다. 한개 층마다 두개의 유니트 사이에 간호스테이션과 목욕실 등이 있다.

어르신들은 거실에서 이웃과 함께 식사하고 색칠놀이나 노래교실 등 프로그램을 공유한다. 반찬은 공동조리실에서 만들어오지만 밥은 거실마다 따로 짓는다. 밥짓는 내음으로 입맛을 돋우고 내 집같은 느낌을 살렸다.

공간이 널찍널찍하고 어디나 햇빛이 들어오도록 설계돼 밝다. 옥상정원과 텃밭 등 면회 온 가족들과 함께 즐릴 수 있다. ‘종사자들이 즐거워야 어르신도 즐겁다’며 마련한 편백나무 휴게실도 임대표의 자랑거리다.

현재 237개 침상이 가동중인데 2인실을 혼자 쓰며 추가비용을 내는 입소자들이 있어 빈자리는 없다. 간호사 요양보호사 등 정규직 종사자 160여 명이 이들을 돌본다. 임 대표는 개원 이래 부모님 옆방에서 생활한다.

건축비와 초기비용이 고스란히 대출로 남아 있는데, 침상이 꽉 차면서 이자를 낼 수 있게 돼 안도하는 중이라고.

어르신 스스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합치면 100평 규모인 두 군데 물리치료실에는 코끼리자전거와 전동자전거, 기립기, 적외선 치료기 등 노인에게 필요한 기기들을 채웠다. 그가 물리치료를 강조하는 이유는 부모님에게서 효과를 봤기 때문. 노인들이 근력을 키워 조금이라도 스스로 움직이는 것은 삶의 질과 직결된다. 자신의 힘으로 화장실에 가는 것만으로도 자존감은 크게 회복된다.

딜레마도 있다. 근력을 조금 키운 어르신들이 자신감이 붙어 혼자 움직이려다 넘어지는 사고가 적지 않다는 것. 고관절 골절을 입은 입소자가 수술까지 해 겨우 나았는데 방심한 사이 혼자 움직이다가 주저앉는 바람에 다시 수술한 경우가 있었다.

“얼마나 애써서 회복된 건데, 보호자께도 죄송하지만 저희가 더 속이 상했어요. 그런데 이 어머니는 조금 회복되니 또 움직이려 하세요. ‘어머니 근력 운동하시면 또 움직이려 하실 텐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여쭈면 보호자도 답을 못하세요. 저는 어르신이 자력으로 움직이기 원한다면 그래도 도와드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휠체어는 정말 못 일어나게 되면 그때 타시면 되죠.”

큰 요양원에서는 사고 위험을 피하기 위해 걸을 수 있는 어르신도 모두 휠체어에 태워버리는 경우가 많다. 안전과 걷는 능력, 어느 쪽이 중한지 섣불리 답할 수 없는 사안이긴 하다.

옥상 정원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어르신들. 실내에서 상태가 좋지 않은 어르신도 밖에 나오면 활력이 돌아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노래교실에 참여한 어르신들. 작은 몸짓이지만 율동을 따라하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집 대신 요양원’도 충분한 선택지

-요양원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이 적지 않은데….
“입소하는 어르신도 보호자도 마음의 짐이 크죠. 어르신들은 요양원 가는 걸 창피하게 여기고 보호자들도 부모봉양 제대로 못한다는 자책감을 가지세요. 하지만 어르신들이 조금만 마음을 열면 공동생활이 더 좋을 수도 있어요. 저는 ‘보호자들도 살아야 되는 거 아니냐’는 얘기도 많이 하죠. 제가 2년 정도 집에서 부모님을 모셨는데, 제 생활이 없었어요. 간병 도우미 2명 데리고 했는데 비용도 많이 들고요. 문제는 부모님께 ‘집에 있다’는 것 말고는 별로 해드릴 게 없다는 거예요. 아버지는 1년쯤 되니 ‘심심하다, 지루하다’ 자꾸 말씀하시더니 갑자기 치매가 오셨어요.”

-여기서는 어떻게 지내시나요?
“아버지는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산책도 많이 하고 남들 사는 모습도 보고…나름 사회생활이 가능하니 무척 좋아하세요. 어머니는 아버지가 곁에 계신 것만으로도 좋아하시고요. 틈만 나면 두 분이 손 붙잡고 계세요.”

-가장 힘든 일은?
“어르신들은 상태가 나빠지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들어올 때 괜찮았는데 왜 이렇게 되셨느냐’며 항의하는 보호자들이 계세요. 효심이 큰 분일수록, 내가 모셨어야 한다는 자책감이 강한 분일수록 더 그러세요. 죄송하다고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어요. 그런 일에 에너지 소모가 많습니다.”

따지고 보면 모두가 이미 ‘돌봄이 매우 필요하다’는 장기요양등급을 받은 어르신들이다. 시간이 흐르면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 인생 섭리가 그러한 것 아닌가.

-좋았던 일은?
“이제 보내드려야 하나, 생각했던 분이 회복되시면 힘이 나지요. 4월 병원에서 담석제거 수술을 받고 한달간 입원했던 99세 어르신이 복귀하겠다고 하시길래 보호자께 ‘요양병원쪽으로 알아보시는 게 좋겠다’고 권했어요. 저희는 병원이 아니니 임종을 놓칠 수도 있고 언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잖아요. 그런데 그 어머니가 ‘여기가 내 집’이라고 고집하신다는 거예요. 결국 제 방 옆방에 모시고 들여다봤는데 처음엔 음식을 잘 못드시더니 5개월 지난 지금은 스스로 휠체어 운전하고 다니세요.”

봄 산책에 나선 부모님은 휠체어를 타면서도 틈만 나면 손을 붙잡고 다닌다. 임 대표 말에 따르면 ‘자식들이 봐도 신기하다’고. 임수경 씨 제공

여생을 어디에서 보낼까

여생을 어디에서 보낼까에 정답은 없다. 세계적으로 ‘살던 곳에서 나이들기(aging in place)’가 붐이지만 각자 처한 여건도, 상태도 다르다. 부모 입장에서는 돌봄은 필요하지만 자식들 삶을 망가뜨리면 안된다. 자식 입장에서는 돌봄뿐 아니라 부모님 삶의 질도 생각해야 한다.

“어, 우리 아버지 춤춘다. 옆에 우리 어머니…”(임 대표)

방을 비운 임 원장의 부모님을 찾아 노래교실이 한창인 거실로 가봤다. 트로트에 맞춰 율동지도가 진행되는 현장을 보자마자 임대표는 아버지가 율동을 따라하시는 것을 반겼다. 거동이 부자유스러운 어르신들의 춤이란 게 강사의 지도에 맞춰 손을 움직이는 정도지만 몸이 리듬을 타고 있는 건 분명했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13개 마을을 돌며 인사드리고 ‘박수치기’ 같은 것을 함께 합니다. 어르신들과의 소통이 즐겁습니다. 지금이 너무 좋아요. 이곳을 만든 덕분에 저는 노후에 할 일을 얻었고 부모님은 안정되고 편히 지낼 곳을 얻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제 가족이 생의 마지막에 돌아와서 살 곳도 얻었지요.”

사실 그가 요양원을 세운 데는 본인 세대의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사명감도 크게 작동했다. “부모님 세대는 우리가 돌보면 되는데, 우리 세대는 그런 걸 기대할 수 없죠. 흔히 효도를 하는 마지막 세대, 효도를 못 받는 첫 세대라고 하잖아요. 우리가 갈 곳을 스스로 만들어야겠구나…이곳을 세운 뒤 제 형제나 친구들 모두 ‘더 나이들고 아프면 갈 곳이 있어 든든하다’고 말하고 있어요.”

포부는 노인 돌봄 복지 모델을 만드는 것. 요양원에서 다양한 사례를 모아 노인요양 서비스, 프로그램, 노인요양정책 등을 개발하는 데 힘을 실을 생각이다.

“어르신들은 살아온 삶에 대한 칭찬과 격려가 필요합니다. 공감하고 위로받는 분들이 많아져 어르신과 보호자들, 편치 않은 분들이 조금은 편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노래교실에 참여한 부모님(뒷모습) 앞에서 임수경 대표가 율동을 해보이고 있다. 두 분 모두 거동이 어려워 휠체어를 타야 하고 입으로 음식을 들지 못하지만 노래교실에 오면 조금이나마 노래나 율동을 따라하며 즐거워한다고 한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우리 부모님은 요양원에 사십니다’ 표지. 3년 넘게 요양원을 운영하며 겪은 얘기들이 진솔하게 담겨 있다. 임대표는 “보호자들이 읽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서영아 기자 sya@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