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 장비가 지금도 있다”, 낡은 무기 여전히 쓰는 한국군 [박수찬의 軍]
K2 전차, 무인정찰기, 무인수상정, 현무 탄도미사일…. 지난 1일 국군의날 75주년 기념행사와 시가행진에서 모습을 드러낸 한국군의 첨단 무기들이다.
한국군은 이에 그치지 않고 음속의 5배가 넘는 속도로 날아가는 극초음속미사일, 드론을 요격할 레이저무기 등의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북한과 주변국을 압도할 첨단 무기들이 늘어나는 모양새다.
하지만 군은 노후 장비의 세부 운용현황과 퇴역 시기 등을 밝히지 않고 있다. 세부 사항을 국회에 제출했던 1년 전과는 180도 달라진 모습이다.
국회에 자료를 제출하는 절차가 올해 들어 바뀌면서 군사보안이 강조되는 기류가 뚜렷해진 것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예산 심의·의결권과 자료요구권을 지닌 국회 요구에 충실히 응하고, 노후 장비를 계속 사용하는 것에 대한 국민의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내구연한을 넘어선 장비의 규모와 퇴역 시점 등을 국민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차·곡사포·미사일까지 내구연한 초과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이채익 의원이 군 당국에서 제출받은 군단급 이상 부대의 내구연한 초과 장비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상·함정·항공장비 중에서 내구연한이 지난 것들이 상당수 있었다.
함정분야는 울산급 호위함(FF), 포항급 초계함(PCC), 참수리급 고속정(PKM), 기뢰탐색함(MHC)이 내구연한을 넘어섰다. 항공장비는 F-5E 전투기와 헬기(500MD, AH-1S, BO-105, CH-47D)가 포함됐다.
군 당국은 세부 수량과 퇴역 시기를 비롯한 구체적인 사항은 공개하지 않았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노후 장비 운용 규모와 폐기 일정 등을 제출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지난해 공개됐던 것과 비교하면, 해병대 M48A3K 전차는 올해 드러난 내구연한 초과 장비 대상에서 제외됐다. 내구연한이 25년이었던 M48A3K는 90㎜ 주포를 사용하는 전차로 1970년대부터 한국군에서 쓰였다.
하지만 내구연한을 초과하면서 노후화가 심각해졌고, 실질적인 전투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이를 대체한 장비가 국산 K1E1 전차다. 실시간 전장 정보를 공유하는 전장관리체계를 갖췄고, 조종수 열상 및 전후방 감시카메라로 주변 위험을 인지한다. 기동 중에도 2000~2500m 떨어진 표적을 공격할 수 있다.
1964~1995년 도입됐던 M48A5K 전차는 내구연한(25년)을 넘었지만, 완전히 퇴역하진 않은 상태다. 지난해 기준으로 400여대가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노후화가 심해지면서 2011년에는 대당 연평균 정비비가 전차를 유지했을 때 얻는 이익인 잔존가치를 넘어섰다. 계속 쓰면 손해란 뜻이다. 2018년에는 잔존가치가 ‘0’이 됐다. 기본 작전 수행도 쉽지 않은 전차가 남아있는 셈이다.
이와 관련해 방위사업청은 지난 5월 국산 K2 전차 4차 양산계획을 확정했다. 내년부터 2028년까지 1조9400억원을 들여 150여 대의 K2 전차를 만든다. K2 전차가 추가 배치되면 기갑전력의 현대화는 한층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1950~1978년 도입된 M101 105㎜ 곡사포는 지난해 기준으로 1500여문이 있다. 내구연한이 25년을 훨씬 초과했다. 트럭에 탑재하는 K105A1이 상비부대에 보급됐고, 기존 버전은 예비군용이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951~1981년 들여온 M114 155㎜ 곡사포도 동원부대 등을 중심으로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고폭탄과 연막탄, 조명탄 등을 사용할 수 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성능을 과시한 M777 등의 곡사포에 비하면 구형 장비로 분류된다.
1975년 도입된 토우 대전차미사일도 내구연한(25년)을 넘겼다. 1990년대 프랑스에서 대량으로 들여온 미스트랄 휴대용 지대공미사일도 내구연한(20년)을 초과한 상태다.
국내 방산업계가 이를 대체할 수 있는 현궁 대전차미사일과 신궁 휴대용 지대공미사일을 개발한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남아있다.
함정 분야에선 지난해 내구연한 초과장비로 분류됐던 장보고급 잠수함(SS-Ⅰ)이 올해는 포함되지 않았다. 성능개량사업의 영향으로 해석된다.
장보고급 성능개량사업은 해군 장보고급 잠수함 전투체계와 탐지센서를 개량하는 사업이다. 통합전투체계를 국산화해 기존보다 동시표적분석·추적, 수중 음향탐지, 수상 표적탐지 등이 향상됐다.
1980년대부터 국내 건조된 울산급 호위함(FF)은 내구연한이 30년이다. 광개토대왕급(KD-1) 구축함 등장 전까지 해군의 주력함이었지만, 고강도 해상작전에 자주 투입되면서 노후화가 심해졌다. 악천후를 버티는 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졌으며 대공방어력도 부족했다.
같은 시기 건조된 포항급 초계함(PCC)도 내구연한(25년)을 초과했다. 현재 해군은 이같은 문제를 해소하고자 차기 호위함을 지속적으로 건조하고 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방어작전을 맡는 참수리급 고속정(PKM)도 지난해 기준으로 35척이 내구연한(25년)을 초과했다. 신형 검독수리급 고속정(PKMR)이 있지만, 기존 수량이 많아서 일선에서 당분간 활동할 전망이다.
지난해 내구연한 초과장비에 포함됐던 UH-1H 해상기동헬기는 올해 포함되지 않았다. 국산 마린온 상륙기동헬기와 수리온 헬기 양산에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이들 기종은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개발중인 소형공격헬기(LAH) 등으로 교체될 예정이다. 조종사 훈련을 위한 기초훈련헬기는 벨 텍스트론이 만든 Bell 505 헬기가 쓰일 계획이다.
F-5E는 1970년대 도입한 기종과 1982~1986년 국내 생산한 기종이 있다. 국내 생산 기준으로도 30년 이상 쓰인 셈이다. 이르면 국산 KF-21 양산이 본격화하는 2020년대 후반부터는 일선에서 순차적으로 물러날 전망이다.
내구연한을 초과한 장비들이 군에 남아있는 것은 다양한 측면에서 문제점을 낳을 수 있다.
첨단장비도 내구연한을 넘어서서 운용하면 고장이나 결함이 잦아질 수밖에 없다. 이는 정비에 소요되는 시간을 늘린다. 그만큼 훈련에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
서류상으로는 충분한 수량의 장비를 갖고 있다 해도 정비 횟수가 잦다면 전투부대로서 임무 수행을 준비하기가 어렵다.
노후 장비를 예비군용으로 전환해도 문제는 남는다.
현역 시절 K2 전차나 K9자주포를 비롯한 첨단 국산 무기를 운용한 예비군 장병들에게 M48A5K 전차나 M114 곡사포를 사용하라고 한다면, 운용교육과 훈련을 따로 실시해야 한다. 그만큼 전투 투입에 시간이 걸린다. 부품을 비롯한 보급 문제도 있다.
이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것을 방지하려면, 무기 도입을 추진할 때부터 퇴역 시기 등을 예측해 대체장비 도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전투기나 헬기를 포함한 중화기는 대체장비를 구하지 못하면 퇴역시킬 수 없다. 새로운 무기를 제때 도입하지 못한다면, 내구연한을 초과해서 기존 장비를 사용하게 된다.
이는 사고 위험을 높여 장병 안전을 위협하고 국방비 지출을 늘리면서도 전투력은 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첨단 무기 개발 못지 않게 노후 장비의 신속한 퇴역이 중요한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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