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지키는 캡틴 아메리카 방패…폭격기 만드는 회사에서 따왔다? [추동훈의 흥부전]

추동훈 기자(chu.donghun@mk.co.kr) 2023. 10. 14.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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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부전-26][브랜드로 남은 창업자들-21] 글렌 마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간 전쟁이 또다시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중동의 화약고라 불리는 가자지구를 둘러싸고 터질 게 터지면서 수천 명의 사상자와 수십만명의 난민이 쏟아지고 있는 형국입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미국 최대 규모 방위산업체 록히드 마틴의 2번째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1995년 ‘록히드’와 ‘마틴 마리에타‘의 합병으로 탄생한 록히드 마틴. 지난 주 록히드 형제의 이야기를 전해드렸다면 이번 주엔 바로 마틴 마리에타를 창업한 글렌 마틴이 그 주인공입니다.

글렌 마틴
록히드와 마틴의 합병은 진즉에 예견된 일이었던 듯합니다. 록히드와 마틴은 우연이지만 여러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먼저 형인 말콤 록히드와 글렌 마틴은 모두 1886년에 태어났습니다. 동갑내기 친구 창업자들이 회사를 서로 합친 셈입니다. 또한 록히드 형제가 창업한 1912년, 글렌 마틴 역시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이모저모로 이 둘의 평행이론은 운명적입니다.

글렌 마틴은 미국 아이오와주 맥스버그에서 민타 마틴과 클라렌스 마틴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두 살이 되던 해 그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말 농장 때문에 캔자스 주 살리나로 이사했습니다. 떡잎부터 남달랐던 마틴은 어릴 적부터 연날리기를 좋아하던 아이였습니다. 6살에 처음 접한 연을 날려도보고 만들어도 보던 마틴. 그런데 마틴이 만든 연은 누구보다 멀리, 높이 날아다녔습니다.

친구를 비롯해 주변 사람들은 마틴이 만든 잘 나는 연을 사기 위해 25센트를 기꺼이 지불했습니다. 손재주가 좋았던 마틴은 아예 집의 부엌을 공장삼아 연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비행기, 아이트 스케이트, 마차 등 각종 날 것과, 탈 것에 대한 흥미는 그의 상상력을 자극했고 자전거 속도를 높일 수 있는 연구와 개발에도 몰두했습니다.

글렌 마틴
지역에서 계속 성장한 마틴은 캔자스주 살리나에 있는 웨슬리언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뒤 본격적으로 자신의 꿈을 키워가기 시작합니다. 바로 연에서부터 시작된 비행기 산업에의 도전입니다. 1909년, 글렌 마틴은 미국 항공업계의 선구자인 글렌 커티스가 제작한 비행기 ’준 벅‘을 사들여 직접 개조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첫 번째 시험 비행에서 보기좋게 실패했고 비행기는 산산이 조각납니다. 이후 연구과 개발에 매진한 끝에 글렌 마틴은 결국 1912년 자체 제작한 수상 비행기를 타고 캘리포니아주 뉴포트 베이서 카탈리나 섬 아발론까지 다녀오는데 성공합니다.

1912년 마틴은 군사 훈련용 항공기를 제작하는 글렌 마틴 컴퍼니를 설립합니다. 항공기 조종사이자 개발자인 마틴은 부족한 투자금을 모으기 위해 헐리우드로 눈을 돌렸습니다. 영화 산업이 본격화된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흥미를 느끼고 관심을 갖는 비행기의 영화출연을 미끼삼아 투자를 유치하려는 것이었죠. 마틴은 LA에 있는 작은 감리교 교회 한켠에 비행기 공장을 만들었습니다. 이와 함께 여러 박람회와 지역 비행장을 순회하며 스턴트 비행을 선보였습니다. 곡예를 넘듯 비행기가 날아다니는 모습은 대중과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었고 마틴은 영화 출연을 대대적으로 광고했습니다. 매리 픽포드가 주연한 1915년작 어제의 소녀에서 글렌 마틴은 직접 비행기를 조하고 연기를 하는 등 배우로서의 행보도 이어갔습니다.

록히드 마틴 로고
사업가적 수완을 적극 발휘해 얻은 대중적 인기와 인지도 덕에 글렌 마틴에게 여러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먼저 1916년 그가 평생 동경해온 라이트 형제와 협력할 기회가 찾아옵니다. 라이트 형제의 라이트 컴퍼니와 합병해 라이트-마틴 사를 설립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동행은 1년만에 끝났고 1917년 두번째 글렌 마틴 컴퍼니를 다시 만듭니다.

마틴은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8년 미 육군이 주문한 대형 복엽기 설계 기반 폭격기 MB-1를 생산하는데 성공합니다. 20대 주문제작 이후 추가로 100여개 이상을 생산 납품하며 사세를 키워갔습니다. 이후 회사는 정찰폭격기 SC-1을 400여대 생산하는 등 생산량과 실적도 크게 키웠습니다.

마틴 SC-1
이어 1925년 미국의 산업부는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 있던 그의 비행기 공장을 메릴랜드로 옮길 것을 권유합니다. 지역의 일자리 창출과 전략적 산업 성장을 위한 제안에 마틴은 1928년 3년간의 토지 매수 작업 등을 거쳐 메릴랜드로 이전합니다. 그 덕에 지역엔 수백개의 일자리를 제공했고 항공산업의 성장을 끌어냈습니다. 1930년대에도 마틴사의 이름값을 높인 B-10 폭격기 등을 제작하는 등 전시 시간 미국 기업 가치 14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이후 마틴사는 지속해서 항공산업과 우주산업의 기술경쟁력을 두루 발전시켜왔습니다. 창업주 글렌 마틴은 1955년 12월,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에서 뇌졸중 합병증으로 사망했습니다. 이후 1961년 도료, 건축자재 전문기업 마리에타와 합병해 마틴 마리에타로 거듭 났습니다. 이후 1995년 록히드 사와 합병하며 지금의 록히드 마틴이 됩니다.

메릴랜드로 터를 옮긴 덕에 메릴랜드 대학교에는 글렌 마틴 기술 연구소가 설립돼 운영되고 있습니다.

마틴사 로고
록히드와 마틴의 회사 로고는 영화 마블 시리즈에 영감을 준 듯 합니다. 마틴의 별 문양은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 모습과 유사하며 록히드의 로고는 사실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의 회사 스타크 인더스트리와 닮았습니다. 악당으로부터 지구를 지키기 위해 탄생한 어벤저스와 닮은 록히드 마틴의 로고. 21세기 전 세계가 전쟁의 위험 한복판에 처한 가운데 세계 최대 방위산업체 기업 록히드 마틴의 딜레마도 깊어지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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