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펌의기술](120)“투자하고 회수는 못 한다니” 제주국제학교 대리한 지평, 도교육감 상대로 승소 이끌어
도교육청 ‘잉여금 사용 불승인’으로 못 회수
지평, 법과 충돌하는 도교육감 회계규칙 지적
法 “110억 회수해야”…국제학교 승소로 확정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 사이에 최근 유행처럼 번지는 말이 있다. ‘제주도로 유학 보내면 된다’는 말이다. 정확히는 제주도에 있는 국제학교를 보내면 된다는 뜻이다. 한국 땅에서도 미국 교과과정을 밟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영어교육도시에는 이런 국제학교가 4곳 있다. 모두 제주특별법(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에 근거해 설립됐다. 제주도는 2008년부터 제주특별법에 따라 대정읍에 영어교육도시를 조성하고, 국제학교를 유치하기 시작했다.
특별법의 취지는 차별화된 교육 여건을 마련해 해외 유학으로 인한 국부 유출을 막는 것이다. 제주국제학교는 이 취지를 톡톡히 살렸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11년간 제주국제학교가 유학 수요를 흡수하면서 절감한 외화 유출은 1조를 넘어선다.
뛰어난 교육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 만큼 제주특별법은 ‘영리법인’의 국제학교 설립과 운영도 허용했다. 영리법인이 개입된 만큼 잉여금 사용도 가능하게 했다. 법인이 학교 설립 목적으로 투자한 돈이 남을 경우 다시 회수가 가능하도록 했다.
그러나 제주도교육청에서 정한 국제학교 회계규칙은 잉여금 사용이 가능한, 즉 투자금에 따른 이익을 회수할 수 있는 기간에 제한을 뒀다. 제주도교육감이 국제학교 설립계획을 승인한 날부터 국제학교 등기를 마친 날 사이에 이뤄진 투자에 대해서만 잉여금 사용이 가능하도록 정한 것이다.
한국국제학교 제주캠퍼스(이하 제주국제학교) 운영법인 Y사를 대리한 법무법인 지평은 이 같은 규칙에 의문을 제기했다. 제주도교육감을 상대로 낸 ‘잉여금 사용 승인 거부 취소 소송’에서 승소해, 설립계획 승인 이전 투자금과 등기일 이후 투자금에 대해서도 학교 설립 목적을 위해 쓰였다면 잉여금을 가져올 수 있도록 선례를 남겼다.
◇ 제주특별법 취지에 반하는 ‘국제학교 회계규칙’ 한계 드러내
사건은 제주도교육감이 Y사의 잉여금 사용 승인을 거부하면서 불거졌다. 국제학교 회계규칙은 제주도교육감이 잉여금 사용을 승인해야 돈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교육감이 Y사가 신청한 5개 항목의 잉여금 사용을 불승인하면서, Y사는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제주도교육감은 Y사가 잉여금 사용을 신청한 5개 항목이 시기상 승인이 불가능하다고 명시했다. 회계규칙에서 정하는 설립계획 승인일~국제학교 등기일(2012년12월31일~2013년8월23일) 사이에 투자 집행된 항목이 아니므로 잉여금 사용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Y사를 대리한 지평 측은 불승인을 받은 항목이 ‘무엇을 위한 투자였는지’를 강조했다. 경비가 쓰인 목적이 ‘학교 설립목적’임을 강조한 것이다. 제주특별법이 명시한 ‘학교 설립목적’을 위한 투자에 대한 잉여금 사용임을 법정에서 설명했다.
실제로 Y가 잉여금 사용을 신청한 투자 항목은 ▲고등학교 부지에 관한 토지매매대금 ▲고등학교 교사 설계 용역대금 ▲고등학교 교사에 관한 추가공사 용역대금 ▲고등학교 운동장에 관한 토지매매대금 ▲브릿지(다리) 시설에 관한 공사 용역대금 및 각종 비용이었다. 모두 학교 설립 목적을 위해 집행된 투자금이었다.
◇ “투자 집행 시기와 학교설립 목적은 무관”… 승소 확정
국제학교 회계규칙 자체를 지적한 지평은 1·2심에서 투자 집행시기와 학교설립 목적이 무관하다는 것에 집중했다. 박성철(연수원 37기) 변호사는 “직관적으로 생각했을 때 설립계획 이전이나 등기 이후에 돈을 썼다면 학교와 관련 없이 썼을 수 있다는 판단에 규칙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 설립 과정 상의 사정을 보면 투자 집행 시기가 학교 설립 목적과 꼭 연관이 있지는 않다는 점을 어필했다”고 했다.
2011년 9월 개교한 제주국제학교가 이 경우에 해당했다. 당시 초등학교, 중학교 과정만 있던 제주국제학교는 첫 졸업생이 고등학교 과정으로 진학해야 하는 2013년 9월에 맞춰 고등학교를 설립해야만 했다.
학교를 처음으로 짓는 것이므로 설립계획 승인을 받기 위해선 부지를 확보해야만 했다. 설립계획 승인일 이전에 토지 매매대금을 지불해야 했던 것이다. 등기 이후에 집행된 투자도 마찬가지다. 중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그해 9월 고등학교 입학을 하기 위해선 완공 이전에 고등학교 등기를 마쳐야 했다. 이 때문에 등기일(8월 23일) 이후 학교 설립 목적의 투자금(운동장 매매대금)이 집행된 것이다.
재판부는 지평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광주고등법원 제주제1행정부는 제주국제학교 운영법인이 제주도교육감을 상대로 제기한 ‘잉여금 사용 승인 거부 처분 취소’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피고가 상고를 포기해 이 판결은 확정됐다. 재판부는 브릿지 시설에 관한 투자금을 제외한 4개 항목에 대해 제주도교육청이 약 110억원대 잉여금 사용을 승인해줘야 한다고 판시했다. 브릿지 시설의 경우 학교회계가 아닌 법인회계로 집행된 항목이므로 회계 규칙에 따라 잉여금 사용 승인을 제한한다고 판결했다.
대부분 항목에 대해서 재판부는 “원고가 경비를 집행한 이유 및 목적을 살펴볼 때 이 사건 처분(잉여금 사용 불승인)은 위법성이 인정되므로 처분을 취소하라”고 밝혔다. 회계규칙에 따른 처분이더라도, 학교 설립 목적에 부합하게 쓴 잉여금이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인정한 것이다.
제주국제학교를 대리한 박성철(연수원 37기)·유성욱(로스쿨 5기) 변호사는 “국제학교가 처음 생기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한 법과 규칙의 충돌을 설명하고, 이 경우 법률에 따라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점을 설득하는데 주력했다”고 밝혔다. 이어 “국제학교는 초중등교육법이나 사립학교법을 그대로 따르지 않으므로, 국제학교의 많은 부분을 정하는 제주도특별법 및 잉여금의 특수성을 설명하는 것에도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박 변호사와 유 변호사는 “제주도에서도 국제학교가 추가적으로 유치될 수 있고, 강원도 등에서도 국제학교를 유치하기 위한 특별법 마련에 힘쓰는 만큼 특별법의 구체적 조항과 규칙의 관계와 의미를 설명하는 선례가 되길 바란다”며 “법원에서 설시한 내용과 취지가 교육감 규칙 등에도 반영되길 바란다”고 승소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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