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계약직, 공무원과 수당 차별 정당” [민경진의 판례 읽기]
국도관리원들, 임금 청구 소송 패소
[법알못 판례 읽기]
공공부문에 종사하는 무기계약직 노동자(공무직 노동자)들이 공무원들과의 차별적 처우를 시정해달라며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최종 패소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무기계약직’이 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판단하는 요소 중 하나인 ‘사회적 신분’에 해당하지 않고, 공무원과 동일한 노동자 집단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전원합의체는 “피고가 공무원에게 지급하는 가족수당, 성과상여금 등을 원고들에게 지급하지 않은 것이 근로기준법이 금지하는 차별적 처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사실상 원고 측 청구를 기각했다.
1·2심 공무직 ‘사회적 지위’ 인정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23년 9월 21일 무기계약직 노동자 18명이 정부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결정한 원심을 그대로 확정했다. 전원합의체는 대법관 13명 중 7명의 다수의견으로 이같이 선고했다.
원고들은 국토교통부 산하 지방국토관리청 소속 국도관리원들이다. 국도관리원은 도로의 유지·보수와 과적 차량 단속 업무를 맡는 무기계약직 노동자다. 이들은 정근수당, 성과상여금, 가족수당, 직급보조비, 출장 여비 등 국토교통부 소속 운전직 및 과적 단속직 공무원들이 받는 수당과 출장 여비를 지급받지 않고 있다.
이에 원고들은 자신들이 공무원들과 유사한 업무를 수행함에도 공무원이 받는 수당 등을 지급받지 못하는 게 차별적 처우에 해당한다며 정부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근로기준법 제6조는 ‘사용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원고들에 대한 처우가 근로기준법 제6조의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한 차별적 처우로 인정받으려면 차별의 사유가 되는 원고들의 지위가 사회적 신분에 해당해야 한다.
또 원고들이 지목하는 비교 대상자가 원고들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비교집단에 속해야 한다. 그동안 법원은 노동자 차별에 관한 소송에서 차별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원고들이 지목하는 비교 대상 노동자가 원고들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비교집단에 속해야만 차별을 인정해왔다.
1심은 원고들의 무기계약직 노동자 지위가 근로기준법 제6조의 사회적 신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에게 공무원 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게 차별적 처우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차별적 처우가 성립하려면 ‘비교 대상’이 있어야 하는데, 공무원들이 비슷한 업무를 수행한다고 해서 무기계약직 노동자의 비교 대상은 아니라는 취지다.
1심 재판부는 “원고들과 운전직 및 과적 단속직 공무원들은 동일한 비교집단에 속하지 않으므로 처우를 달리한 데 합리적 이유가 있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2심 재판부도 1심 판단을 그대로 유지했다.
“공무원은 공무직 비교 대상 아냐”
대법원도 전원합의체 대법관 7명의 다수의견으로 원고 측 상고를 기각했다. 다수의견 대법관들은 “개별 근로계약에 따른 고용상 지위는 공무원과의 관계에서 근로기준법 제6조가 정한 차별적 처우 사유인 ‘사회적 신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 사건의 또 다른 쟁점인 ‘비교 대상’에 대해서도 “공무원이 국도관리원의 비교 대상 집단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수의견 대법관들은 공무원은 헌법이 정한 직업공무원제도에 따라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와 공법상 신분 관계를 형성하고 청렴의무, 종교 중립의 의무 등 여러 법률상 의무를 부담하며, 정치 운동이나 집단행위도 금지되는 등 일반 노동자보다 무거운 책임과 윤리성을 요구받는 특수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근무조건도 예산을 고려해 법령으로 정해지고 공무원의 노동3권 행사 역시 법률로 제한되는 반면 일반 노동자들은 특별한 법적 제한이 없는 점도 근거가 됐다.
공무원 보수가 근로의 대가라는 성격 외에 안정적인 직업공무원제도의 유지를 위한 정책적 목적을 지닌 점도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는 이유로 제시했다. 공무원 업무의 변경 가능성과 공무원 봉급이 공무원의 종류, 계급, 직급, 호봉 등에 따라 결정되는 점도 업무 내용에 유사한 부분이 있다고 해서 같은 처우를 보장해야 한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였다.
별개 의견을 제시한 권영준 대법관은 “무기계약직 노동자의 지위는 사회적 신분에 해당하고, 공무원을 비교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권 대법관은 “무기계약직 근로조건의 틀은 법령과 정책에 따라 형성된 측면이 있고, 근로를 제공하는 동안 그 체계에서 쉽게 벗어나기 어렵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무기계약직 노동자인 원고들의 지위는 사회적 신분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근로기준법 제6조의 비교 대상성은 차별로 문제 되는 처우의 내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유동적이고 상대적 개념”이라며 “논리적 전제이므로 그 문턱을 너무 높이지 않고 가급적 너그럽게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피고가 원고들에게 각 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것에는 합리적 근거가 있으므로 손해배상책임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민유숙·김선수·노정희·이흥구·오경미 대법관은 반대의견을 냈다. 이들 대법관은 “비교 대상 노동자는 같은 종류의 업무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인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공무원을 비교 대상 노동자로 삼을 수 있고, 무기계약직 노동자라는 고용상 지위는 사회적 신분에 해당한다”고 봤다.
이어 “피고가 원고들에게 가족수당과 성과상여금을 지급하지 않은 것에는 합리적 이유가 없으므로 피고는 위 각 수당에 상당하는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가족수당은 공무원의 종류, 직급, 업무의 내용과 관계없이 오로지 부양가족의 존재와 수에 따라 일률적으로 지급되므로 원고들에게만 지급하지 않은 것은 합리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성과상여금에 대해서도 “근무성적, 실적 등이 우수한 사람에게 지급하는 급여 항목인데, 원고들에게 업무실적과 성과에 따른 보상을 받을 기회를 전혀 부여하지 않은 것은 합리적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번 판결은 국가와 근로계약을 체결한 무기계약직 노동자가 공무원을 비교 대상자로 해 근로기준법 제6조에 따른 차별을 인정할 수 있는지에 관한 첫 대법원 판례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 판결은 근로기준법 제6조의 차별이 문제 되는 사안에서 일반 노동자에 대한 공무원의 비교 대상성을 부정하고, 공무원에 대한 관계에서 무기계약직과 같은 개별 근로계약에 따른 고용상 지위는 사회적 신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며 “근로기준법 제6조의 적용 범위를 명확히 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했다.
[돋보기]
무기계약직 차별 소송 일단락
이 사건 1·2심에서 무기계약직을 ‘사회적 신분’으로 인정하는 취지의 법원 판단에 대해 한동안 논란이 일었다.
그동안 유사한 쟁점을 다루는 다른 사건의 하급심에선 무기계약직을 사회적 신분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선 무기계약직의 차별 대우를 둘러싼 소송 리스크가 증가할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8부는 2023년 5월 고용노동부 등에 근무하는 약 1000명의 무기계약직 노동자가 “수당을 덜 지급하는 것은 차별”이라고 주장하며 정부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당시 재판부는 “무기계약직은 근로기준법 제6조에서 차별금지사유로 정하고 있는 사회적 신분이 아니다”며 “공무원은 비교집단에 속하지 않으므로 차별 주장을 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서울중앙지법 제41민사부도 2022년 12월 국립대, 정부 부처 등 9개 기관 소속 공무직 노동자 387명이 정부를 상대로 낸 임금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하면서 “무기계약직은 근로기준법이 정하는 사회적 신분에 해당하지 않고, 공무원과 동일한 비교집단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이 사건 상고심에서 전원합의체가 공공부문에 종사하는 무기계약직 노동자의 사회적 지위와 공무원에 대한 동일성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논란이 정리된 셈이다.
민경진 한국경제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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