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즐거움] 시간에 쫓기는 이도, 글 읽기 어려운 이도...모두 다 책 속으로 풍덩

황지원 2023. 10. 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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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북의 세계
성우의 생생한 연기와 효과음 덕에
생동감 넘치고 몰입감 절로 높아져
집안일·운전하면서도 ‘독서’ 삼매경
시각장애인·노인 등에게도 좋은 벗
오디오북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오디오북을 감상할 수 있다

책에는 ‘읽다’라는 동사가 늘 짝꿍처럼 따라다닌다. 그런데 최근에는 글자를 읽지 않고도 책을 접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이 주목받고 있다. 성우의 목소리를 들으며 또 다른 감각으로 책을 즐기는 ‘오디오북’도 한 예다. 오디오북 제작 현장을 찾아 만들어지는 과정과 그 매력 등을 알아봤다.

서울 마포구에 있는 미디어창비 녹음실에서 신범식 성우가 오디오북을 녹음하고 있다. 김원철 프리랜서 기자

“모르는 이의 죽음을 보고, 듣고, 말하며 그 끝을 지켜보는 일. 감당해본 적, 아니 상상해본 적조차 없는 유형의 일이었다.”

서울 마포구에 있는 미디어창비 녹음실에선 신범식 성우의 오디오북 녹음이 한창이었다. 출판사 창비의 자회사로 2009년 세워진 미디어창비는 지금까지 2500종이 넘는 오디오북을 만들어왔다. 창비의 베스트셀러나 외부 출판사의 의뢰가 들어온 책을 오디오북으로 제작한다. 오늘의 책은 변재원 인권활동가가 쓴 ‘장애시민 불복종’이다. 신 성우는 낮지만 부드러운 목소리로 책을 읽어나갔다. 그 덕분에 장애인의 인권운동을 다룬 어려운 책이 편안하게 들렸다.

녹음 부스 밖에선 피디(PD)가 앉아 녹음에 잡음이 섞이진 않는지, 글자를 틀리게 읽진 않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PD는 오디오북 제작의 모든 과정을 통솔한다. 먼저 책 내용을 분석해 적합한 성우를 선정한다. 보통 성우 성별은 책 속 화자의 성별에 맞추고, 동화책의 경우 아이 목소리를 내기 위해 여성 성우가 참여한다. 5년째 오디오북을 제작하고 있는 권성열 PD는 “이용자가 책에 몰입할 수 있도록 책 분위기에 어울리는 성우를 섭외하는 걸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녹음이 끝났다고 오디오북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다음엔 PD의 시간이 시작된다. 오디오북에서는 성우 목소리뿐 아니라 배경음악·효과음도 청자가 책을 생생하게 느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때로는 PD가 효과음을 직접 만들기까지 한다. 듣는 것만으로도 청자의 머릿속에 책 장면이 펼쳐지는 효과를 낸다. 제작·기획부터 녹음·편집까지 성인용 오디오북 한권이 완성되는 데엔 15∼20일이 걸린다.

요즘에는 사람 목소리 대신 인공지능(AI)을 이용해 오디오북을 만드는 사례가 늘었다. 성우 녹음에 드는 시간과 비용이 줄어 오디오북 시장이 커지는 데 일조했지만 여전히 한계는 있다. 먼저 AI로는 감정을 표현하기 어렵다. 성우는 즐거운 내용은 밝게, 슬픈 내용은 어두운 목소리로 읽을 수 있지만 AI는 스스로 책 내용을 판단해 읽는 톤을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다. 또 AI가 만들어낸 음성은 발음과 어조, 띄어 읽기에서 어색한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로서’라는 조사는 [로써]로 읽는 게 자연스럽지만 AI는 표기 그대로 [로서]라고 발음한다. 이런 단어를 편집을 통해 일일이 고쳐야 하기 때문에 AI 오디오북은 성우가 녹음한 오디오북에 비해 편집 작업에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오디오북 PD는 기획부터 녹음, 배경음악을 포함한 편집까지 제작 전 과정을 담당한다.

오디오북의 매력은 무엇일까. 많은 오디오북 이용자가 눈이 피로하지 않다는 것을 장점으로 꼽는다. 또 책을 집중해서 읽을 필요가 없으니 집안일을 하거나 운전하면서 오디오북을 들을 수 있는 점도 좋다. 정미은 미디어창비 디지털사업팀장은 “출퇴근 시간에 오디오북 이용률이 가장 높다”고 언급했다.

성우의 생생한 연기와 적절한 배경음악은 책을 글로 읽을 때보다 몰입감을 높인다. 전북 전주에서 법학전문대학원을 다니는 이경동씨(26)는 “책 읽는 걸 좋아하는데 시간이 나질 않아 다른 일을 하면서도 들을 수 있는 오디오북을 찾게 됐다”며 “특히 소설을 들을 때 성우가 등장인물의 대사를 생생히 연기해줘 단순히 책을 읽는 것보다 훨씬 생동감이 있다”고 전했다.

오디오북은 글을 읽는 데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시각장애인이나 눈이 침침한 노인, 언어장애인의 자녀 등 사회적 약자에게 오디오북은 좋은 친구이자 스승이다. 국립장애인도서관 누리집에선 장애인 회원을 위해 오디오북 약 3000권을 무료로 제공한다. 미디어창비는 아동용 도서에 근거리무선통신(NFC) 칩을 넣어 스마트폰을 갖다 대면 자동으로 오디오북이 재생되는 ‘스마트더책’ 서비스를 선보였다.

전문가들은 오디오북 시장의 미래가 밝다고 입을 모은다. 7월 미국 출판산업 데이터 분석기관 워드레이티드(WordsRated)는 전세계 오디오북 시장규모가 2022년 53억달러(7조원)에서 2030년 350억달러(47조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에서도 오디오북 시장규모는 2019년 171억원에서 2020년 300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이런 추세에 맞춰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오디오북 제작 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정 팀장은 “오디오북이 아직은 대중적이지 않지만 웹소설·웹툰·이북(e-book) 등 온라인을 통한 독서가 자리 잡은 것처럼 오디오북도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며 “신체적 어려움을 가진 경우는 물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오디오북을 통해 책을 쉽게 접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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