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연 PD, 성과와 아쉬움이 공존한 '데블스 플랜'[인터뷰]
아이즈 ize 이덕행 기자
2013년 '더 지니어스' 시리즈를 연출한 정종연 PD는 네 번의 '더 지니어스'와 '소사이어티 게임', '대탈출', '여고추리반' 등을 통해 추리·두뇌 예능이라는 새 장르를 열었다. 특히 두뇌 서바이벌이라는 영역을 개척한 '더 지니어스' 시리즈는 여전히 많은 마니아층을 보유하고 있다. 정종연 PD가 CJ ENM을 퇴사하고 만든 첫 프로그램 '데블스 플랜'은 '더 지니어스'를 정신적으로 계승하는 프로그램이다.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받은 프로그램인 만큼 뜨거운 관심을 받았지만, 그만큼 아쉬운 부분도 많았다. 이는 정종연 PD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데블스 플랜'은 변호사, 의사, 과학 유튜버, 프로 게이머, 배우 등 다양한 직업군의 12인의 플레이어가 7일간 합숙하며 최고의 브레인을 가리는 두뇌 서바이벌 게임 예능이다. 지난 10일 마지막 3화가 공개된 '데블스 플랜'은 하석진의 우승으로 마무리됐다. 모든 방송이 공개된 이후 인터뷰에 나선 정종연 PD는 프로그램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며 궁금증을 해소시켜줬다.
'데블스 플랜'은 넷플릭스 시리즈 부문 국내 1위를 질주한 것은 물론 전 세계에 시청 순위권에 이름을 올리며 전 세계 시청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정종연 PD는 "기쁨을 느끼기 전에 의아함이 들 정도"라며 솔직한 감정을 드러냈다.
"글로벌에서 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어요. 그런데 몇몇 나라에서는 1등도 했더라고요. 우리나라에서도 외국 프로그램이 1등을 잘 못하고 허들이 높은 프로그램인데 다른 나라에서 1등을 한다는 게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 시청자들에게 배려가 없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이럴 거면 '규칙레이스'를 영어로 해도 될 법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고요. 물론 정말 좋지만, 기쁨을 느끼기 전에 의아함이 들기도 했어요. "
정종연 PD의 말처럼 두뇌를 소재로 하는 서바이벌 장르의 콘텐츠는 높은 진입장벽을 보유하고 있다. 다만, 한 번 빠지면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한다. 정종연 PD는 '데블스 플랜'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점으로 '외연의 확장'을 꼽았다.
"만족스러운 부분도 있고 당연히 수정해야 할 부분도 있어요. 외연의 확장이라는 부분에서는 좋았던 것 같아요. 예전에는 장르 자체가 장벽이었는데 플랫폼을 잘 만난 것도 있고 시청자들에게 익숙해진 것도 있어서 처음이라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앞으로도 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데블스 플랜' 방송 초중반 화제를 모은 건 궤도가 지향하는 플레이스타일이었다. 궤도는 '상대를 떨어뜨리기 위한 플레이'라는 기본 전제를 뒤집어 '최대한 많은 플레이어가 오랫동안 살아남자'는 목표를 세웠다. 이는 '공리주의'라는 키워드로 형성됐다. 수 없이 많은 서바이벌을 연출한 정종연 PD에게도 이는 예상 밖의 플레이였다.
"도움을 바라는 플레이어와 도움을 주는 플레이어가 있었는데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어요. 저희 프로그램의 키워드처럼 '공리주의'라는 단어가 나왔는데 제가 서바이벌을 연출하는 동안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플레이라 당황스러우면서도 신선했어요. 이게 전략이 아니라 철학에 가깝기 때문에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치열한 경쟁을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빌런일 수 있겠지만, 바깥세상에서는 이만한 천사가 어디 있어요. 사전 인터뷰를 할 때도 경쟁적이지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은 들었어요. 경쟁 프로그램에 들어왔을 때 변화하는 모습을 기대하긴 했어요. 그런데 게임을 잘하고 청중을 주도하는 능력, 즉 정치력도 뛰어나더라고요.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서사였던 것 같아요."
'이상주의자' 궤도의 플랜이 가능했던 이유는 메인매치에서 반드시 탈락자가 발생하는 건 아니었고, 데스매치도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로 인해 소위 말하는 '병풍 플레이'가 늘었다는 아쉬움도 있었다. 정종연 PD 역시 이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덨다. 정종연 PD는 이 같은 시스템을 설계한 이유로 "자율성을 넓히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제 생각에 데스매치는 단순히 데스매치 하나가 아니에요. 상대를 지목하는 방식, 생명의 징표로 보호하는 방식까지 모두가 하나의 콘텐츠고 '더 지니어스'가 가진 핵심 IP라고 생각했어요. 동시에 제가 침범하지 말아야 할 영역이라고 생각했어요. 결과적으로는 부족했던 부분인 것 같기도 하고 한 명은 무조건 떨어지게끔 했어야 하는 것도 맞는 것 같아요. 게임은 6번을 하는데 탈락자는 10명이 나와야 해서 여러 명이 동시에 탈락할 수 있게 만들었는데 오히려 아무도 탈락하지 않았거든요. 이 시스템을 플레이어가 사용한 건데 굳이 닫아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긴 해요. 리얼리티를 하다보면 자율성을 넓히고 싶어져요. 자유도가 높으면 의외성이 많아지거든요. 의도하긴 했지만, 수정이 필요한 부분은 맞는 것 같아요."
최종 우승자 하석진과 끝까지 연맹을 맺었던 이시원과의 케미도 화제를 모았다. 모두 배우인 두 사람을 보고 '같이 로맨스 작품 하나 찍으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였다. 정종연 PD는 "뜨거운 동지애 아니었나"라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이들의 서사에 대해서도 만족감을 드러냈다.
"단지 둘만의 문제가 아니라 동재(세븐틴 승관)를 포함한 연대감이 강했던 것 같아요. 감옥에 있는 시원 씨가 승관 씨에게 '동재야'라고 할 정도로 몰입을 했는데 그게 석진 씨에게 전이가 된 거죠. 시원 씨의 몰입도와 동재 탈락 이후 감정이 올라가던 석진 씨의 몰입도가 드라마틱 하게 만났던 것 같아요. 특히 석진 씨는 나영석 PD님의 라이브에서 말했던 갑자기 승부욕을 가지는 인물이었어요. 초반에는 생각보다 게임에 들어오지 않고 다른 플레이어들도 '위험 감수를 안 하는 플레이어'라고 입을 모아 이야기하더라고요. 동재가 탈락한 순간부터 각성 단계가 올라가고 피스 조각을 맞추면서 재미를 찾은 것 같아요. 또 5일 차에서 자진 감옥 작전이 먹히는 스토리가 좋았어요."
'데블스 플랜'은 여러모로 '더 지니어스'를 연상케 한다. 특히 게임 진행에 도움을 주는 최병운, 윤철현 딜러는 '더 지니어스'에도 출연했다. '더 지니어스'의 메인 딜러로 나섰던 홍지연 딜러는 출산 및 은퇴 등의 이유로 합류하지 못했지만, 정종연 PD와 많은 호흡을 맞춰온 두 명의 딜러들은 게임 테스트에도 참여하는 등 여러모로 많은 도움을 줬다. 다만, '데블스 플랜'과 '더 지니어스' 시리즈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합숙을 진행했다는 점이다. 이는 게임이 진행되지 않을 때 출연자들 간의 서사가 어떻게 쌓이는지를 효과적으로 보여줬다.
"이제는 합숙을 안 하는 프로그램이 없잖아요. 기본인 것 같아요. 사실 정치적인 관계가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다만, 마지막에 서동주, 궤도, 하석진 씨가 '바깥세상이 기억이 안 나고 우주가 됐다'는 말을 하잖아요.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감정인 것 같아요. 일주일간 갇혀있던 저희 제작진도 많이 울었어요."
또, 단순히 화폐와 최종 상금을 정하는 수단으로 사용됐던 '더 지니어스' 시리즈의 가넷과 달리 '데블스 플랜'의 피스는 화폐이자 생명, 후반부에는 비밀을 밝혀낼 중요한 열쇠로 작용한다. 특히, 정종연 PD가 피스에 중요한 힌트를 숨겨놓은 이유는 서사를 이어가기 위해서였다.
"게임 자체로 끝나는 게 아니고 스토리가 이어지고, 또 강제적으로 스토리가 나오게끔 설계를 했어요. 생각보다 늦게 나오긴 했는데 잘 나온 것 같아요. 게임동 밖 에도 게임이 있다는 요소는 좋았던 것 같아요. 그 피스를 맞추는 게 게임의 절반에 가깝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렇게 디자인했으면 당연히 좋은 리워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첫 번째 게임(블라인드 오목)은 승률이 50% 정도의 게임이었고 그 다음에는 승률 30% 이하의 게임이 나올 예정이었어요. 사실 피스가 적게 풀린 건 아니거든요. 두 번째 메인 매치 때 3번 피스가 풀려서 이틀이면 충분히 풀릴 수 있었는데 생활동에서 다들 게임을 복기하는 데 시간을 쓰다보니 피스에 관심을 덜 가진 것 같아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두뇌 서바이벌에 열광하는 것 같냐'는 질문에 정종연 PD는 "'왜 이렇게' 까지는 아닌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다만, 분명한 외연 확장이 추후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기대도 있었다.
"'왜 이렇게'까지는 아닌 것 같아요. 그래도 이번에 확실히 외연이 넓어진 것 같아요. '더 지니어스' 때는 작은 팬덤이 뜨겁게 타올랐다면 지금은 더 넓어진 것 같아 고무적이에요. 처음에 '더 지니어스'를 만들 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적 허영심이 있다. 무식하다는 건 참아도 멍청하다는 건 못 참는다'이런 생각이 있었거든요. 가는 길은 힘들지만, 가면 아무도 없어서 편하게 눕고 구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들어왔지만, 여전히 쉽지 않고 만들기 힘든 장르라고 생각해요."
외연의 확장이라는 점은 만족한 정종연 PD지만 "전체적인 만족도는 절반"이라고 말할 정도로 아쉬운 부분도 존재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새 시즌에 대한 기대도 생겨났다. 정종연 PD는 "넷플릭스가 하자고 하면 열심히 할 생각"이라며 스스로가 생각하고 있는 시즌2의 개선 방향도 밝혔다.
"플레이어들의 밸런스에 있어서 부족한 부분이 있던 것 같아요. 앞으로의 프로그램에 있어서 반면교사가 될 것 같아요. 게임의 경우에도 기본적으로 쉽게 짜는 게 조건인데 미흡해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또 데스 매치의 아쉬움을 채워줄 만한 무언가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이러한 규칙과 시스템의 변화는 계획을 하고 있던 부분도 있어요. 앞으로도 재미있는 것들을 해보려고 생각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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