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이 사과 같다는 커피의 진실 [박영순의 커피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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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커피 향미를 공부하기 좋은 계절이다.
그러나 점수를 부여해야만 하는 평가의 자리라면, 명료하게 커피 맛을 묘사해야 한다.
커피의 맛을 대변할 과일의 명칭이 정해졌다면, 다음으로 점수를 매기는 정량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커피의 산미가 단맛이 부족한 바람에 과일이 아니라 유기산처럼 느껴진다면 '사과산' 같다고 하고, 단맛이 풍부해 과일처럼 감지된다면 '사과'라고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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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커피 향미를 공부하기 좋은 계절이다. 햇과일은 풍성한 단맛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덕분에 자극적일 수 있는 신맛을 보드랍게 감싸 준다. 품질이 좋고 신선한 커피에서도 잘 익은 사과를 한 입 베어 문 듯한 느낌을 주는데, 이럴 땐 ‘새콤달콤하다’는 우리네 표현이 제격이다. 커피에서 감지된 이러한 감각을 소통할 때, 직역해서 ‘스위트 앤드 사워’(sweet and sour)라고 하기보다는 ‘멜로’(mellow) 또는 ‘타틀리 스위트’(tartly sweet)라고 표현하는 것이 커피가 주는 정서를 더 잘 전할 수 있다.
대체로 단맛은 강도가 높게 느껴질수록 좋은 점수를 받는다. 반면 신맛은 강렬하다고 무조건 좋은 평가를 받는 게 아니다. 커피의 신맛이란 산도(pH)와 반드시 비례 또는 반비례하는 게 아니다. 그러므로, 커피에서 감지되는 신맛을 올바르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의 지표가 더 필요하다. ‘섬세함’(delicate), ‘풍성함’(richness), ‘균형감’(balance), ‘여운’(aftertaste) 등을 종합해 특정 커피가 주는 산미를 평가하고 품질을 가늠한다.
섬세함은 ‘작은 속성이라도 모두 보이는 경지’를 의미한다. 우리말로는 ‘결이 보이는 정도’라고 해도 좋겠다. 풍성함은 ‘강렬함’이기도 한데, 향기라면 입안에 풍선이 있다고 상상하고 얼마나 크게 부풀어 오르는지를 따져 보면 된다. 맛의 풍부함은 커피를 한 모금 머금었을 때 산미가 입안의 얼마나 넓은 영역에 작용하는 것처럼 느껴지는지를 가늠하면 좋다. 품질이 좋은 커피일수록 풍선이 입안을 가득 채우는 듯하고 넓은 점막에서 잘 익은 과일이 닿은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균형감은 커피가 주는 산미가 날카롭게 다가오는 식초 같으냐, 아니면 잘 익은 과일 같으냐를 따지는 지표라고 봐도 좋다. 단맛뿐 아니라 단향과 혀에 감기는 꿀과 같은 질감이 홀로 서면 칼날처럼 고독하기 쉬운 신맛을 감미롭게 하여 긍정적인 면모로 만들어 준다.
전 세계의 커피 전문가들이 커피의 향미를 소통하기 위해 활용하는 ‘플레이버 휠’(Flavor Wheel)에는 사과산(malic acid)과 사과(apple)가 함께 올라 있다. 커피의 산미가 단맛이 부족한 바람에 과일이 아니라 유기산처럼 느껴진다면 ‘사과산’ 같다고 하고, 단맛이 풍부해 과일처럼 감지된다면 ‘사과’라고 표현한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아로마 키트만을 사용해 향기에만 집착하지 말고, 실제 사과를 먹으면서 커피의 맛을 우리의 관능에 기억해 두는 게 좋겠다. 커피는 냄새만 감상하는 음료가 아닌 까닭이다.
박영순 커피인문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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