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두둥등장’ 만큼 세상 바꿀 기술이라는데…메타의 승부수 통할까 [홍키자의 빅테크]
가상현실(VR) 기기 가격이 딱 5000원 정도 하면 구매하시겠습니까?
커피 한잔보다 살짝 비싼 수준인데, 한 번쯤 사볼 만도 하겠죠. 2014년에 구글이 내놓은 VR 기기 ‘카드보드’ 가격이 놀랍게도 그랬습니다. 처음에 공개했을 때 1만원을 조금 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배송비까지 들여도 5000원이면 살 수 있었죠.
2015년부터 구글은 회사 행사를 포함해 각종 행사장에 1500만 개의 카드보드를 뿌렸습니다. 값싼 기기로 VR 시장 자체를 키워보겠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요즘 VR 기기가 아무리 싸져도 몇십만원은 들여야 하니, 여전히 큰 맘 먹어야 살 수 있는 아이템이잖아요. 기기가 대중화돼야 판이 바뀌는 것은 변함이 없으니, 구글은 교육용 콘텐츠를 내놓으며 카드보드 대중화에 공을 들였죠.
카드보드를 이용해 VR 시장을 노렸던 구글의 꿈은 현재는 송두리째 사라졌습니다. 카드보드를 구매하는 사람은 이젠 없으니까요.
구글이 카드보드를 공개한 그 해, 가상현실 스타트업 ‘오큘러스’를 인수한 이 회사는 현재는 XR(가상현실·증강현실) 기기 시장 점유율 81%를 차지할 정도로 VR 최강자가 됐습니다. 바로 ‘메타’죠.
메타가 새로운 XR 기기 ‘메타 퀘스트3’을 공개하고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눈앞이 차단되는 VR 기기가 아닌, 헤드셋을 써도 내 앞의 공간이 보이는 MR(혼합현실) 기기입니다. 한국에서는 이달 10일부터 판매가 이뤄지고 있죠. 메타가 심혈을 기울인 새 기기는 이 시장의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을까요? 훅 꺼져버린것만 같은 메타버스 4음절의 불씨도 살릴 수 있을까요?
그동안 메타는 가상현실(VR) 기기를 선도해 온 회사였죠. 헤드셋을 머리에 쓰면 현실이 차단되고, 눈 앞에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식입니다. VR헤드셋을 끼면, 마치 놀이공원의 롤러코스터 위에 탑승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죠. 반면 이번 메타 퀘스트3로 헤드셋을 쓰고도, 나의 세계와 그대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겁니다.
MR 시장이 커지기 위한 전제 조건은 몇 가지가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더 많은 MR기기가 보급돼야하고, 한번 쓰고나면 어지간해서는 벗지 않아도 될 정도로 불편하지 않아도 돼야 하죠. 즐길 콘텐츠가 많아야하기도 합니다.
메타가 그간의 VR기기를 넘어 MR기기로 실제 현실과의 연결성을 강조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현실과 단절되지 않고 있음을 느낄 때, 조금 더 오래 착용할 가능성이 커지죠.
게다가 이전 모델보다 덜 무겁고 눈이 피로하지 않아야 신형기기가 될 겁니다. 실제로 메타는 퀘스트3에서 팬케이크 광학렌즈를 도입했습니다. 이를 통해 헤드셋 디스플레이 측면을 40% 가까이 얇게 만들었고, 무게도 전작에 비해 가벼워졌습니다.
가격은 500달러부터 시작합니다. 한국에서는 128GB짜리가 69만 원입니다. 100만원을 훌쩍넘는 신형 플래그십 스마트폰을 떠올려보니, 생각보다 저렴하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3500달러, 400만원대에 달하는 애플의 MR헤드셋 ‘비전프로’와 비교해봐도 5~6배 싼 수준입니다.
이미 메타는 지난 6월부터 VR게임 구독 서비스를 시작한 바 있죠. 매달 두 가지 신규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메타 퀘스트+’ 서비스고요. 월 구독료는 7.99달러로, 1만5000원이 안됩니다. VR 게임에서 가장 유명한 게임은 비트를 쪼개는 게임 ‘비트세이버’죠.
올해 VR 피트니스 스타트업 ‘워딘 언리미티트(Within Unlimited)’를 인수한 것도 이같은 게임 전략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이 회사는 가상세계에서 피트니스 수업을 받을 수 있는 ‘슈퍼네이처’라는 게임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죠. 단순 게임보다 한층 고도화된 ‘피트니스’까지 공략하고 있는 셈입니다.
게임이 중요한 이유는 결국 ‘재미’ 때문입니다. 가상세계와 관련해 늘 인용하는 게임 관련 글은 오웬 마호니 넥슨 대표의 회사 기고인데요. 그는 기고를 통해 “메타버스의 본질은 ‘게임’이다. 이용자들이 재미를 느낄 수 있어야 지속할 수 있다. 수많은 소비자가 특정 엔터테인먼트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실제로 재미있어야 한다. 이에 대한 명확한 답이 없다면 우리는 그 누구도 우리의 가상 세계에 놀러 오도록 설득할 수 없으며, 방문자가 없다면 사업성 또한 사라지게 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사람을 끌어모으려면 재밌어야 한다는 것이고, 재밌는 플랫폼은 사람을 끌어아 돈을 벌 수 있죠. 메타의 게임 콘텐츠가 더 재밌으면 재밌을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기기를 기꺼이 구매해 게임을 즐기겠죠. 기기 성능이 좋으면 좋을수록 더 게임에 몰입할 수 있을 것이고요.
이미 전작인 퀘스트2로만 1600만대 넘게 팔아본 메타로서는 퀘스트3을 500달러에 내놓는 전략이 제대로 된 전략이라고 믿고 있다는 겁니다. 아무리 애플이 충성 고객이 많다고 한들 400만원대의 꼭 구매하지 않아도 될 제품을 사도록 하는 데 실패할 것이라는 판단입니다. 완벽하게 반대의 전략입니다.
메타와 애플의 정면대결이 펼쳐지면, 꺼져버린 메타버스의 불씨가 살아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메타는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기반으로 개방형 생태계에 들일 각 회사를 더 많이 포섭할 테고요. 애플은 기기가 구동될 소프트웨어와 앱스토어 생태계, 킬러 앱까지 질서 정연하게 내놓겠죠. 그럼 이제 한물간 4음절인 메타버스라는 단어도 다시 대중의 관심목록에 올라갈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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