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더 줘도 연탄 배달 안 된대요” 취약계층의 힘겨운 월동준비

이유진 2023. 10. 14.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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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저녁으로 기온이 뚝 떨어져 쌀쌀합니다. 이런 추위는 어려운 이웃들에게 더 길고 혹독합니다.
이들은 겨울을 창고에 채워 둔 연탄에 기대 나야 합니다. 그런데 돈이 있어도 연탄을 쌓아두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골목길이나 고지대에는 연탄 배달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싼 인건비에 기름값까지 오르면서, 연탄 소매점에서는 배달을 할래야 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이들이 기댈 곳은 이웃의 도움의 손길뿐이지만 최근에는 연탄을 배달해줄 자원봉사자들까지 줄어 취약계층의 겨울나기는 더 힘들어질 전망입니다.
연탄을 배달하기 위해 춘천 연탄은행 자원봉사자들이 연탄을 나르고 있다


강원도 춘천시의 한 언덕마을에 연탄을 한가득 실은 트럭이 들어섭니다. 트럭이 도착하자 자원봉사자들이 서둘러 연탄을 옮길 준비에 나섭니다. 지게에 8장의 연탄을 싣는 것도 모자라 한 손에 연탄 2장까지 들고서 이들은 서둘러 발걸음을 옮깁니다.

춘천 연탄은행 자원봉사자들이 연탄을 배달하고 있다


30킬로그램이 넘는 연탄을 지고 좁고 가파른 골목길을 오가면 어느새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숨은 가빠집니다. 그렇게 연탄을 싣고 내리기를 수차례. 연탄 무게에 지게가 어깨를 짓누르지만, 발걸음은 멈추지 않습니다.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한 집이라도 더 연탄을 배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 "웃돈을 준다고 해도 배달이 오지 않아요"...취약계층의 막막한 월동준비

올해 82살인 박옥순 할머니에게 연탄을 배달해주는 자원봉사자들은 말할 수 없이 고마운 존재입니다. 보행기가 없으면 제대로 걷기도 어려울 만큼 몸이 불편해, 자원봉사자들이 아니면 가파른 언덕 위에 있는 단칸방에 연탄을 옮길 방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할머니는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자원봉사자들이 오는 날이면 불편한 몸을 이끌고 대문 앞까지 나와 반갑게 맞이합니다.

연탄을 이용해 난방을 하는 박옥순 할머니


"우리 집이 언덕이고 골목을 한참 올라와야 하니까 돈을 더 준다고 해도 배달이 오지 않아요. 그나마 이분들 덕분에 겨울을 나는데 이마저도 없으면 덜덜 떨어야 하죠"

박옥순 할머니가 하루에 사용하는 연탄은 4장. 한 달이면 약 120장이 필요합니다. 지금부터 날씨가 풀리는 내년 4월까지 필요한 연탄은 어림잡아 700장이 넘습니다. 고령에 몸까지 불편한 할머니는 늘 이맘때면 연탄을 옮겨줄 자원봉사자들만 기다리게 된다고 말합니다.

"언덕 아래에 연탄을 쌓아달라고 해서 지게에 지고 올라와서 때지 힘들어도 어쩔 수가 있나..."

또 다른 언덕 마을에 사는 박재철 할아버지도 다가오는 겨울이 막막하기 마찬가지입니다. 부쩍 쌀쌀해진 날씨에 연탄 대리점에 전화를 걸어 봅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늘 비슷합니다. 언덕 맨 꼭대기에 있는 할아버지의 집에 배달은 어렵다는 말에 쓴웃음을 짓습니다.

겨울을 앞둔 박재철 할아버지의 연탄 창고에는 연탄 4장만이 남아있다


이 때문에 예전에는 급할 때면 직접 지게를 매고 언덕을 내려가 연탄을 싣고 올라오기도 했다고 합니다.여든 살이 넘은 할아버지에게 이제는 그마저도 버거운 일이 됐습니다. 겨울을 앞두고 박재철 할아버지도 자원봉사자들이 오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 비싼 인건비와 유류비에 연탄 소매업자도 울상

웃돈을 준다고 해도 배달을 꺼리는 상황. 왜 그럴까요? 연탄을 파는 소매업자들도 나름의 사정이 있어 그들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연탄을 사용하는 가정이 줄어들면서 연탄 배달은 사양산업화 된 지 오래입니다. 이렇다 보니 연탄 소매업자들도 고령에 홀로 주문 받고, 배달하는 일까지 도맡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거리가 먼 교외나 좁은 골목길에 있는 집까지 연탄을 한 장 한 장 들어서 배달하긴 어려운 상황입니다.

연탄 배달을 위해 트럭에 연탄을 싣고 있다


"차도 못 들어가는 곳에 배달하려면 일일이 지게에 매고 올라가야 하는데 100장 옮기려면 종일 걸려요. 기름값도 올라서 연탄을 팔면 남는 게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손해를 본다니까요."

비싼 인건비와 치솟는 유류비도 연탄 배달의 장애물입니다. 소매점에서 파는 연탄은 1장에 850원.
연탄 1장을 팔면 100원 남짓 남습니다. 100장을 팔아도 만 원 한 장 손에 쥐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람을 쓰고 싶어도 여력이 되지 않습니다. 또 4년 전 춘천에 있던 연탄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연탄을 구하러 멀리 떨어진 경기도 이천이나 경상북도 문경까지 가야 하는데, 유류비가 올라 이마저도 점점 부담되고 있습니다.

소매업자로부터 연탄을 받아 배달을 준비 중인 춘천 연탄은행 자원봉사자들


"어려운 분들을 생각하면 저희가 배달을 해드려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라 마음이 무겁죠. 그나마 연탄 은행에서 어르신들에게 가져다주니까 참 다행입니다."

■ "일손이 필요한데"... 코로나19 이후 줄어든 자원봉사자

춘천 연탄은행 정해창 대표가 지게를 매고 직접 연탄을 나르고 있다


이런 이유로 배달 불가 지역에 사는 어려운 이웃들이 기댈 곳은 자원봉사자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코로나 19 대유행을 지나면서 연탄배달 자원봉사자들마저 급격하게 줄었다는 점입니다. 올 겨울 무엇보다 큰 걱정입니다.

소외계층의 연탄 창고에 연탄을 쌓고 있는 춘천 연탄은행 자원봉사자들


"겨울이 오기 전에 최대한 많이 배달해야 하는데 사람이 없어서 쉽지가 않네요."

올해 연탄은행의 연탄 배달을 기다리는 취약계층은 강원도 춘천에만 1,000여 가구가 넘습니다. 이들에게 연탄을 배달하려면 5,000명 정도의 일손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지난해에는 4,000여 명에 불과했습니다.

20년 넘게 춘천에서 연탄을 배달해온 춘천 연탄 은행 정해창 대표는 당장 올해 겨울이 걱정이라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연탄을 기다리는 사람은 많은데 배달 봉사를 할 사람은 없어 조급한 마음에 최근에는 직접 배달까지 나섰습니다.

유독 추운 날씨가 예상되는 이번 겨울. 소외된 이웃들의 겨울나기 준비는 벌써부터 녹록치 않습니다.

"사람의 체온은 36.5도인데 연탄 무게가 3.65kg입니다. 우연일지 모르겠지만, 숫자가 딱 맞아 떨어져요. 작은 연탄 한 장이 어려운 이웃들의 체온을 지켜주는 겁니다. 소외된 분들이 조금이라도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길 바랍니다."
-춘천 연탄은행 정해창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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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 기자 (newjean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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