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한 줌도 안 되는 비국가행위자가 전쟁을 일으키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 하마스 간의 충돌이 일주일을 넘어섰습니다. 현재까지 이스라엘에서는 1천3백여 명이 숨지고, 3천2백여 명이 다쳤습니다. 팔레스타인 사망자는 1천4백 명, 부상자는 6천8백여 명입니다. 사상자 수를 합치면 1만 명이 훌쩍 넘습니다. 일주일 새 1만 명 넘는 사람들이 다치고, 숨진 건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1만 명'이라는 숫자가 너무 많아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죠.
하마스는 누구인가?
무력 충돌은 지난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 남부를 습격하면서 시작됐습니다. 공격당한 이스라엘이 현 상황을 '전쟁'이라고 규정하면서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교전은 곧바로 전쟁으로 번졌습니다.
이스라엘과 크고 작은 교전만을 반복해오던 하마스가 대대적인 공격에 나선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하마스의 정체와 팔레스타인의 상황부터 알아야 합니다. '이슬람 저항운동'을 뜻하는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대항해 무장 투쟁을 하는 팔레스타인 내 정치세력입니다. 인 교수는 이번 사태를 '팔레스타인 내 하마스의 정치권력 투쟁이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합니다.
팔레스타인에는 두 정치 세력이 있습니다. 무장 정치세력인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최대 조직인 '파타'입니다. 하마스는 강경파, 파타는 온건파로, 이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입장', '무장 투쟁 방식' 등 여러 사안에 대해 의견 차이를 보이며 늘 충돌해 왔습니다. 지난 2006년 팔레스타인 선거에서 하마스가 파타를 누르고 압승하긴 했지만, 하마스는 내전 끝에 가자지구로 밀려났죠. 그리하여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파타가 집권 여당으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함께 서안지구를 통치하고 있습니다.
하마스는 왜 이러는 걸까?
팔레스타인을 둘러싼 지정학적인 변화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지난 2020년, 이스라엘은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등 중동 내 여러 아랍 국가들과 수교를 맺었습니다. '아브라함 협정'이죠. 인 교수는 '아브라함 협정으로 아랍 형제국이 줄줄이 이스라엘과 수교할 때 팔레스타인은 고립무원이었다'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에 사우디마저 이스라엘과 손을 잡으면 팔레스타인의 존립이 위태로워지니, 판을 흔들기 위해 도발을 감행했습니다. 팔레스타인, 그 중에서도 더 고립돼 있는 하마스가 기댈 곳이 사라지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 선제적으로 공격에 나선 겁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 국내 상황 역시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스라엘은 극우 성향인 네타냐후 총리가 집권한 이래로 정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네타냐후 정부가 사법부 권한을 줄이는 '사법개혁'을 추진하자, 이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기도 했죠. '이스라엘 건국 이래 최악의 분열'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내부 갈등은 극심했습니다. 인 교수는 '이스라엘 내부에서 하마스의 도발은 국가 위험 수준으로 인식되지 못했다'면서 '(이스라엘의) 방어태세가 약화된 것을 하마스가 이용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마스는 이전과 얼마나, 어떻게 달랐나?
인남식 교수는 하마스의 이번 공격 패턴에 4가지 특성이 있다고 봤습니다. 입체성, 전격성, 잔혹성, 상징성입니다.
1) 입체성 : 앞서 언급했듯 하마스와 이스라엘은 크고 작은 교전을 반복해왔습니다. 주로 하마스가 먼저 공격하고, 이스라엘이 이에 대응하는 패턴이었습니다. 16년 동안이나 반복됐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인 교수는 '로켓포 공격 규모가 수천 발로 완전히 다르고, 전동 패러글라이딩이나 보트로 해상침투, 드론 정밀타격 등 전방위적이고 다양한 공격 수단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이전의 하마스와는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2) 전격성 : 이 점은 이스라엘의 정보 실패와 연결됩니다. 세계 최강의 정보력을 자랑하는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공격을 예상조차 못 했습니다. 이스라엘로선 사전에 아무 정보 없는 상태에서 공격을 당해 충격이 더 컸을 겁니다. 인 교수는 '하마스의 기동력, 전력에 대해서 이스라엘이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평가하지 못 했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군의 정보 실패는 하마스가 전격적인 공격에 나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3) 잔혹성 : 원래도 잔인했던 하마스는 더 잔혹해졌습니다. 인 교수는 '기존 공격 패턴이 로켓을 통한 타격이었다면, 이번에는 사람이 직접 가서 총으로 살상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합니다. 예전에는 굳이 사람을 투입하지 않았다면, 이제는 누군가에게 직접 총구를 겨누는 공격이 이뤄지는 겁니다. 비무장 민간인에 대한 테러의 조직화, 일상화 양상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4) 상징성 : 이번 공격은 50년 전에 있었던 '욤키푸르 전쟁' 50주년인 10월 6일 바로 다음 날에 시작됐습니다. 욤키푸르 전쟁은 1973년 10월 6일,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을 기습 침공하면서 19일 동안 이어진 전쟁입니다. 이스라엘에게는 뼈아픈 날입니다. 인 교수는 '이스라엘 국민들에게 트라우마가 큰 전쟁인데, 이날(50주년 다음 날)을 공격 일자로 택한 건 이스라엘로선 반세기 전을 떠올리게 된다'고 얘기했습니다. 하마스가 즉흥적, 충동적으로 공격한 게 아니라 꽤 오래 준비해서 타이밍까지 고려했다는 겁니다.
앞으로 하마스와 이스라엘은 어떻게 행동할까?
이스라엘 머릿속은 복잡해졌습니다. 평생 없애고 싶었던 하마스를 그대로 둘 수도, 그렇다고 정말 없앨 수도 없는 딜레마에 놓인 겁니다. 하마스는 민간인들 사이에 섞여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모두 제거했다고 해도, '남김없이 제거했는가'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더 강경해진 제2의 하마스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최근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전원 대피령을 내렸습니다. 대규모 지상작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은 듯합니다. 어쩌면 이스라엘은 하마스 해체뿐만 아니라 가자지구에 대한 지배권까지 목표로 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비판 여론 또한 무시할 순 없습니다. 가자지구는 우리나라 세종시와 면적이 비슷합니다. 세종시보다 조금 더 좁은 땅에 230만 명이 함께 살고 있죠.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전면 봉쇄하자, 유엔은 국제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비판했습니다. 하마스가 잔혹한 전쟁을 일으킨 건 맞지만, 여기에 이스라엘이 '봉쇄'라는 맞대응 카드를 꺼내들자 양측 모두에 대한 비판이 거세진 상황. 더 많은 사상자가 나온다면 비판 강도는 더 세질텐데, 이 역시 이스라엘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미국, 중국, 사우디는 어떤 입장일까?
"중동 지역은 지난 20년보다 오늘날 더 조용하다."
(The Middle East region is quieter today than it has been in two decades).
-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지난 9월 28일)
중동의 중재자를 자임한 중국은 일단 중립 노선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 중국의 친구'라며 적극적인 개입은 자제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독립국가 인정을 주장하고 있긴 하지만, 이번 사태에 대해서는 원론적인 입장만 표명한 겁니다. 양측의 갈등이 극심해지는 상황에서 '우리는 모두의 친구'라는 중국이 누군가를 설득하는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회의론도 나옵니다.
'아랍의 큰형' 사우디도 마음이 편치 않죠.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밀당을 하며 얻어낼 건 얻어내고 있었는데, 전쟁으로 모든 게 중단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미 전쟁은 발발했고, 어떤 역할을 자처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인 교수는 '사우디가 차라리 아랍의 지도자를 자임하면서 호흡을 조절하고, 이를 통해서 레버리지를 모색하는 쪽으로 잠시 발을 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빅 딜은 잠시 멈추고, 아랍 내 역할을 고민한다는 겁니다.
하마스의 도발로 인한 전쟁으로 1만 명이 숨지거나 다쳤습니다. 이들 중에는 민간인도 많습니다. 증오가 담긴 전쟁의 참혹함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더 우려스러운 건, 어떤 극단주의자는 하마스를 영웅으로 평가하면서 추종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인 교수는 '한 줌도 안 되는 비국가행위자들이 세상을 어떻게 흔드는지 보여줬다'고 분석했습니다. 테러리스트들은 작은 힘으로 세상을 뒤흔드는 동력이 생겼다는 걸 증명하려 할지도 모릅니다. 세상은 더 불안정해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애도되지 못한 채 죽어가겠지요. 전쟁의 참혹함을 더 목도하기 전에 어떻게 전쟁을 끝내야 할지 함께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사진=AP, 연합뉴스)
조윤하 기자 hah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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