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에 희생된 인디언들을 위한 위령제…영화 '플라워 킬링 문'
디캐프리오·드니로 빼어난 연기…거장 스코세이지 감독 연출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어니스트(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분)는 1920년대 미국 오클라호마주에 있는 인디언 보호구역의 택시 기사다.
이곳에서는 1890년대에 석유가 발견됐고, 이권을 갖게 된 인디언 오세이지족(族)은 하루아침에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 됐다. 어니스트의 고객도 돈 많은 인디언들이다.
어니스트의 택시에 오세이지족 여성 몰리(릴리 글래드스턴)가 타고, 두 사람은 가까워진다.
어느 날 뒷좌석의 몰리는 영어로 대화하다가 갑자기 알아들을 수 없는 인디언의 말을 하고, 어니스트는 "제가 잘생긴 놈이란 뜻이죠?"라며 웃는다. 몰리는 말 없이 미소를 짓는다.
미국의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신작인 '플라워 킬링 문'에서 가장 로맨틱한 장면 가운데 하나다.
두 사람은 결혼해 자녀도 낳지만, 둘의 관계엔 처음부터 불순한 의도가 숨어 있었다.
이 영화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퇴역 군인 어니스트가 오세이지족 보호구역에서 큰돈을 번 삼촌 헤일(로버트 드니로)을 찾아가 일자리를 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헤일은 택시 운전을 주선해주면서 몰리에게 접근해보라고 한다. 몰리에게 어머니와 자매들이 있는데 상속을 잘 받으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플라워 킬링 문'은 실화를 토대로 한 영화다. 실제로 당시 많은 백인이 재산을 노리고 오세이지족과 결혼했다.
백인들의 탐욕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범죄로 나아갔다. 이들은 자기에게 돌아올 이권을 극대화하려고 오세이지족을 살해했다. 이렇게 의문사한 오세이지족이 수십 명에 달한다.
이 영화는 집단적인 범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준다. 어니스트는 몰리를 사랑했지만, 그것이 거대한 범죄의 밑그림 위에 있다는 걸 직시하지 못했고, 결국 범죄의 조력자가 된다.
어니스트 역의 디캐프리오는 속물적이면서 우둔한 면을 가진, 그래서 별다른 의식 없이 범죄에 빠져드는 평범한 인물을 빼어나게 연기했다.
헤일은 훨씬 복잡한 인물이다. 그는 집단적인 범죄의 정점에 있으면서도 오세이지족을 위해 일한다는 자기기만에 빠져 있다.
처음엔 세상의 지혜를 가진 원숙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갈수록 공포를 발산한다. 이런 인물을 완벽하게 구현해낸 드니로는 역시 명배우라는 찬사를 받을 만하다.
몰리 역의 글래드스턴도 두 배우에게 뒤지지 않는다. 슬픔을 머금은 눈으로 조용히 미소를 짓는 몰리는 미국 역사에서 수난당한 인디언을 대변하는 듯하다.
'플라워 킬링 문'의 마지막 장면은 이 영화가 미국의 건설 과정에서 폭력과 범죄에 희생된 인디언들을 위한 위령제라는 느낌을 주면서 깊은 울림을 남긴다.
이 영화는 미국 작가 데이비드 그랜의 논픽션 '플라워 문'을 원작으로 했다.
디캐프리오가 이 책의 원고를 읽고 스코세이지 감독에게 영화화를 제안했다. 이 영화에 프로듀서로 참여하기도 한 디캐프리오는 스코세이지 감독과 함께 제작을 주도했다.
두 사람은 제작 초기 단계부터 오세이지족의 후손들과 소통하면서 이들의 고통을 이해했고, 오세이지족의 시각에서 역사를 돌아보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피해자들의 말을 경청하는 소통, 여기서 끌어낸 깊은 공감, 사실의 직시, 진심에서 우러나온 사죄라는 점에서 이 영화는 폭력과 범죄의 과거사를 풀어가는 모범 사례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릴 적부터 가톨릭 신앙의 영향을 받아 죄와 죄의식이란 주제에 천착해온 스코세이지 감독은 이 영화에서 죄의식을 풀어가는 영역에까지 들어간 듯한 느낌이다.
'비열한 거리'(1973), '택시 드라이버'(1976), '분노의 주먹'(1980), '코미디의 왕'(1983), '좋은 친구들'(1990), '애비에이터'(2004) 등 영화사에 빛나는 작품들을 연출한 스코세이지 감독은 이 영화로 또 하나의 걸작을 추가할 것으로 보인다.
19일 개봉. 205분. 청소년 관람 불가.
ljglor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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