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 중에도 집념의 선긋기 계속···'별이 된 거장'

서지혜 기자 2023. 10. 14. 20:2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지난 2월 박서보 화백은 자신의 SNS에 장문의 글을 올렸다.

그는 게시글에서 '폐암 3기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하고 "선물처럼 주어진 시간이라 생각한다, 작업에 전념하며 더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낼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현숙 국제갤러리 회장은 SNS에 "박 화백은 단색화의 거장이자 한국 미술계의 거목이었다"며 "그가 온 생애를 바쳐 치열하게 이룬 화업(그림작업)은 한국 미술사에서 영원히 가치 있게 빛날 것"이라며 고인을 추모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박서보 화백 1931~2023
한국 미술계 추상미술 도입
'수행의 선 긋기'로 세계적 작가 반열 올라
폐암 판정 이후에도 개인전 열고 활발한 활동
"큰 어른 가셨다" 미술계 추모 물결
박서보 화백. 사진=박서보 화백 페이스북
[서울경제]

“나는 캔버스에 한 줄이라도 더 긋고 싶다”

지난 2월 박서보 화백은 자신의 SNS에 장문의 글을 올렸다. 그는 게시글에서 ‘폐암 3기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하고 “선물처럼 주어진 시간이라 생각한다, 작업에 전념하며 더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낼 것이다”라고 말했다. 스스로 다짐한 대로 그는 온 힘을 다해 선을 긋고 전시회를 열고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8개월이 지난 14일 오전, 박 화백은 평생을 바친 선 긋기를 내려놓고 영면에 들었다.

평생 선 그은 아흔의 거장···한국에 추상미술을 알리다

1931년에 태어난 고인은 김환기, 김창열 등과 동시대에 태어난 국내 근현대 미술 작가로, 문화적 불모지였던 한국 미술계에 추상미술을 도입하고 세계적 반열에 올려 놓은 거장이다. 그는 1950년 홍익대 미술과에 입학했고, 1962년 홍익대 미대 강사로 시작해 1997년까지 회화과 교수로 재직했다.

1957년 한국 엥포르멜(미술가의 즉흥적 행위와 격정적 표현을 중시하는 미술 사조) 운동을 주도한 현대미술가협회에서 활동했으며 1961년에는 세계청년화가파리대회에서 추상표현주의 미학을 토대로 한 ‘원형질’ 시리즈를 선보인 바 있다. 그의 작품 세계는 1960년대 중반 ‘유전질’과 ‘허상’ 연작을 거쳐 1970년 대 ‘묘법(描法·Ecriture)’에서 절정에 이른다.

묘법은 박 화백을 거장의 반열에 오르게 한 대표 작품으로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그의 작품을 알아볼 정도로 한국을 대표하는 단색화 작품으로 여겨졌다. 수행하듯 동일한 선을 반복해서 끝 없이 그어내는 묘법은 초기라 일컬어지는 1967~1986년에는 종이에 연필로 선을 채우는 방식이었으나 1982년 이후에는 한지를 풀어 물감에 갠 것을 화폭에 올리고 이를 긋거나 밀어내는 방법으로 진화했다. 2000년 대 들어서는 작품에 유채색을 다양하게 포함하는 등 스스로 발전을 거듭했다.

그의 작품은 2015년 이탈리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열린 ‘단색화’전이 해외 관계자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세계적 반열에 오르기 시작한다. 특히 1976년작 ‘묘법 No. 37-75-76′은 2018년 홍콩 소더비 경매에서 200만달러(약 25억원)에 팔리기도 했다. 현재 미국 뉴욕현대미술관과 구겐하임미술관, 시카고 아트인스티튜트, 일본 도쿄도 현대미술관,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홍콩 M+미술관 등 세계 유명 미술관이 박 화백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박서보 화백 '묘법 No.091226'. 사진제공=조현화랑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작품활동···명품 협업 등으로 대중과 교류 넓혀

생전 고인은 자신의 선 긋기를 ‘수행의 도구이자 비워내는 행위’라고 표현했다. 그래서일까. 죽음이 임박 했다는 소식을 들은 후 그는 오히려 담담했다. 갑자기 찾아온 병마를 원망하기보단 새롭고 진취적인 작업에 몰두했다. 지난 2월 폐암 3기 판정을 받은 후 제주 서귀포시 JW메리어트 제주 리조트&스파 호텔 부지 내에 자신의 이름을 딴 첫 미술관 ‘박서보 미술관(2024년 7월 완공 예정)’을 추진하고, 올해 8월에는 부산의 조현화랑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SNS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는 모습을 공개하고 미술계 이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최근에는 친구이자 2021년 별세한 김창열 화백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글을 종종 게시하기도 했다.

하종현 화백이 자신의 SNS에 공개한 원로 작가들의 모습. 사진=하종현 화백 SNS

이렇듯 암 투병 중에도 왕성한 활동을 한 만큼 그의 별세 소식을 듣고 미술계에서는 안타까운 추모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이현숙 국제갤러리 회장은 SNS에 "박 화백은 단색화의 거장이자 한국 미술계의 거목이었다"며 "그가 온 생애를 바쳐 치열하게 이룬 화업(그림작업)은 한국 미술사에서 영원히 가치 있게 빛날 것"이라며 고인을 추모했다. 최근 개인전을 진행한 조현화랑의 최재우 대표는 “불과 보름 전에도 부산에 직접 내려와 사흘간 함께 계셨다”며 “다음 전시도 함께 하작 했는데 임종 소식에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하종현(88)화백은 이날 자신의 SNS에 “오랜 동료로서 깊은 슬픔을 느낀다”며 여러 장의 젊은 날의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서지혜 기자 wise@sedaily.com

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