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불륜녀’ 꼬리표 떼고 이미지 변신 중인 영국 커밀라 왕비 [박영실의 이미지 브랜딩]
‘국민 비호감’ 이미지 개선 위해 꾸준히 노력
[박영실의 이미지 브랜딩]
영국의 국왕 찰스 3세와 함께 프랑스를 국빈 방문했던 커밀라 왕비가 프랑스 영부인과 탁구 대결을 펼치고 “영국은 언제나 프랑스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이자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프랑스어로 연설하는 등 새로운 모습을 선보이면서 본격적으로 세계 외교무대에 첫선을 보였다.
BBC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이 외국 정상으로는 두 번째로 찰스 3세의 초청을 받아 11월 영국을 국빈 방문할 예정인 가운데 그동안 불륜녀라는 부정적인 이미지였던 커밀라 왕비의 이미지 변신에 전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영국의 여론조사기관 유고브 조사에서 왕실 인사 중 인기 9순위로 알려졌던 커밀라 왕비는 영국 해리 왕자의 책에서도 ‘사악한 계모(wicked stepmother)’, ‘악인(villain)’ 등으로 표현된 바 있기에 긍정적인 이미지 브랜딩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사치 이미지에서 소박한 왕비로 변신 중
다이애나비로부터 찰스 왕세자를 빼앗은 불륜녀라는 이미지를 벗고 국민의 어려움을 헤아리는 왕비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시동을 걸고 있는 커밀라 왕비의 변신을 이미지 브랜딩 차원에서 분석해 보고자 한다.
이미지 브랜딩은 이미지 메이킹보다 포괄적인 개념으로, 개인이 자신의 인격·전문성·가치관 등을 포함한 개인적 특성을 강조해 자신의 브랜드를 구축하는 과정이다. 이는 개인의 취향·스타일·경력 등을 고려해 타인에게 이미지를 전달하고 인식을 구조화함으로써 목표를 달성하는 전략이다.
커밀라 왕비는 찰스 왕세자와 재혼했을 당시 한 번에 2만5000 달러의 수당을 받는 헤어 디자이너를 고용하고 명품 브랜드 옷과 가방을 구입하는 등 사치로 구설에 오른 바 있다. 대관식 관련 거리 파티와 지역 행사에서 제공되는 ‘빅런치’ 메뉴를 직접 선정하면서 심각한 생활비 위기를 겪고 있는 영국 국민 앞에 소박함을 선보였던 것 또한 이미지 변신 노력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탁구 외교와 프랑스어 연설로 반전 이미지 어필
커밀라 왕비는 영국과 프랑스의 관계 회복을 위해 국빈 방문 중 페미닌한 연핑크 코트 원피스룩을 선택하고, 51년 만에 열린 영국 왕실의 프랑스 베르사유 국빈 만찬에서는 디올의 블루컬러 가운 드레스를 선보였다.
2024년 파리 올림픽 무대가 될 생드니 지역의 한 커뮤니티를 방문한 커밀라 왕비는 브리지트 마크롱 여사에게 탁구 대결을 제안하기도 했다. 브리지트 여사가 이를 받아들여 시작된 탁구 대결은 영국 왕비와 프랑스 퍼스트레이디 사이의 유대를 보여줬을 뿐만 아니라 커밀라 왕비에게 부족해 보였던 밝고 건강한 이미지를 보완해주는 역할을 했다고 분석된다.
이어서 커밀라 왕비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브리지트 여사와 새로운 프랑스·영국 문학상을 제정하며 프랑스어로 연설한 뒤 자신의 프랑스어 실력이 “녹이 슬었다”고 말하며 겸손한 왕비의 태도를 보여주면서 비호감 이미지 개선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커밀라 왕비는 1947년 런던에서 평민 아버지와 남작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승마, 폴로 같은 귀족적인 취미를 즐겼으며 1971년 폴로 경기에서 찰스 3세를 만나 인연이 시작됐다.
하지만 1973년 찰스 3세가 군에 입대하며 멀어졌고 같은 해 커밀라 왕비는 왕실 기병대 소령인 앤드루 파커 볼스와 결혼해 두 자녀를 뒀다. 커밀라 왕비의 증조할머니가 찰스 3세의 고조할아버지(에드워드 7세)의 정부였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까다로운 찰스 3세를 진정시킬 수 있는 유일한 존재
지금까지 커밀라 왕비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변화된 대표적인 순간들이 있다.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북아일랜드에 있는 성을 방문해 방명록에 서명하다가 갑자기 짜증을 내는 장면이 언론에 포착됐다. 찰스 3세는 펜의 잉크가 흘러 손에 묻자 벌떡 일어나며 “오, 이런. 정말 싫어. 빌어먹을 펜을 참을 수가 없어. 한두 번도 아니고 말이야”라며 짜증을 냈다.
그러면서 옆에 서 있던 커밀라 왕비에게 늘 그래왔던 것처럼 펜을 툭 건넸다. 그사이 찰스 3세는 얼굴을 찌푸리며 손수건을 꺼내 자기 손에 묻은 잉크를 닦느라 바빴다. 까다로운 찰스 3세를 진정시킬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바로 커밀라 왕비라는 왕실 측근들의 말에 힘이 실리는 순간이었다.
커밀라 왕비는 보좌진이 와서 문제의 펜을 가져가자 별일 아니라는 듯 양손에 잉크를 털었다. 그러면서 혼잣말로 “(잉크가 흐르는 펜을 받아들고) 어머나, 사방으로 흘러내렸네”라고 하는 장면이 전파를 탔다. 1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장면이었지만, 커밀라 왕비가 찰스 3세를 어떻게 내조했는지 엿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찰스 3세는 엄격한 왕실 의무를 짊어진 탓인지 예민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찰스 3세의 짜증을 받아준 이는 지난 50여 년간 그의 곁을 지킨 커밀라 왕비였다고 영국 언론들은 보도했고, 이를 계기로 커밀라 왕비의 주홍글씨는 조금씩 옅어지기 시작했다고 분석된다.
패션 스타일을 통해 이미지 브랜딩 중
커밀라 왕비는 찰스 3세가 강조해온 환경 보호와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가치에 발맞춘 듯 대관식 드레스도 간소화된 디자인으로 비교적 검소하게 하고 18세기 이후 첫 ‘왕관 재활용’을 선택했다.
18세기 이후 대관식에서 새 왕관을 맞추지 않은 카밀라 왕비는 가끔 강렬한 레드컬러를 드라마틱하게 표현하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청록색 등 중성적이거나 파스텔톤의 패션으로 부드러워 보이면서도 품위 있는 이미지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리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디자인의 코트 드레스와 모자나 액세서리 등을 과하지 않게 활용해 왕실 패션 규칙을 유연하게 적용해 심플하면서도 우아한 스타일로 이미지 브랜딩을 하고 있다고 분석된다.
‘진정성’으로 왕비다운 이미지로 거듭나길
잘 관리된 이미지 브랜드는 긍정적인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재난을 관리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1996년 찰스 3세와 이혼했고 이듬해 프랑스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다이애나비를 기억하는 영국 국민에게 8년 후 치러진 찰스 3세와 커밀라 왕비의 결혼은 국민적 냉대를 받아왔다.
각종 스캔들로 추락한 이미지 회복을 위해 커밀라 왕비와 찰스 3세는 1995년 유명 홍보 전문가를 고용한 후 철저하게 계획된 일명 ‘리츠 작전’을 실행했었다.
1999년 런던 리츠칼튼 호텔에서 열린 한 생일 파티에서 처음으로 찰스 3세와 공식 석상에 함께 모습을 드러내며 공식적인 연인이 됐고 지금까지 이미지 변신 노력 중이다. 개인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는 7초의 시간이 걸리지만, 그 이미지를 바꾸는 데는 무려 70년이 걸리고 완전히 지우는 데는 700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만큼 이미지 변신은 어렵지만, 세계인들의 차가운 시선들을 견디고 53년 만에 영국의 왕비가 된 만큼 ‘거짓’이 아닌 ‘진정성’을 바탕으로 왕비다운 이미지로 거듭나기를 기대해본다.
박영실 퍼스널이미지브랜딩랩 & PSPA 대표·명지대 교육대학원 이미지코칭 전공 겸임교수
Copyright © 한경비즈니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