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도요새는 파도와 술래잡기

김진수 기자 2023. 10. 14.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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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 남하 소식이 들리기 시작하는 10월, 도요·물떼새들은 이미 서해 갯벌에서 많이 빠졌다.

봄가을로 잊지 않고 서해로 날아드는 도요새는 부지런한 철새다.

시베리아 지역에서 번식을 마친 도요새는 남반구인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까지 날아가 겨울을 난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찾아온 도요새가 갯벌을 독차지하지 않고 필요한 만큼만 머물다 가듯, 이 땅의 갯벌은 우리 세대만의 것은 아닐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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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버드]봄가을로 서해 갯벌 찾는 도요새떼… 끝없는 개발로 철새 중간 기착지들 점차 사라져 유부도, 금강하구 일대로 몰려
가을에 만나는 세가락도요는 머리, 등, 가슴에 밤색 번식깃이 사라지고 등은 엷은 회색으로 변해 있다. 아무 무늬 없는 흰 배 때문에 가을 갯벌에서 눈부시게 흰 새다. 세가락도요가 모래갯벌이 발달한 충남 서천 유부도 해안에서 파도를 쫓아다니며 먹이를 찾고 있다.

기러기 남하 소식이 들리기 시작하는 10월, 도요·물떼새들은 이미 서해 갯벌에서 많이 빠졌다. 2023년의 도요새 탐조도 벌써 끝물이다. 봄가을로 잊지 않고 서해로 날아드는 도요새는 부지런한 철새다. 시베리아 지역에서 번식을 마친 도요새는 남반구인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까지 날아가 겨울을 난다. 계절에 따라 8천~1만2천㎞에 이르는 장거리 여행을 떠나는데 우리나라 서해 갯벌이 중간 지점에 있다.

짧게는 사흘에서 길게는 열흘 동안 쉬지 않고 밤낮없이 날아온 도요새는 기운을 다한 체력 보충에 집중한다. 1~2주 갯벌에서 머무는 동안 하루 스무 시간 넘게 먹이만 찾기도 한다.

세가락도요는 전세계 해안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도요새 중 하나다. 우리나라에서도 겨울을 난다. 물때가 맞으면 세가락도요를 아주 가까이서 볼 수도 있다. 주먹만 한 새는 해안선을 따라 종종걸음으로 온종일 해안가를 달리다시피 한다. 파도가 물러나며 드러난 먹이를 찾으러 해변에 달려갔다가, 밀려드는 파도를 피해 해변을 빠져나오기를 반복한다.

파도와 술래잡기라도 하듯 활발하게 움직일 때는 가늘고 짧은 다리만 바쁘게 놀린다. 머리와 몸은 꼼짝 않고 고정해 마치 태엽을 감아 움직이는 장난감처럼 보인다. 모래갯벌 위를 빠르게 달리는 세가락도요는 뒤쪽 발가락이 없다. 네 발가락을 가진 대부분의 도요새는 앞쪽으로 난 세 개의 긴 발가락과 엄지손가락처럼 뒤쪽으로 짧은 발가락이 있다. 쉼 없이 해변을 달리느라 뒤쪽 엄지발가락이 퇴화해 세가락도요라는 이름도 얻었을 것이다.

몇 년째 추석 연휴 때면 금강하구 유부도 갯벌에서 앙증맞게 달리는 세가락도요를 지켜보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언제 사라질지 모를 최후 보루 같은 게 ‘유부도와 서천 갯벌’의 처지인 탓이다. 2004년 도요새 서식처이던 옥구염전이 폐쇄되고 2006년 새만금 방조제 공사가 마무리되면서, 유부도와 금강하구 일대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도요새가 서식하는 곳이 됐다. 그러나 끝없는 개발로 중간 기착지를 잃어버린 도요새를 모두 품기에는 버겁기만 하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찾아온 도요새가 갯벌을 독차지하지 않고 필요한 만큼만 머물다 가듯, 이 땅의 갯벌은 우리 세대만의 것은 아닐 게다.

서천(충남)=사진·글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매력적인 새를 사진으로 오랫동안 담아온 김진수 선임기자가 다양한 새의 모습과 그 새들이 처한 환경의 소중함을 사진과 글로 전합니다. ‘진버드’는 김진수와 새(bird), 진짜 새를 뜻합니다.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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