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팔 전쟁] 곤란해진 삼각관계…'균형' 따지는 러시아 속내는
미국 비난하며 평화 기여 원하지만 이란 관계로 난감해질 수도
(모스크바=연합뉴스) 최인영 특파원 = 일주일째 접어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전쟁에 대한 러시아의 공식 입장은 '균형'이다.
미국과 유럽이 이스라엘에 대해 지지를 표명하고 팔레스타인에 우호적인 튀르키예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을 "국가가 아닌 조직 같은 행동"이라고 비판하는 등 각자의 이해에 따라 선명하게 편을 든 것과는 사뭇 결이 다르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지난 11일(현지시간) "(하마스를) 물론 테러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행위를 비난해야 하지만 우리가 균형 잡힌 접근 방식을 유지하고 분쟁의 양측과 계속 접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양측 모두와 대화를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러시아의 반응은 중동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의도에서 비롯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공교롭게도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충돌이 본격화했던 이번 주 러시아 모스크바에는 중동 지역 고위 관리들이 집결해 있었다.
아흐메드 아불 게이트 아랍연맹(AL) 사무총장은 9일 모스크바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회담했고, 압둘아지즈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에너지부 장관은 11일 러시아 에너지 주간 행사에 참석했다.
무함마드 알수다니 이라크 총리는 10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한 데 이어 11일에도 러시아 에너지 주간 행사에 푸틴 대통령과 함께 참석했다.
크렘린궁은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러시아를 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러시아는 냉전 시대부터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아랍권과 긴밀한 관계를 이어왔다. 소련은 팔레스타인에 무기를 제공했고 1967년 3차 중동전쟁이 발생하자 이스라엘과 외교를 단절하기도 했다.
국제사회가 하마스를 테러단체로 규정하는 가운데서도 러시아는 지난해 9월과 올해 3월 이스마일 하니예, 살레 알아루리 등 하마스 지도부를 모스크바로 초대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동시에 러시아는 이스라엘과 정서적으로 유대가 깊다.
소련 해체 후 러시아나 구소련 지역에서 100만명 이상이 이스라엘로 이주했다. "이스라엘에 친척이 산다"는 이유 등으로 팔레스타인보다 이스라엘을 더 친근하게 느끼는 러시아인도 많다.
소련 붕괴 직전인 1991년 10월 회복된 양국 관계는 푸틴 대통령 집권 이후 더 강화됐다. 러시아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시리아, 이란 핵 등 문제에 관해 대화하며 건설적 관계를 구축했다.
러시아 싱크탱크 국제문제위원회(RIAC)는 지난 3월 보고서에서 "러시아는 급진적 이슬람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억지력을 갖춘 이스라엘을 국제무대에서 파트너로 고려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스라엘도 미국과 유럽의 압박을 받으면서도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과 관련한 서방의 대러 제재에 불참하면서 러시아와의 유대를 드러냈다.
'이스라엘-러시아-팔레스타인'의 미묘한 삼각관계 속에서 러시아는 이번 전쟁에 대한 비난의 화살을 이스라엘이나 하마스가 아닌 미국에 돌렸다. 푸틴 대통령은 미국의 중동 정책 실패가 이번 전쟁의 원인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중재자를 자임하면서 하마스에 억류된 인질 석방에도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가 평화 중재자가 되기는커녕 난처한 입장에 빠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 CNBC는 전문가 분석을 토대로 "러시아가 이번 전쟁에 대한 방향을 잡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태로 이란과 군사·외교적으로 더욱 밀접해진 탓에 중동에서 중립적인 역할을 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공격한 하마스의 배후에 이란이 있다는 의혹이 나오는 만큼, 이번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와 이스라엘의 관계가 틀어질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고 CNBC는 전했다.
미국 등 서방이 이스라엘에 집중하느라 우크라이나 지원에 소홀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러시아의 계산은 복잡해 질 것으로 보인다.
서방 언론은 하마스가 푸틴 대통령의 71번째 생일인 지난 7일 이스라엘을 공격, 우크라이나에 대한 관심을 돌렸다는 점에서 '하마스가 푸틴에게 주는 생일 선물'이라고 비유하기도 했다.
abb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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