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보 예르비와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의 흥미진진한 모험

강애란 2023. 10. 14.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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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예술의전당 공연…위험 무릅쓰고 낯선 해석 들려줘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 [빈체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나성인 객원기자 = 과거 에스토니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브레멘 캄머 필하모니 등 서로 다른 악단을 이끌고 한국을 찾았던 마에스트로 파보 예르비가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내한했다.

지난 1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오른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는 1부에서는 김봄소리와 함께 닐센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2부에서는 브람스의 교향곡 1번을 들려줬다.

덴마크 작곡가 닐센은 그리그, 시벨리우스 등과 함께 북유럽을 대표하는 작곡가로 최근 6개의 교향곡을 중심으로 더 많은 조명을 받고 있다. 두 개의 악장으로 이뤄진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화려한 기교를 요구하면서도 북유럽 감성을 지녔고 낭만적인 색채를 물씬 풍긴다. 1악장 서주는 고요한 긴 지속음 위에 명상적인 선율이 인상적이지만, 두 번째 부분인 알레그로 카발레스코(기사풍)에서는 보다 민속적이고 흥겨운 정서가 두드러진다.

이날 김봄소리의 바이올린은 작품이 지닌 다채로운 표정을 생생하게 들려줬다. 연주의 방점은 북유럽적인 침잠이나 고요보다는 보잉마다 살아 있는 리듬에 찍혀 있었다. 특히 1악장 중간에서 홀로 연주하는 카덴차 부분에서는 호소력 있고 에너지 넘치는 독주를 선보였는데, 두 개의 현을 동시에 그으면서 왼손 피치카토까지 선보여야 하는 까다로운 부분에서도 민속적인 에너지와 서정적 울림을 들려준 점이 인상적이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 [빈체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예르비는 김봄소리를 잘 보좌했다. 닐센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독일의 교향악적 협주곡처럼 선이 굵다기보다는 오히려 슈만의 작품을 연상시킬 만큼 세부적인 리듬 변화가 아주 많은 작품이지만, 한순간도 집중력을 잃지 않으며 훌륭한 호흡을 들려줬다. 2악장 시작 부분의 명상적인 아다지오나 익살스럽지만 반음계가 색다른 느낌을 주는 론도에서도 전체적으로 완성도 있는 연주가 이어졌다. 론도 부분의 삽입구 하나에는 1악장과 마찬가지로 바이올린 독주가 삽입됐는데, 김봄소리는 상당히 까다로운 이 대목에서도 자신의 비르투오소 적인 역량을 최대한 보여줬다.

오케스트라 또한 강렬함보다는 디테일, 압도적인 사운드보다는 명암과 색채의 변화를 더 앞세우는 닐센 협주곡의 관현악 앙상블을 탁월하게 연주했다.

2부에서 예르비가 선보인 브람스 1번은 근래 보기 드문 '쾌속 질주'의 브람스였다. 단지 템포가 빨랐던 것이 아니라 기운차되 산뜻한 청량감을 동시에 갖춘 연주였다. 흔히 브람스 하면 떠올리게 되는 묵직함을 예르비는 의도적으로 피해 가는 듯했다. 한 음 한 음에 의미를 담는 '소스테누토'를 최대한 지양하고 마치 일필휘지하듯 몰아가는 것은 보통의 관객들이 기대하는 브람스와는 거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연주와 음향이 견고하고 단단해 예르비의 연주가 악단과 손발을 충분히 맞춘 하나의 해석이었음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예르비는 더블베이스를 제1바이올린 뒤에 배치하고, 비올라와 첼로를 가운데, 제2바이올린을 제1바이올린의 맞은편에 배치했다. 바이올린의 두 파트가 마주 보자 주고받는 리듬이 더 부각됐고, 더블베이스 또한 그저 저음역을 보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선율로 보다 선명하게 드러날 수 있었다.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 [빈체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특히 놀라웠던 점은 예르비가 보여준 거장다운 뚝심이었다. 굉장히 빠른 템포로 악단을 몰아가면서도 음향의 변화와 세부 표현을 살려내 시종일관 듣는 재미가 있었다. 쉴 틈 없이 내달린 1악장 이후 2악장, 3악장 모두 생생한 운동성을 보다 강조하는 방향으로 해석됐고, 관객들은 충분한 일관성을 느낄 수 있었다.

4악장에서는 빠른 템포로 인해 악기군 사이에 약간 맞지 않는 부분이 나타났지만, 그러한 결점은 전체 해석에 큰 해를 끼치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음악적 경험을 위해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는 용기가 더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각 악기군의 소리는 하나로 융해된다기보다 제각각의 소리 가닥을 유지하면서 선명하게 선율을 드러냈지만, 각 부분에서 적절한 셈여림, 색채, 표현이 살아 있어 입체적으로 들렸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4악장의 2주제 시작 바로 앞에 나오는 트롬본의 여린 합주 부분과 찬란한 클라이맥스 팡파르의 효과적인 대조였다. 빠른 템포 안에서도 표현력을 얼마나 치밀하게 살려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예르비는 어떤 순간에도 자기 음악을 한다. 앙코르로 선보인 베토벤의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 서곡에서도 그는 리듬의 생생함, 베이스라인의 선명성, 경쾌한 템포의 일관성을 여전히 유지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낯선 방식을 택하지만, 이것은 그저 자의나 일탈이 아니었다. 음악을 새롭게 듣게 하려는 진정한 거장의 참으로 흥미진진한 모험이었다.

lied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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