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뮤 이찬혁·수현과 방송인 조나단·파트리샤 밈으로 본 ‘K-남매의 표상’[이진송의 아니 근데]
2023년 8월 말, 악뮤(AKMU·구 악동뮤지션)가 컴백했다. 이찬혁과 이수현의 남매 듀오인 악뮤는 뛰어난 음악성 외에도 두 사람의 확고한 캐릭터와, 티격태격하는 관계성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남매 듀오라는 특성이 주는 재미가 있어서, “싸우면 엄마한테 불려가는 그룹”이라거나 “서로 싫어하는 그룹 1위”, “해체해도 집에서 만나는 그룹”, “팀 내에서 그 어떤 분열이 일어나도 팬들 모두가 이해해주는 그룹”이라는 댓글이 달린다. 독특하고 심오한 감수성의 소유자인 이찬혁과, 톡톡 튀는 발랄한 이수현의 케미는 ‘K남매’ 밈의 대표적인 얼굴이다. ‘현실남매’를 검색하면 악뮤가 자동으로 뜰 정도. 하지만 세상사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고, 심지어 이들 남매가 보여주는 관계성 또한 다양하고 입체적이다. 그런 면모들은 ‘밈’이라는 납작한 틀에 다 담을 수 없다.
9월, MBC 예능프로그램 <전지적 참견시점>에 출연한 이찬혁은 조금 어색해하면서, 그러나 주위의 놀림에도 굴하지 않으면서 이수현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물론 이수현의 일상을 관찰하는 영상에서는 동생과 만나도 서로 인사 정도는 가볍게 무시하는 ‘찐남매’력을 뽐냈지만 이 장면이 주는 울림이 있었다. 하나 더, 이찬혁이 솔로 활동에 집중하는 동안 다소 난해한 퍼포먼스로 주목을 받았다. 제스처나 행동이 ‘지디병’에 걸렸다며 여러 의미로 온라인상에서 화제몰이를 하기도 했다. 좋게 말해 화제몰이지, 대대적인 놀림거리였다는 것이 맞는 표현이다. 그에 대해 언제나처럼 이수현이 ‘디스’해주기를 바라는 대중의 반응을, 이수현은 딱 잘라 거절한다. ‘무엇을 기대하는지는 알겠지만, 그분은 나와 많이 다른 사람’이며, 존중하고 이해한다고 말했다. 이찬혁의 돌발 행동에 놀라거나 질색하는 이수현의 반응 또한 악뮤의 콘텐츠 중 하나였지만, 어디까지나 방송상의 재미와 활기를 더하기 위한 차원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한 것이다. 이것은 ‘그렇게 싸워대지만 결국은 가족’이라는 진부한 가족주의의 관점이 아니라, 오랫동안 함께 협업을 해온 사람끼리의 신뢰 관계와 존중의 맥락에서 봐야 한다. 남매라는 사실에 종종 가려지지만 두 사람은 오랜 시간 팀을 지켜온 프로 뮤지션이다. 남매라서 팀이 어쩔 수 없이 지켜졌다고 하기엔, 이미 세상에 너무나 많은 가족 간의 동업 잔혹사가 있기 때문에….
악뮤는 2012년 <케이팝 스타 시즌 2>를 통해 알려졌다. 그로부터 벌써 11년이 흘렀다. 앳된 얼굴로 등장해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던 이 ‘천재 남매 듀오’가 성장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전 국민이 지켜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치 출연하는 배우들이 12년간 촬영을 같이 이어가며 주인공의 성장을 찍은 영화 <보이 후드>처럼. 그사이 두 사람은 다채로운 음악을 시도하고 실험하며, 악뮤와는 다른 자신만의 색깔과 정체성을 탐색하기도 하고, 각자에게 주어진 과업을 해내는 등 바쁘게 살아왔다. 그동안 당연하게도 어떤 부분은 고유한 그 사람이면서 또 어떤 부분은 변화했고, 관계성 또한 변했다. 이찬혁이 군대에서 제대한 후 <아는 형님>(JTBC)에 출연했을 당시 이수현은 떨어져 있다 보니 예전과 달리 애틋함이 생겼다고 말하기도 하고, 이찬혁은 “악뮤가 잘되려면 수현이 위주로 가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관계는 변하기 마련이다. 10대 때 데뷔해 투닥거렸던 그들이 지금 달라진 것은 당연한데도 여전히 두 사람이 출연하면 방송에서는 그런 반응을 기대하며 몰아간다. ‘찐남매’나 ‘현실남매’는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고, 틱틱거리고, 무심하고 무례해야 하며, 그렇지 않은 남매, 이를테면 다정다감하고 사이좋은 남매는 이상하다고 보는 시선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가수 최예나는 오빠 최성민이 다정다감해 ‘비현실남매’라고 불리는데, 이들의 관계에는 항상 “예나가 어릴 때 많이 아파서, 특히 소중히 여겨서 그렇다”라는 설명이 따라붙는다. 사이좋은 남매는 ‘그냥’은 안 되고, 누구 하나 크게 아팠다는 사연이 있어야 납득이 되는 분위기랄까?
누군가를 돌려 까는 맛을 혈육에게 외주 주는 안전함이나
나만 이렇게 사는 게 아니네 하는 공감의 맛도 짜릿하다
하지만 쉽사리 어떤 것이 ‘찐’이고 ‘현실’이라고 규정할 때
누군가의 현실은 ‘비현실’과 ‘이상함’의 경계로 굴러떨어져
대표적인 현실남매 국가대표(?)로, 조나단&파트리샤(이하 ‘조&파’) 조합을 빼놓으면 서운하다. 방송인 조나단의 인기를 견인한 요소 중 하나는 동생인 파트리샤와의 케미이다. 조&파는 외국인이지만 옷을 두고 싸운다거나 서로를 꼼꼼하게 디스하는 모습이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는 공감을 사서 ‘K남매’로 확실한 자리를 잡았다. 조나단과 파트리샤의 영상을 요약해 올린 MBC 유튜브 영상 섬네일의 자막은 “누가 봐도 K-남매”, 제목은 “한국인보다 더 찰진 말빨로 싸우는 현실남매”이다(이러한 한국화가 조나단과 같은 외국인을 어떻게 길들이는지에 대해서는 다음에 이야기하기로 하자). 파트리샤가 메이크업하는 장면에 조나단이 더빙한 <오빠ㅅㄲ가 더빙한 흑인 메이크업> 영상은 조나단의 유튜브 영상 중에서 가장 히트를 쳤다. 오빠를 ‘오빠ㅅㄲ’라고 표현하거나, 파트리샤의 일거수일투족에 깐죽거리며 딴지를 거는 조나단의 코멘트가 많은 시청자의 심금을 울렸다. 실제로 방송을 함께할 정도면 상당히 친밀하다는 뜻이지만, 주로 부각되는 것은 이런 티격태격이다.
사실, 남매의 친밀성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근친상간 금기가 관여한다. 서로를 이성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증명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K남매의 관계성을 강조하는 콘텐츠는 집에서 우악스러운 누나/동생을 강조하여 상대를 탈여성화하고, 오빠/동생에게서는 졸렬함이나 무례함을 강조해 탈낭만화하려는 시도가 일관되게 관찰된다. 생활을 함께하다 보면 가족의 밑바닥을 보기 마련이지만, 남매의 경우 서로 다른 성별이기에 발생할 수 있는 성적 긴장감을 없애는 것이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4>(tvN)에서 쓰레기(정우)는 나정(고아라)과 아직 러브 라인이 아닐 때, 나정의 속옷을 침대에 널어놓는 장난을 친다. 이 장면은 두 사람이 친남매는 아니지만 친남매처럼 자랐다는, 성적으로 무결한 사이라는 알리바이로 기능한다. 하지만 친밀함이 곧 성적 긴장감을 유발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문제의 뿌리는 ‘이성 간의’ 친밀함과 다정함을 곧장 성적인 의미나 가능성으로 전환하는 감수성, 성적으로 가능성이 없는 관계는 무뚝뚝하고 불친절한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 관계의 다양한 감정과 양상을 허용하지 않는 문화에 있다.
한편 K남매에는, 사이좋기 힘든 지정학적 조건이 개입한다. ‘K’가 붙는다는 것은 한국적이라는 뜻이고, 가족 관계에 한국적 특성이 있다는 것은 유교적 배경이 작용한다는 의미이다. 바로 남아선호사상과 장유유서의 서열문화, 그리고 차별적인 양육환경의 컬래버! 대체로 ‘장남’인 오빠는 여동생에게 ‘연장자+남성’이라는 권력을 가지기 때문에 폭력적으로 굴기 쉽다. 이때 적절하게 양육자들이 개입하지 않으면 권력의 추가 기울어져, 지배하는 오빠와 시중드는 여동생의 구도가 만들어진다. 어릴 적 나는 ‘오빠’라는 존재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오빠 있는 친구들이 짓던 표정은 얼마나 환멸에 차 있었는지! 레진의 웹툰 <단지>는 오빠에게 당한 가정폭력을 그린 만화로, 연재 당시 독자들로부터 엄청난 공감을 받았다. 또한 가부장제 사회에서 오빠는 연장자 남성으로서 여동생의 섹슈얼리티를 ‘단속’할 자격을 부여받고, 여동생의 남자친구나 성경험, 흡연과 음주 여부에 참견하기도 한다. 여동생을 감시하는 오빠의 밈은 미래의 사위를 경계하는 딸바보 밈과도 같은 맥락에 있다. 누나·남동생의 조합은 여성이 연장자이기 때문에 확률적으로는 상황이 조금 나은 편이다. 물론 이 또한 가정의 상황에 따라, 남동생이 누나를 때리는 하극상을 방치하는 경우 암울하기는 마찬가지지만. 오빠·여동생 조합에서 여동생은 나이가 더 어린데도 밥을 차리는 것처럼 집안일에서 연장자인 오빠를 돌봐야 하는 경우가 많아, 이중적인 가정의 약자다. 그렇게 부정적인 감정과 기억이 쌓이면, 성인이 되었을 때 데면데면하다 못해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는 사례가 허다하다.
사소한 걸로도 투닥거리고 서로를 공격하는 K남매 밈은 재미있다. 누군가를 돌려 까는 맛을 혈육에게 외주 주는 안전함이나, 나만 이렇게 사는 게 아니네 하는 공감의 맛도 짜릿하다. 하지만 쉽사리 어떤 것이 ‘찐’이고 ‘현실’이라고 규정할 때, 누군가의 현실은 ‘비현실’과 ‘이상함’의 경계로 굴러떨어져 버린다. 과도한 유성애주의와 유교문화의 필터에 끼인 남매라는 표상이 저마다의 고유한 관계와 색깔로 존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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