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 조롱 보란 듯이 나만의 길을 갈 것” 13년 만에 타이푼 컴백한 솔비[복수자들]
2006년 결성된 3인조 혼성그룹 ‘타이푼’은 활동 4년여 만인 2010년 1월 해체된 그룹입니다. 타이푼이 해체됐을 무렵 그는 활동명 솔비를 잠시 접어두고 자신의 본명인 권지안으로 돌아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악성 루머와 댓글로 우울증을 앓던 그가 치료 목적으로 그림을 시작한 겁니다. 치료를 넘어 창작의 세계로 넘어온 그는 2012년 첫 개인전을 열게 됩니다. ‘전업 화가’로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그를 두고 일각에선 가수 활동을 아예 접는 게 아니냐는 추측도 많았습니다.
“2010년 타이푼 해체되고 한참 뒤인 2017년에 ‘그래서…’와 ‘우하하’라는 곡으로 리메이크 앨범을 낸 적이 있어요. 그걸 듣고 거북이 선배님의 ‘비행기’를 제작하신 분이 저희한테 제안해주셨죠. 타이푼이 거북이의 노래 ‘비행기’를 불렀으면 좋겠다고요. 흔쾌히 제안에 응했어요. 거북이 선배님들에 대한 저희 기억이 엄청 좋았고요. ‘비행기’는 터틀맨(故 임성훈) 선배님의 훌륭한 업적이기도 해서 타이푼 스타일로 밝게 부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비행기’ 리메이크 작업을 계기로 멤버들이 다시 뭉치게 됐어요. 우리 이렇게 끝내지 말고 신곡도 내보자고요. 13년 만에 나온 신곡이에요. 제목은 ‘왜 이러는 걸까’입니다.”
―이전의 타이푼 곡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입니다.
“신곡 작업할 때 멤버들끼리 한 이야기가 있어요. 원래 우리가 했던 신나는 댄스곡 말고 다른 스타일의 노래를 해보자고요. 따뜻한 가을에 어울리는, 사랑이 넘치는 설레는 음악을 하고 싶었어요. 우재(타이푼 리드보컬)씨가 ‘복면가왕’에 출연해서 좋은 결과를 얻으면서 컴백 타이밍도 좋았어요. 우재 씨가 가창력이 굉장히 좋거든요. ‘복면가왕’을 통해서 우재 씨의 가창력이 널리 알려진 것 같아 너무 기뻤어요.”
―올해는 ‘작가 권지안’이 아닌 ‘가수 솔비’로만 활동하시는 건가요?
“올해는 미술 분야에선 안식년을 갖고 있어요. 10년 동안 작가로서 그림을 그려오면서 한 번 쉬어가는 것도 필요하다고 느꼈거든요. 새로운 작업을 위해선 다른 에너지도 필요하잖아요. 올해는 특히 음악에만 집중해보고 싶어서 ‘왜 이러는 걸까’ 다음으로 준비하는 음반도 있어요.”
―솔로 음반인가요?
“가수 알리 씨랑 함께 작업한 곡이에요. 최근 알리 씨랑 이탈리아, 스위스 여행을 다녀왔거든요. 그곳에서 영감을 받아서 제가 작사하고 알리 씨가 음악을 만들었어요. 11월 공개 예정이에요. 제목은 ‘에스프레소 마티니’입니다. 제가 ‘에스프레소 마티니’라는 칵테일을 되게 좋아하는데, 거기에서 영감을 받아 가사를 썼어요.”
―타이푼 활동 시절 다른 멤버들보다 큰 인기를 누렸어요.
“활동할 당시 제가 너무 바빴어요. 솔로 활동이 너무 많아지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타이푼 활동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죠. 제가 자발적으로 팀을 나온 건 아니었어요. 개인 활동이 많아지고 수익이 커지니까 회사에서 자연스럽게 분리한 거였죠.”
―타이푼 해체 후 멤버들과는 어떻게 지냈나요?
“가족 같았던 사이였어요. 팀이라는 게 비즈니스 관계라고 하지만 멤버들은 나의 모든 걸 다 알고, 그 사람의 모든 걸 다 알잖아요. 어쩌면 가족보다 가깝기 때문에 서운한 게 많을 수 있고요. 가족처럼 느끼기 때문에 험한 말이 오갈 수도 있는데 그러면서도 사이가 좋았어요. 우재, 지환 모두 저보다 동생인데 누나누나 하면서 잘 따랐고요.”
―불화는 없었나요?
“싸운 적도 많았죠. 굉장히 충격을 받았던 에피소드가 있었어요. 멤버들의 문제라기보단 당시 매니저의 문제였죠. 그땐 혈기 왕성한 20대 초반이었잖아요. 한창 예쁠 때였고 연애도 하고 싶었고요. 그러다 보니까 매니저가 멤버들한테 ‘솔비 누나를 감시해라’고 시킨 거예요. 제가 어디로 튈지 모르니까 매니저는 걱정되니까 그랬던 건데…. 제 입장에선 그 사실을 알고 나서는 기분이 나빴어요. 그걸 시킨다고 또 하냐면서(웃음).”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위기였습니다. 그는 치료를 받아야 하는 수준의 우울증을 앓게 됩니다. 타이푼 해체 후 방송활동을 줄인 그는 우울증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미술을 접하게 됩니다. 처음엔 내면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미술이 지금은 그의 일부이자 전부가 됐습니다. 10년 만에 ‘가수 솔비’는 ‘작가 권지안’이란 호칭이 더 이상 어색하지 않은 사람이 됐습니다.
―‘가수 솔비’와 ‘작가 권지안’. 본인과 더 닮은 자아는요?
“솔비는 입혀지고 포장된 캐릭터에 가까워요. 사회에서 생성되는 인격이 있고 원래의 내가 가진 천성이 있잖아요. 실제의 저는 내성적이고 진지할 때도 많아요. 하지만 ‘방송인 솔비’는 어쨌든 시청자에게 재미와 즐거움을 줘야 하잖아요. ‘가수 솔비’는 무대에서 화려해야 하고요. 그런 의무감 때문에 특정 이미지가 강조되어서 가끔 지칠 때도 있어요. 하지만 ‘작가 권지안’은 원래의 제 모습을 전부 포용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내성적이고 진지하지만 재밌거나 화려할 때도 있고요. ‘본래의 나’라는 편안함이 ‘작가 권지안’일 때 더 느껴지는 것 같아요.”
―‘플라워 프롬 해븐’은 어떤 작품인가요?
“개인적인 의미가 큰 작품이에요. 2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거든요. 아버지를 추모하려고 ‘플라워 프롬 헤븐’이라는 음악을 만들고 가사를 쓰려고 했어요. 근데 아버지를 잃은 상실감을 대신할 수 있는 단어가 없는 거예요. 가사를 다 지우고 허밍으로 노래를 했어요. 허밍으로 부른 ‘플라워 프롬 헤븐’을 모티브로 그린 그림이에요. 이 그림에 스피커를 심어뒀는데, 그 안에 허밍 음악을 담았어요. 그림 낙찰받은 사람만 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거죠.”
―어떤 음악인지 궁금합니다.
“그림을 낙찰 받은 분께 음악 공개 여부를 결정할 권한이 있어요. 근데 그분께서 결국 음악을 공개하지 않으셨어요. 그분이 공개하지 않는 한 들을 수 있는 방법은 없어요.(웃음)”
―그림을 사는 분들을 위해 늘 기도하신다면서요.
“저는 힘들고 우울하고 심리적으로 불안정할 때 미술을 선물처럼 만났거든요. 제가 그림을 통해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고 잘 극복했듯이 제 그림을 보는 분들도 치유의 에너지가 전달됐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그림을 구입해서 집에 걸어둔다는 건 마치 가족이 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내 공간에 누군가 들어와서 같이 사는 거잖아요. 그래서 누군가의 공간에 걸리든 제 그림이 행운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죠.”
―‘작가 권지안’의 창작 동력은 긍정적 에너지인가요?
“제 작품들 중 상처에 대한 표현을 담아낸 작업도 있지만 그럼에도 전 항상 긍정을 담으려고 해요. 왜냐하면 내가 미술을 통해서 극복했고 희망을 갖게 됐기 때문이에요. 미술뿐 아니라 삶도 그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희망을 갖기 위해 살아가는 거잖아요.”
―‘작가 권지안’을 향한 조롱과 폄하가 ‘가수 솔비’에 대한 악성 댓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평이라는 건, 작가를 분석하고 그 작가에 대해 작가의 세계를 정확하게 안 다음에라야 제대로 할 수 있는 거예요. 저에 대해 분석도 않고 시류에 한두 마디 보태는 건 농담 따먹기 수준이라고 생각해요. 처음엔 화가 났다기보다는 평론하시는 분이 방송에 나와서 저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계실까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평론가는 평론할 때, 방송인은 방송할 때, 화가는 그림 그릴 때 멋있어야 하잖아요. 그렇지 않다면 받아들일 가치가 있나요?”
―본인 작품에 대한 비평 중에 와 닿았던 것도 있나요?
“웬만한 비판적인 시각에 대해선 정말 흥미롭게 봐요. 왜냐하면 작가가 자기 세계에 빠져서 깊은 골로 들어갈 때가 더 문제거든요. 이걸 객관적인 눈으로 보려고 노력해야 해요. 그걸 가능하게 하는 비평은 작가에게 좋은 재료이고 좋은 자극이에요.”
―‘연예인 프리미엄’이라는 의견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연예인이니까 프리미엄 붙는다’ ‘연예인 작품이니까 사는 거다’라고 말씀하시는데 실제로 돈을 주고 그림을 사 갈 때는 연예인이라서 사는 분은 없다고 생각해요. 저의 가수, 연예인으로서의 커리어와 저의 작품 가치는 별개라고 생각해요.”
―미술을 통해 다른 이를 돕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거창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에요. 저는 미술을 통해서 치유를 받았잖아요. 제가 받은 긍정, 치유의 에너지를 나누고 싶은 거죠.
제게 있어 미술은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아니에요. 저는 미술로 인생 공부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인내력이나 다양한 생각과 시야. 미술의 재료를 찾기 위해 자전적인 탐구를 한다거나 하는 것들이요. 미술을 통해서 조금씩 세상을 알아가고 있어요.”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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