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편향' 팩트체크? "받아쓰기 극복하고 저널리즘 질 끌어올렸다"

박재령 기자 2023. 10. 1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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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편향' 정치권 공세 뒤 지원 중단된 'SNU팩트체크'
학회 학술대회에서 팩트체커 "이건 저널리즘 이슈, 학회 성명 내야"
깊은 취재 요구하는 '팩트체크 기사'로 '정체성' 찾은 현장기자들
정은령 센터장 "언론 자율 품질 개선 이끌어와, 좋은 결과 있기를"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좌편향'이라는 정치권 공세 뒤 자금 지원이 중단된 SNU팩트체크센터(이하 센터)가 편향성을 부정하며 센터 창립 이후 팩트체크 기사 질이 높아졌다고 강조했다. 현장 언론인들은 품이 많이 드는 팩트체크 기사가 언론사에서 소외되는 분야이며 센터 등 외부 지원 없이는 유지되기 힘들 것이라 봤다. 학회나 언론계 차원에서 지원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 14일 서울 경희대에서 열린 한국언론학회 가을철 정기학술대회. 왼쪽부터 정은령 센터장, 박기묵 CBS 기자, 김경희 한림대 교수, 서수민 서강대 교수, 홍혜영 TV조선 기자, 이웅 연합뉴스 기자. 사진=박재령 기자

14일 오후 서울 경희대에서 열린 한국언론학회 가을철 정기학술대회에서 정은령 SNU팩트체크센터장은 “(네이버) 재정 지원 중단은 SNU팩트체크센터의 유지는 물론 팩트체크 인턴십, 팩트체킹 취재보도 지원사업 등 사업 중단을 초래해 한국 팩트체크 저널리즘 지속성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한다”며 “팩트체크는 수익성이 낮고 노동력과 시간이 많이 투여되는 값비싼 콘텐츠다. 그럼에도 '받아쓰기'를 벗어나 양질의 저널리즘을 수행하기 위해 팩트체크는 계속 진행돼야 한다”고 했다. 네이버는 지난 8월 연 10억 원 규모의 센터 지원을 중단했다.

'팩트체크 저널리즘'은 일련의 원칙을 준수해 많은 품이 드는 것이 특징이다. 근거 자료 명시, 취재원 공개, 기사 수정 내역 등을 요구한다. 정은령 SNU팩트체크센터장은 2017년 센터 설립 이후 팩트체크 기사의 질이 올라갔다고 강조했다. 센터는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가 32개 언론사들과 협업하는 비영리 팩트체크 플랫폼으로 언론의 팩트체크를 비교할 수 있고 자체적으로 요구 기준을 마련해 한국 팩트체크 생태계를 만들고 유지해왔다.

▲ 정은령 센터장 발제자료 갈무리.

정 센터장은 “2017년 기사 평균 길이 1183자에서 2023년 3421자로 증가한다. 거의 3배가 된 것”이라며 “더 중요한 것은 기사 평균 (팩트체크) 근거 수인데 2017년엔 0.45개로 1개가 안 됐지만 2023년엔 평균이 7.9개다. 어떤 팩트체크 기사는 20개가 넘기도 한다”고 했다.

편향성 지적은 부정했다. 제휴 언론의 '자율'을 보장해 센터가 개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 1월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간사)은 “네이버가 문재인 정부 기간 동안 60억 원의 뒷돈을 대고 '뉴스 영역'에 판을 깔아준 SNU팩트체크센터, 한국언론학회의 팩트체크 사업이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을 가짜뉴스 선동자로 전락시켰다”고 주장한 바 있다.

[관련 기사 : '가짜뉴스 전쟁' 속에 '팩트체크' 죽어가다]

정 센터장은 “정부나 정치권, 이익단체 등으로부터 독립적으로 팩트체크를 수행하고 그 결과를 사회적으로 확산해온 자율적 모델”이라며 “코로나19 시기를 제외하면 꾸준히 대면 회의도 하고 메신저 서비스도 하면서 의사결정에 필요한 주요 사안들에 대해 수시로 협의했다. (제휴 언론엔) 진보 계열 언론사도, 보수 계열 언론사들도 있다. 협의체의 논의 사항은 대개 만장일치로 결정한다. 예를 들어 2019년 10월 SNU팩트체크 원칙에 제휴언론사들이 자체적으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 지난 6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글로벌팩트10'에서 연설하고 있는 앤지 홀란 IFCN 디렉터.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센터 지원 중단을 비판했다. 사진=IFCN

정 센터장은 “학계와 언론사가 같이 협력하는 센터의 모델은 상당히 이상적으로 다른 나라에서도 관심을 보여왔다. 그래서 최근의 위기를 IFCN(국제팩트체킹네트워크)을 통해 다른 나라에 알렸을 때 상당히 충격을 받더라. 어떻게 국제행사를 개최한 직후에 센터 활동이 멈추는 위기가 올 수 있냐고 했다”고 말했다. IFCN은 2015년 100개 이상의 세계 언론사들이 참여해 만들어진 국제 팩트체크 허브로 SNU팩트체크센터는 IFCN과 지난 6월 국제 컨퍼런스 '글로벌팩트10'를 서울에서 공동개최했다.

[관련 기사 : IFCN 디렉터 "SNU팩트체크 지원 중단, 정치권 압박 먹힌 전형적 패턴"]

현장 기자들도 팩트체크 기사를 작성하며 느꼈던 '효능감'을 말했다. '팩트체크 뉴스 우수작 사례로 본 양질의 저널리즘 형식에 관한 연구' 논문을 발표했던 박기묵 CBS노컷뉴스 기자는 논문 작성 이유로 “기사들이 쉽게, 간단하게 쓸 수 있는 기사가 있다. 하지만 센터에 올리던 기사는 결코 간단하게 쓸 수 있는 기사가 아니었다”며 “그래서 누군가는 알아줬으면 했다. 특히 학술적으로 이런 부분을 많이 알아주길 바라서 이 연구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박 기자는 “SNU팩트체크의 가장 큰 성과는 (같은 소재에 대한 언론사별 팩트체크 검증 결과를 비교하는) 교차 검증”이라며 “처음엔 교차 검증 시스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지만 언론사가 내 팩트체크 기사와 같은 주제를 팩트체크 할 수 있다는 점이 하나의 경각심이 됐다. 더 양질의 기사를 작성하게 한 각성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 SNU팩트체크 로고

홍혜영 TV조선 기자는 “외부에선 팩트체크가 당연한 것 아니냐, 왜 따로 분야를 만드냐 물을 수 있다. 하지만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시간 등 물리적인 한계 때문에 다른 기사를 인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팩트체크를 통해 기자의 정체성을 깨닫게 됐다. 기존 출입처를 벗어나 어떤 사안에 대해 밑바닥부터 취재하면서 출입 기자라면 간단하게 구할 수 있는 보도자료조차 굉장히 어려운 과정을 통해 요청했다. 출입처에 대한 이해관계도 없기 때문에 더 자유롭게 비판이 가능했다고 편견에서도 더 자유로웠다”고 말했다.

이웅 연합뉴스 기자도 “기자 생활 22년 정도 됐는데 20년 동안 썼던 기사에 비해 (팩트체크 기사를 담당한) 2년 동안 기사에 들인 노력과 애착 등 차이가 나는 게 많다”며 “팩트체크 기사 하나를 토요일 아침에 냈던 적이 있는데 댓글에 이런 게 달렸다. '그냥 그런 기사인 줄 알고 들어갔는데 새로 나온 신간을 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 댓글을 보고 기분이 매우 좋더라. 팩트체크 기사가 갖고 있는 정보량, 취재 깊이, 심도에 대한 반응이 아니었나 생각해봤다”고 말했다.

하지만 언론사 입장에서 팩트체크는 주력 콘텐츠가 아니다. 조회수가 수익과 직결되는 상황에서 품이 많이 드는 팩트체크는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박기묵 기자는 “언론사에서 팩트체크를 담당하는 부서의 위치가 좋지 않다. 언론은 정경사 위주의 기본적인 취재 파트가 있고, 새로운 저널리즘을 접목하는 부서는 기존 파트의 구성원을 빼갈 수밖에 없다”며 “그렇기에 동료들에 좋은 평가를 받기 힘들고 외부적인 공격도 많이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웅 기자는 “특정 부처의 장관 발언을 팩트체크한다고 가정해보면 장관, 부처 직원들의 불만은 물론 출입기자들도 썩 달가워하지 않는다. 장관의 발언이 문제가 되기 전에 발언을 이미 기사로 다 썼기 때문”이라며 “팩트체크 저널리즘에 대해 기존 언론인들이 호감을 가지고 올바른 방향이라고 자각하고 따라갈 수도 있지만 이에 대한 저항, 팩트체크로 생기는 마찰도 분명히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 SNU팩트체크 홈페이지에 명시된 제휴 언론사들.

결국, SNU팩트체크센터와 같은 외부 지원이 없으면 언론사가 팩트체크 부서를 유지할 동기가 줄어든다는 지적이다. 박기묵 기자는 “팩트체크 기사를 유지하는 것이 굉장히 어렵기 때문에 센터의 여러 지원 사업이 큰 도움이 됐다”며 “센터가 사업을 멈추게 된다면 아마 이런 동력도 약해질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2018년 중단된 '팩트올' 등의 사례에서 봤을 때 개별 언론의 의지만으로는 팩트체크를 유지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박기묵 기자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여러 학회가 있지만 현재 우리 언론 상황에 대해 크게 목소리를 내고 있지 않다”며 “이런 사안에 대해선 학회 차원에서 성명 등 의견을 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팩트체크는 기자의 시도를 넘어 저널리즘, 언론계와 관련된 이슈다. 혹은 팩트체크 관련 재원을 조성해서 지원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양질의 저널리즘을 지속할 수 있는 동력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웅 기자는 “사실 '팩트체크'라는 취재와 사고방식은 모든 언론에 녹아 들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특별한 장르, 이벤트로 인식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궁극적으로는 모든 기자들이 일반적인 기사를 쓸 때도 가질 수 있는 취재 방식이 되길 바란다. 그런 사고를 가질 수 있도록 팩트체크 저널리즘을 확산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팩트체크가 자생력을 갖춰서 언론사 내에서도 환영 받는 콘텐츠가 되고 기본적인 기자의 태도가 될 수 있도록 고민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은령 센터장은 “SNU팩트체크센터의 의미는 한국 언론 역사에서 드물게 언론의 자율적인 품질 개선 노력을 이끌어냈다는 점”이라며 “지난 6년간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플랫폼 지속을 위해 애쓰고 있다.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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