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AE·사우디 등은 전쟁 위험 없어... 산업 다변화는 韓기업에 기회” 중동 전문가의 조언
UAE·사우디 등 중동 경제 중심국은 안전
석유 의존도 낮추는 경제 구조 다변화 중
기술력 좋은 韓기업에 기회의 장 열린 셈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시작된 양측의 충돌이 점점 격해지는 모양새다. 이 여파로 각국의 안전자산 선호 심리는 커졌고, 자본시장은 흔들렸다. 12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만난 마크 나심(Marc Nassim) 아와드캐피털(Awad Capital) 파트너는 그러나 “중동 내 일부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확대됐다고 해서 중동 전체 시장에 깔린 투자 기회를 외면해선 안 된다”고 했다.
나심 파트너는 딜로이트 중동 금융자문서비스 고객과 시장 부문 책임자, AR 인베스트먼트 파트너스 파트너, 달 알 말(Dar Al Mal) 기업 개발 책임자 등을 거쳐 2015년 아와드캐피털에 파트너 겸 매니징 디렉터로 합류한 중동 투자 전문가다. 아와드캐피털은 2013년 설립된 인수·합병(M&A)과 자본 조달 자문사로,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본사가 있다.
UAE·사우디 같은 중동 경제의 중심 국가는 팔레스타인과 달리 매우 안전한 나라라는 게 나심 파트너의 설명이다. 그는 “현재 중동 주요국들은 국가 경제에서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을 줄이고, 경제·산업 구조를 다변화하려고 한다”며 의료·교육·관광·문화·테크 등의 분야에서 한국 기업이 수많은 투자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또 중동 국가들이 청정에너지 확대 정책을 펼치고 있어 원전 협력 수요도 이어질 것이라고 나심 파트너는 말했다.
다음은 나심 파트너와 일문일답.
-윤석열 정부는 중동과 경제 협력 강화에 힘쓰겠다고 했다. 한국 기업들의 기술력이 현지에 잘 적용되고 있다고 보나.
“UAE나 사우디아라비아의 많은 도시에서 한국산 자동차를 쉽게 볼 수 있다. 10여년 전만 해도 이렇지 않았다. 걸프 지역 국가뿐 아니라 레바논에서도 한국산 차량을 많이 사용한다. 내게 형제가 둘 있는데, 두 사람 모두 기아 브랜드 자동차를 탄다. 중동 많은 지역에서 한국 자동차를 탄다는 건 그만큼 제조 경쟁력과 품질이 뛰어나다는 의미 아니겠는가.
건설 분야에서도 삼성·현대·대우를 비롯한 한국의 많은 건설사가 UAE·사우디·카타르 등에서 굵직한 건설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다. 두바이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부르즈 칼리파) 공사를 삼성물산이 한 건 유명한 이야기다. 보건 분야 협력도 활발하다. 최근에는 서울아산병원이 2026년 두바이 헬스케어시티Ⅱ에 65병상 규모의 소화기전문병원을 설립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한국에선 지나치게 높은 중국 의존도를 낮춰 새로운 공급망 질서에 대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중국 의존도를 낮췄을 때 중동 국가들이 그 빈자리를 채우기에 적합하다고 보는지.
“중동 국가들의 산업 구조나 경제·지리적 여건이 중국과 많이 달라서 중국의 자리를 대체할 수 있다고 말하긴 힘들 듯하다. 예컨대 중동은 중국이 과거 한국에 제공해 온 값싼 노동력을 이어받을 위치에 있지 않다. 오히려 그 역할은 인도가 더 잘할 것이다. 중동은 그 자체로 무궁무진한 기회의 영토이기에, 한국도 중동 시장 곳곳에 널린 기회 포착의 측면에서 다가가는 게 낫다고 본다.”
-문제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충돌과 같은 중동 지역 내 지정학적 리스크다.
“현재 벌어지는 전쟁 상황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다만 이곳에서 크고 작은 충돌은 지난 3000년 동안 계속 발생했다. 나는 특정 지역에서 전쟁이 일어났다고 해서 중동 시장 전체를 포기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중동은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의 길목에 위치했다. 전 세계 원유의 40%가 수에즈 운하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다. 글로벌 경제 지도의 한가운데 있는 셈이다.
특히 UAE·사우디 같은 중동 경제의 중심 국가들은 자국민에게나 외부 투자자에게나 매우 안전한 나라다. 이들 국가는 미국·중국·인도·러시아 등 주변 많은 나라와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또 경제·산업 구조의 다변화를 시도하고 있으므로 한국은 이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한다고 본다.”
-경제·산업 구조의 다변화를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현재 중동 주요국들은 국가 경제에서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을 줄이려고 한다. 한국이 중국 의존도 낮추기에 한창이라면, 중동은 그 대상이 석유인 셈이다. 우리는 석유 가격이 치솟는 오일 붐(boom)이 한 번 찾아오면, 그다음엔 가격이 푹 꺼지는 오일 쇼크(shock)가 다가온다는 걸 역사적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현시점에서 중동의 가장 중요한 경제적 과제가 ‘다변화를 통한 경제 회복 탄력성 강화’인 이유다.
다변화 시도의 대표적 사례를 꼽자면 UAE의 ‘We the UAE 2031′ 비전이 있다. UAE는 현재 3500억디르함(약 130조원) 수준인 비(非)석유 부문 수출 규모를 2031년까지 8000억디르함(약 300조원)으로 확대하는 걸 목표로 한다. 또 2031년까지 산업 부문의 국내총생산(GDP) 기여를 1330억디르함(약 48조원)에서 3000억디르함(약 100조원)으로 두 배 늘리고, 관광객 4000만명을 유치해 관광 부문의 GDP 기여도도 같은 기간 4500억디르함(약 165조원)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한국 기업으로 수많은 투자 기회가 파생될 것이다.”
-최근 중동 국가들의 관광 홍보 영상을 자주 접하는데, 같은 맥락인가.
“그렇다. 중동의 경제 다변화 시도에서 관광은 큰 부분을 차지한다. 한국인들은 중동하면 사막이나 두바이에 있는 초고층 빌딩, 이슬람 사원 등을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실은 비종교 관광 자원도 다양하게 존재한다.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사우디 관광청 등은 매년 수십억달러를 투자해 관광지 개발과 홍보에 주력하고 있다. 이를 통해 향후 7년 동안 관광 산업의 GDP 기여도를 3%에서 10%로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관광지 개발에는 편의시설 건설 등의 인프라 구축 수요가 뒤따른다.
또 한국의 K팝 문화도 중동 지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인기 아이돌 그룹 ‘블랙핑크’가 사우디에서 콘서트를 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일은 실제로 일어났고, 수많은 인파가 콘서트장을 찾아 블랙핑크 노래를 따라 불렀다.”
-우리에게 중동 산유국은 석유 수출로 떼돈을 버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래서 솔직히 석유 의존도를 굳이 낮출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우선 기후 변화 대응에 동참한다는 측면이 있다. 탄소중립은 전 세계 국가가 동참하는 이슈인데, 중동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사우디가 인프라 투자와 함께 재생에너지 산업 육성에도 주력하는 이유다. 사우디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용량을 58.7기가와트(GW)까지 확대하는 목표를 세웠다. UAE도 에너지 믹스에서 청정에너지 비중을 50% 이상으로 키우는 걸 목표로 설정한 상태다. 한국은 UAE에 바라카 원전을 수출한 나라이지 않나. 중동에서 청정에너지 확대 정책을 지속한다면 원전 협력 수요는 앞으로도 발생할 것이다.
그리고 ‘오일머니’ 이미지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 현재 유가가 배럴당 85달러 정도 선에서 움직이고 있는데, 이 정도로는 사실 수익을 내기 힘들다. 즉 유가가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지 않으면 중동 국가의 재정 상태도 취약해진다는 의미다. 사우디도 최근 수년간 재정적자를 경험했다. 올해는 흑자 전환을 예상하지만, 내년에는 다시 적자가 예상된다. 석유 의존도를 낮추려는 중요한 이유다.”
-한국에서 교육·헬스케어 등의 분야 스타트업이 많이 나오고 있다. 이들의 중동 진출 기회가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데, 해줄 말이 있나.
“산업 구조 다변화를 위해 헬스케어·교육·인공지능(AI) 등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또 스타트업에 대한 벤처투자도 확대하고 있다. 우수한 기술력과 서비스로 무장한 한국 스타트업 창업자들에게 중동은 매력적인 시장이 될 것이다.
중동 시장에 도전해 성공하는 창업가를 종종 본다. 반대로 실패하는 케이스도 자주 본다. 중동에서 성공한 스타트업의 공통점은 현지화에 많은 노력을 투입한다는 사실이다. 중동에 수시로 방문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현지에 사무실을 차리고 현지인을 채용하는 정성을 쏟는 기업이 오래간다. 현지에서도 그런 기업을 더 인정하고 거래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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