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싶은 게 남았다"…단색화 거장이 포기하지 않은 '한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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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부탁하건대 안부 전화하지 마라. 나는 캔버스에 한 줄이라도 더 긋고 싶다."
마치 수행하듯 반복해서 선을 긋는 '묘법'(Ecriture·描法) 연작으로 잘 알려진 고(故) 박서보 화백은 생(生)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작품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은 작가였다.
세계 미술계가 바라보는 '박서보'는 한국 단색화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대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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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협업 등 다양한 활동…3주 전 "내년에도 바람에 귀 기울일수 있길"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다시 한번 부탁하건대 안부 전화하지 마라. 나는 캔버스에 한 줄이라도 더 긋고 싶다."
지난 2월 박서보(본명 박재홍) 화백은 '별일'이 아니라는 듯 담담히 소식을 전했다.
그저 '나이 들어 마른기침이 많아졌다 생각'했다는 그는 당시 폐암 3기 판정을 받았다고 했다. 92세의 노(老) 화백은 온라인으로 전한 글에서 무언가를 탓하지도, 후회하지도 않았다.
그는 "아직 그리고 싶은 것들이 남았다"며 의미 있게 시간을 쓰겠다고 다짐할 뿐이었다.
마치 수행하듯 반복해서 선을 긋는 '묘법'(Ecriture·描法) 연작으로 잘 알려진 고(故) 박서보 화백은 생(生)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작품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은 작가였다.
고인은 한국 현대미술을 상징하는 대표적 인물로 평가받는다.
1931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난 그는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뒤, 1950년대 후반 '앵포르멜'이란 현대미술 운동을 촉발해 한국 현대미술의 전형을 만들어냈다.
젊은 시절의 그는 정부가 1949년 창설해 주도해 온 미술 행사인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이른바 '국전'(國展)을 거부하고 반기를 들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어린아이의 서툰 글쓰기에서 착안해 시작한 묘법은 그의 대표작이자 작품 세계 그 자체다.
1970년대 초기에는 캔버스에 물감을 칠한 뒤 연필로 선 긋기를 반복했다면, 이후에는 전통 한지를 현대 회화의 주체로 끌어들였고 풍성한 색감을 더한 색채 묘법을 선보이기도 했다.
생전 고인은 그림을 '수신(修身)을 위한 수행의 도구'라고 정의하며 "서양에서는 자신을 드러내는 데 중점을 두지만 나는 반대로 표현하는 게 아니라 비워내고자 했다"고 말했다.
꾸준한 작업과 예술적 집념은 그가 '단색화의 거장'이 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세계 미술계가 바라보는 '박서보'는 한국 단색화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대가였다.
그의 1979년작 '묘법 NO. 10-79-83'은 2017년 5월 열린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1천26만 홍콩달러, 당시 한화 기준으로 약 14억7천400만원(수수료 포함)에 거래돼 주목받았다.
이후 수많은 경매에서 그의 작품은 인기를 얻으며 20억원대(최고가 기준)에 거래되기도 했다.
이처럼 미술계의 '큰 어른'이었던 그는 최근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해왔다.
2000년대 들어서는 미국, 중국 등 여러 국가에서 작품을 선보이며 한국의 단색화를 널리 알렸고, 2019년에는 후진 양성을 위한 재원을 기탁해 '기지재단'을 설립했다.
지난해에는 한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명품 브랜드인 루이비통과 함께 디자인한 가방 '아티카퓌신' 컬렉션을 선보여 관심을 끌기도 했다.
그는 올해 암 투병 소식을 전한 뒤에도 작품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았다.
지난 3월에는 제주 서귀포시의 JW 메리어트 제주 리조트&스파 호텔 부지 내에 자신의 이름을 딴 첫 미술관인 '박서보미술관'(가칭)을 세운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최근까지도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작업 모습을 촬영한 사진, 영상을 공개해왔다.
고인이 남긴 마지막 글과 사진은 3주 전, 9월 22일의 것이다.
"가을인가. 바닷(가) 바위에 파도가 부딪히는 소리도 사뭇 차가워지고. 내년에도 이 바람에 귀 기울일 수 있으면 좋으련만."
ye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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