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잭폿'에도…K-방산, 금융지원 막혀 '빅4' 진입 우려
미국 등 방산 선진국 도전·견제 가능성 커져
"폴란드 방산수출 위한 금융지원 시급…법·시행령 개정 및 근본지원책 필요"
(세종·서울=연합뉴스) 차대운 김동규 기자 = 지난해 폴란드에서의 수주 '잭폿'에 힘입어 역대 최대 수출 수주액 173억달러(약 23조원)를 달성한 'K-방산'이 글로벌 4위 도약의 문턱에서 성장 동력을 상실할 위기에 처했다.
올해 상반기 마무리될 예정이던 폴란드와의 무기 수출 2차 계약이 금융지원 문제로 계속 연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자칫 수주 성과가 축소되거나 계약이 무산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폴란드서 K-방산 '17조 잭폿'…30조 규모 '2차 계약' 눈앞
15일 방위산업계·정부·국회 등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해 폴란드와 총 124억달러(약 17조원) 상당의 무기 수출 계약을 체결하면서 세계 방산 시장에서 크게 주목받았다.
작년 7월 기본계약 체결에 이어 그해 8월 서명한 1차 이행계약에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현대로템 등이 각각 폴란드에 FA-50 경공격기, K-9 자주포, 천무 다연장 로켓, K-2 흑표전차 등 124억달러 규모의 무기를 공급하는 내용이 담겼다.
업체들은 1차 계약을 체결한 뒤 나머지 물량에 대해서는 올해 상반기까지 2차 계약을 맺어 속도감 있게 계약을 매듭짓는다는 계획이었다.
기본계약에 따르면 2차 계약 예상 물량으로 K-9 자주포는 1차 계약(48문)보다 많은 600문, K-2 전차는 1차 계약(180대)보다 4배 이상 많은 820대로 계획됐다.
K-2 전차 총 '1천대' 수주를 놓고는 "계약서에 실수로 '0'을 하나 더 붙인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번 수주 성과는 파격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K-2 전차 관련 2차 계약에는 현지 생산을 통한 기술 이전 내용까지 담긴 것으로 알려져 단순한 제품 수출 이상으로 계약 규모가 커질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오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업체들은 1차 계약 이상으로 2차 계약에 공을 들이고 있다.
수은 금융지원 한도 꽉 차 2차 계약 '발목'…업계는 발 '동동'
그러나 업계의 기대와 달리 2차 계약은 속도를 내지 못한 채 지연되고 있다.
이는 국책은행인 한국수출입은행(수은)이 폴란드 무기 수출을 위해 구매국에 정책 금융을 지원할 수 있는 한도가 거의 다 찼기 때문이다.
통상 건설, 교통, 방산 등 대형 프로젝트들은 정부 간 계약(G2G) 성격이 짙고 수출 규모가 크기 때문에 수출국에서 구매국에 정책 금융·보증·보험을 지원하는 것이 국제적 관례다.
폴란드와의 2차 계약은 이와 관련한 국내 법 규정이 발목을 잡고 있다.
현행 수출입은행법 및 시행령은 특정 개인·법인에 대한 신용공여 한도를 자기자본의 40%로 제한하고 있다.
7월 말 기준 수은의 자기자본이 18조4천억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폴란드에 지원할 수 있는 수출금융 지원액은 7조3천600억원으로 제한된다.
수은은 이미 1차 이행 계약 지원을 위해 한국무역보험공사(무보)와 각각 6조원씩을 투입하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어 이를 제외하면 수은의 폴란드 추가 지원 가능액은 1조3천600억원 수준에 그친다.
한 대형 방산업체 관계자는 "정부와 국회가 방산 수출 금융지원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갖고 신속히 대책을 마련해주기를 기대하지만, 검토 속도나 관련 부처 및 국회 분위기가 기대에 미치지 못해 업체들이 민간을 통한 자구책 마련에 나선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현재 업체들은 2차 계약으로 예정됐던 기존 물량을 쪼개 K-9 자주포 160문, K-2 전차 180대만 새로 2차 계약 협상 테이블 위에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민간은행을 통한 자금 확보에 나서는 한편, 기본계획 물량을 2차 계약에서 모두 소화하는 것이 아니라 금융 자원 상황에 맞춰 순차적으로 계약을 진행하는 고육지책을 쓰는 것이다.
경쟁국 도전 등 우려…"법·시행령 개정 통한 금융지원 확대 시급"
국회도 수출 관련 금융지원 확대 필요성을 이해하고 있다.
현재 수은의 법정 자본금 한도를 기존 15조원에서 30조원으로 늘리는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이지만, 다른 법안들에 밀려 소위원회 심의조차 이뤄지지 않은 채 계류 중이다.
문제는 계약 체결이 미뤄지면서 이 사이 경쟁국의 도전이 강해지고 폴란드 내부 정치 상황에 따라 계약이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이다.
실례로 지난달 미국은 폴란드의 국방 현대화를 위해 해외군사금융지원(FMF) 방식으로 20억달러(약 2조6천억원)를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FMF는 미 국무부의 대표적인 군사 지원 프로그램으로, 대상국은 무상자금이나 대출을 이용해 각국 수요에 맞는 미국산 무기를 사들일 수 있다.
지난해 폴란드는 차세대 전차를 들여오기로 하면서 미국의 에이브럼스 전차 도입도 검토했으나 발주부터 인도까지 걸리는 시간이 오래 걸려 신속한 인도가 가능한 한국산 K-2 전차를 낙점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실질적인 안보 위협을 받는 폴란드 입장에서는 새 무기를 도입하는 데 있어 가격, 성능은 물론 속도가 무엇보다 중요한 셈이다.
이날 치러지는 폴란드의 총선 결과도 무기 도입의 변수가 될 수 있다.
폴란드 내에서는 무기체계에 대한 한국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을 우려하고 국산 및 유럽산 무기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상존하는 상황에서 정치 지형 변화가 계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에 전문가들은 정부와 국회가 폴란드와의 2차 계약이 신속히 체결되도록 지원을 서둘러야 한다고 제언한다.
구체적으로 수출입은행법 개정을 통해 수은의 자기자본금을 증액하고, 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수은이 지원 가능한 자기자본 한도를 40%에서 60% 수준으로 상향하는 등 조치가 거론된다.
미국처럼 FMF 같은 제도를 도입해 K-방산 육성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는 "폴란드에서 K-방산이 기존 방산 강국을 제치고 선택받은 것은 유럽 시장 및 세계 시장에서 K-방산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라며 "폴란드 계약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짓는 것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만큼 실기하지 않도록 정부와 국회가 국익 관점에서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d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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