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엔솔·SK온, 악조건에도 실탄 채우는 이유
'고금리·수요 감소·원자재값 하락' 등 악재
대규모 선제 투자…시장 선점 필수 조건
워치인더스토리는 매주 토요일, 한 주간 있었던 기업들의 주요 이슈를 깊고, 쉽고, 재미있게 파헤쳐 보는 코너입니다. 인더스트리(산업)에 스토리(이야기)를 입혀 해당 이슈 뒤에 감춰진 이야기들과 기업들의 속내를 살펴봅니다.[편집자]
실탄 장전
최근 SK온이 공모 회사채 발행에 나섰습니다. 총 3000억원 규모인데 수요 예측 후 흥행에 성공할 경우 최대 5000억원까지 증액할 예정입니다. SK온이 국내 회사채 시장을 통한 자금 조달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동안 SK온은 △프리IPO(상장전지분투자)를 통해 4조8000억원 △기업어음(CP) 발행으로 1000억원 △유로본드 발행 등의 방법으로 자금을 조달해왔습니다.
그랬던 SK온이 국내 회사채 시장에 등장했다는 것은 그만큼 자금 수요가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업계에서는 SK온의 성장 가능성이 높은 만큼 무난히 발행에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실적이 개선하고 있고 잇따라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과의 장기 공급 계약을 맺는 등 거래선도 안정적이라는 평가입니다.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루트를 다양화하기 위한 포석도 깔려있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도 지난 6월 처음으로 공모 회사채 발행으로 실탄을 장전했습니다. 당시 LG에너지솔루션은 회사채 발행을 통해 5000억원의 자금을 확보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수요 예측에서 4조7200억원이 몰리면서 흥행에 성공, 최종적으로 총 1조원의 자금을 확보했습니다. 국내 배터리 업계를 대표하는 기업인 만큼 성장성에 주목한 투자자들이 대거 몰린 결과입니다.
이처럼 2차전지 업체들이 잇따라 국내 회사채 시장을 노크하는 것은 생산 시설 확충을 위한 자금이 필요해서입니다. 2차전지 산업의 특성상 대규모 투자가 선행돼야 합니다. 선제 투자가 이뤄지지 않으면 향후 시장 선점이 어려운 구조입니다. SK온, LG에너지솔루션 모두 배터리 생산 능력을 높이기 위한 시설 투자에 해당 자금들을 사용할 겁니다.
변화된 조건…'고금리'
하지만 SK온과 LG에너지솔루션의 성장성과는 별개로 이들의 국내 공모 회사채를 통한 자금 조달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변화된 금리 조건입니다. 실제로 지난해 국내 회사채의 이자율은 2~3%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LG에너지솔루션이 지난 6월 발행한 회사채의 이자율은 4%대 입니다. SK온이 지난 5월 발행한 그린본드의 이자율은 5%대입니다.
자금 조달 시장이 경색돼 지난해에 비해 이자율이 높아졌고 이 탓에 많은 기업들이 회사채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을 주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장 시설 투자 자금이 필요한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의 경우 이런 부담을 감내하고서라도 실탄을 확보해야 했습니다. 향후 계획한 대로 사업이 잘 진행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하면 이는 고스란히 부담으로 작용할 겁니다.
업계에서는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이 보유한 내부자금 등으로는 이런 부담을 감내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결국 차입이나 공장을 건설 중인 해외에서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데 현재 금리가 과거에 비해 많이 오른 상태입니다. 실제로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이 주력하고 있는 미국 시장의 경우도 대출 이자율이 4~4.5%대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은 대규모 투자를 진행해야 합니다. LG에너지솔루션만 해도 내년 설비투자에 12조원 가량을 투입해야 합니다. SK온도 올해에만 라인 증설에 7조원 이상이 들어가야 합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자금 조달에 나서는 이유입니다. 아직은 쥐고 있는 현금이 많지 않으니 외부를 통해 실탄을 장전, 향후 수익을 내면서 이를 감당하겠다는 계산인 겁니다.
또 하나의 복병 '수요 감소와 리튬 값 하락'
고금리뿐만 아니라 복병은 또 있습니다. 바로 전기차 시장의 수요 감소입니다. 최근 전기차 시장이 주춤하면서 배터리에 대한 관심도 과거에 비해 조금씩 떨어지고 있습니다. 충전 인프라 부족과 잇단 화재 등의 이슈가 불거진 탓입니다. 여기에 독일과 영국이 최근 전기차 구매 보조금 규모를 줄이거나 폐지하고 경기 침체 여파로 폭스바겐과 볼보 등 완성차 업체가 출하량을 줄이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 주력인 미국 시장 등은 건재한 상황인 만큼 아직 전기차 시장이 무너졌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업계에서도 중국의 전기차 수요 둔화와 유럽 시장에서의 조짐 등이 있기는 하지만 전기차에 대한 전반적인 수요가 감소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장의 이런 변화는 대규모 선제 투자를 단행해야 하는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울러 최근 2차전지의 핵심 소재인 리튬 가격이 급락하고 있는 점도 악재로 꼽힙니다. 시장조사업체인 벤치마크미네랄인텔리전스(BMI)에 따르면 탄산리튬과 수산화리튬 가격은 올해 연초 대비 각각 52%, 58%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에 따라 양극재와 음극재 가격도 연초 대비 41.9%, 17.6% 낮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2차전지 원자재 가격이 낮아지면 배터리 업체들에게는 부담입니다. 완성차 업체들과의 가격 협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더불어 이미 높은 가격에 구입한 원자재로 만든 배터리들은 재고로 쌓이게 되고 이는 곧 손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배터리 업체들에게는 분명 좋지 않은 일입니다. 그럼에도 투자를 멈출 수 없다는 것이 딜레마입니다.
결국 기술력
이런 상황에도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은 지속해 투자를 이어가겠다는 생각입니다. 현재의 전기차 수요 감소는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분석입니다. 국내 배터리 업체들의 경쟁력은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을 받은 만큼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장정훈 삼성증권 연구원은 “심리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으나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배터리 기업 이외에 대안이 많지 않아 가격 압박 요인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일본 토요타와 20GWh(기가와트시) 규모의 배터리 장기공급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전용 생산라인 구축을 위해 오는 2025년까지 4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도 내놨습니다. 삼성SDI도 최근 미국 인디애나주 코코모시에 스탤란티스와 전기차 배터리 합작 2공장을 건설키로 했습니다. SK온도 외형성장을 통한 수율 개선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국내 배터리 업체들을 둘러싼 조건들이 변화하고 있지만 큰 줄기에는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습니다. 그동안 미국의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의 조건을 맞추기 위해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과 미국 현지에 합작 공장을 성공적으로 건설하고 있는 데다, 이미 고품질의 배터리를 양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것은 차후에 분명 빛을 발할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배터리 업체 관계자는 "자금 소요 규모가 큰 데다 금융시장 경색 등으로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까지는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최근의 전기차 시장 모습은 시장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흔히 일어나는 등락인 만큼 크게 우려하지는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변화된 환경에서 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어떤 전략으로 대응할지 같이 지켜보시죠.
정재웅 (polipsycho@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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