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법안]“설마 우리 아이들도?” 판 커진 도박과의 전쟁…대응 법안은
국회선 신속 사이트 차단 위한 법안 계류 중…“아이들 중독 전에 막아야”
(시사저널=변문우 기자)
최근 부산 금정구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집단으로 온라인 불법 도박인 스포츠 토토를 한 사실이 알려졌다. 학교 측의 진상조사 결과, 온라인 불법 도박을 한 학생은 총 15명이었다. 이중 9명은 단순 호기심에 시작했지만 나머지 6명은 수십만 원 이상씩 쓰며 도박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학교에서도 뒤늦게 온라인 불법 도박 예방 교육과 사후조치에 나섰다. 하지만 부모들 사이에선 '우리 아이도 도박에 손댄 것은 아닐까' 우려가 일파만파 커지는 분위기다.
최근 온라인상 불법 도박이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학생들이 스마트폰 앱이나 게임 알림창 등으로 불법 도박 사이트가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어서다. 실제로 도박 중독으로 상담 받는 청소년은 매해 늘고 있다. 10일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에 따르면 올해 1~8월 청소년 온라인 불법도박 상담 건수는 1406건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전체 상담 건수(1460건)에 이미 육박한 수치다.
특히 10대들이 도박을 경험하는 연령도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2022년 청소년 도박 문제 실태조사'에 따르면, 도박을 처음 접하는 나이는 평균 11.3세로 나타났다. 여기에 실제 경찰에 도박 혐의로 붙잡힌 청소년들도 급증하고 있다.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10대 도박 입건 현황'에 따르면, 도박사범 피의자는 2018년 104명, 2019년 99명, 2020년 190명, 2021년 134명, 2022년 122명으로 나타났다.
청소년의 도박 중독은 2차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불법 도박 자금 마련을 위해 학생들 사이 고리대금까지 등장하거나 금품 갈취, 특수 협박 등 범죄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앞서 지난 8월 광주와 전남에서도 한 학생이 차량 내부에 보관돼 있던 현금 등 총 600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혐의(특수절도 등)로 구속됐다. 당시 A군은 인터넷 도박에 사용할 자금이 필요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방통위 불법사이트 심의 절차 개선 나선 국회
일각에선 정부가 도박 정보를 유통시키는 사이트들을 더욱 강력히 단속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불법 사이트 운영자가 복제 사이트를 개설하는 데는 1~2일밖에 걸리지 않는다. 반면 방송통신위원회가 해당 불법 사이트들을 신고·차단하는 등 행정 처리를 진행하는 데는 약 3~6주가 소요된다. 일주일에 2번의 회의가 열리고, 평균 2000여건을 심의하다 보니 효율적인 대처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는 셈이다.
이에 국회에서도 신속한 사이트 차단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에 나섰다. 여야 의원들은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개정안'을 5건 발의했다. 조명희·성일종 국민의힘 의원과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도박·사행성 정보 등 불법 정보로부터 이용자를 신속히 보호하기 위해 서면 의결을 허용하는 법안을 마련했다. 또 박완주·조승래 민주당 의원은 온라인 영상회의 방식을 활용해 의결할 수 있도록 규정을 신설하는 내용까지 법안에 담았다.
다만 해당 법안들은 모두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에 발목이 잡혀 있다. 최근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선임을 비롯한 각종 현안으로 여야가 정쟁을 일삼고 회의까지 지연돼서다, 결국 상식적으로 시급히 통과돼야 할 법안마저 연좌제로 피해를 보게 된 것이다. 해당 법안을 발의한 모 의원실 관계자는 "당장 통과돼야할 법안들도 각종 여야 이슈와 정쟁에 묻혀있어 안타깝다"고 전했다.
"방통위 심의도 한계…다양한 예방책 필요"
전문가들은 해당 법안들이 신속히 추진돼 도박 중독을 근절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사춘기 때는 아이들이 도덕성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라 충동 조절이 매우 어려운 시기인 만큼, 중독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며 "불법 사이트에 대한 신속한 차단과 강력한 처벌로 청소년 접근 자체를 처음부터 차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각에선 단순 사이트 색출이나 차단으로는 예방의 실효성이 없을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조현섭 총신대 중독재활상담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불법 사이트를 복제하거나 유포하는 IP도 대부분 해외에 있어서 우리나라에서 자체 차단하는 게 정말 어렵다. 두더지처럼 기하급수적으로 나와서 계속 지워도 완전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며 "그렇기 때문에 방통위 심의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조 교수는 다양한 '예방책 모색'에 집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예방이 어렵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며 "이미 중독이 되면 치료하는 것이 어려워서 반드시 예방을 죽기 살기로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단순히 학교에서 강의만 해서는 학생들이 잘 안 듣는다"며 "정부에서 주도적으로 미디어를 통해서 끊임없이 불법 도박의 폐해를 보여주고, 아이들과 함께 있는 부모들도 관련 교육을 하는 등 전방위적으로 불법 도박 잠식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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