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즐거움] 인생 책 찾아볼까…개성만점 책 속에서

서지민 2023. 10. 15. 06: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독립서점 전북 군산 ‘마리서사’
책방지기 취향대로 책 선정하고 판매
구석구석 환경·여성 주제 서적 많아
편집·디자인 다양…구경 재미 ‘쏠쏠’
지역 명소 입소문…주말 관광객 북적
주중엔 주민들 모여드는 사랑방 역할
저자와의 만남·단편문학 공모 등 행사

‘좋은 책은 평생 친구’라는 말이 있다. 날이 선선해지는 가을이 오면 그동안 미뤄뒀던 독서에 대한 열망을 실현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최근엔 독서 방법도 다양해져 책을 가까이하기가 더 쉽다. 길을 걸으며 오디오북을 듣고, 버스 창가에 앉아 전자책을 켠다. 여행을 다니며 전국 독립서점에 들러보는 것도 특별한 재미일 듯. 평소 접하지 못한 책을 만나는 셀렘이 가득한 가을을 만끽해보자.

전북 군산 ‘마리서사’에는 책방지기가 선정한 1000권이 넘는 책이 비치돼 있다.

2017년 문을 연 전북 군산시 월명동의 독립서점 ‘마리서사’를 찾았다. 1920년 지어진 적산가옥을 개조한 곳으로 지금도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책방이다. 쌓아둔 책 뒤편으로 보이는 고즈넉한 나무 창살과 문지방을 밟을 때마다 ‘끼익’ 소리를 내는 바닥에서 예스러움이 느껴진다. 50㎡(15평)가량 아담한 넓이에 벽면 가득 가지런히 꽂힌 1000권이 넘는 책을 보니 얼핏 조선 후기 즈음 활동하던 지식인의 서재에 우연히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든다. 군산의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명소로 입소문이 나 전국 각지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도 적지 않다.

‘마리서사’는 100년 전 세워진 적산가옥을 개조한 책방으로 외관에서부터 예스러움이 묻어난다.

독립서점은 책방지기의 취향대로 책을 선정해 판매하는 소규모 책방이다. 특정 장르·주제만 취급하거나 작가가 직접 기획·저술·편집·유통하는 독립출판물을 적극적으로 소개하는 등 독립서점마다 특색이 있다.

‘마리서사’ 곳곳에도 책방지기의 손길이 묻어 있다. 환경·여성을 주제로 한 책이 많고, 몇몇 책에는 책방지기가 손수 써놓은 추천 문구가 붙어 있다. 감동적인 책 속 한 구절을 필사해 책장 곳곳에 쪽지로 남겨두기도 했다.

임현주 책방지기(54)는 “조용한 동네를 찾다가 귀촌하게 됐고, 이곳의 감성과 어울리는 책방을 운영하고 싶단 생각에 문을 열게 됐다”며 “대형 서점에서 쉽게 살 수 있는 베스트셀러보다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나 정치적·성적 소수자의 목소리를 담은 책에 관심이 많아 관련서적을 최대한 취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실제로 책장에는 책방지기의 안목이 담긴 ‘여자사전’ ‘일그러진 몸’ ‘우만플러그, 군산’ 등이 가지런히 꽂혀 있다.

책방지기는 매일 새로운 책을 주문하고 각 책의 배치를 고민하며 책방을 운영한다. 군산=김병진 기자 fotokim@nongmin.com

“찬찬히 책장을 살피다보면 숨은 진주를 발견하듯 내게 꼭 맞는 책을 찾을 때가 있어요.”

수많은 책 속에 둘러싸여 갈 곳 잃은 듯 엉거주춤 서 있자 책방지기가 적막을 깨고 말을 건넨다. 독립서점엔 온라인·대형 서점에 필수로 있는 도서검색기가 없다. 책방지기에게 본인의 취향을 설명한 후 책을 추천받아도 좋고, 무작정 손이 가는 책을 골라보는 것도 방법이다. ‘책이 다 똑같지’라는 생각은 오산이다. 직접 들어보고 만져보면 각각의 책이 지닌 개성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독립서점엔 편집과 디자인이 다양한 책이 비치돼 있어 재미있다. 두께가 아주 얇아 순식간에 훌훌 읽는 책, 겉표지를 천으로 덮어 포근한 느낌을 주는 책, 글꼴이 둥글둥글 귀엽고 사진이 많은 책 등 구경만 해도 시간이 훌쩍 흐른다.

서점을 둘러보다 여기저기 붙어 있는 ‘사진 촬영은 안돼요’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대부분의 독립서점에서 강조하는 에티켓이다. 규모가 작은 독립서점은 재고를 많이 구비해놓지 않아 책 손상을 가장 우려한다. 사진을 찍다보면 책장이 구겨지거나 찢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또 책을 단순히 사진의 배경으로 소비하는 일을 경계하기 위해서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책방 내부를 배경 삼아 사진 몇장 찍고 돌아가는 관광객도 적지 않다. 집중해서 책을 읽는 사람들이 방해받지 않도록 특단의 조치로 써 붙여둔 것.

“딸랑.”

책방 문이 열리고 서너명의 손님이 연이어 들어온다. 소근소근 책방지기와 근황을 주고받는다. 단골손님 가운데 한명은 쑥스럽게 웃으며 구매한 여러권의 책을 들어 보인다. 그는 “언젠가 다시 독서모임도 재개했으면 좋겠다”며 “책 읽고 느낀 소감을 나누며 늦은 시간까지 깊은 대화를 했던 기억이 너무 소중하게 남아 있다”고 귀띔한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주말과 달리 주중의 독립서점은 지역주민들이 모여드는 사랑방 같은 곳이다. 새로 들어온 신간을 서로 추천하하고 감명 깊게 읽은 책을 공유하며 정보를 주고받기도 한다. 종종 책방지기가 기획한 ‘저자와의 만남’ 등 프로그램이 있는 날이면 한적했던 책방이 발 디딜 틈 없이 북적거린다. 최근 ‘너무 한낮의 연애’ ‘경애의 마음’을 쓴 김금희 작가와 ‘애쓰지 않아도’나 ‘밝은 밤’으로 큰 사랑을 받은 최은영 작가 등 인기 작가들의 강연이 열려 인근 지역에서도 팬들이 모여들었을 정도로 호응이 컸단다.

뒤편 구석에 붙은 포스터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초단편’ 세 글자가 크게 쓰여 있다. 초단편은 올해 ‘마리서사’가 진행한 단편문학 공모 프로젝트다. 얼마 전 당선작 발표까지 끝냈고 곧 선정작을 묶어 책을 발간할 예정이다.

독립서점마다 각자 특색 있는 콘텐츠를 만들려고 머리를 싸매는데 ‘마리서사’ 역시 다르지 않다. 이전에 했던 프로젝트 가운데 가장 인기 있었던 건 ‘탁류-군산 에디션’이다. 군산을 배경으로 쓰여진 소설 채만식의 ‘탁류’를 현대식으로 편집해 발간했다.

책장에 꽂힌 책을 훑어보면 주인의 취향이 한눈에 보인다. 비슷한 장르, 겹치는 주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독립서점에 들러 다른 곳에서 구하기 어려운 책을 접하다보면 그만큼 자신의 독서 세계가 넓어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이번 가을여행 목적지를 독립서점으로 정해보는 것은 어떨까.

Copyright © 농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