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시상식에서 금메달 깨무는 사진이 거의 사라진 이유[청계천 옆 사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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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정구대회가 100년이 넘었다는게 신기합니다.
동아일보 정구대회는 지금은 경상북도 문경에서 매년 봄에 개최하고 있습니다.
경기장은 평소에도 드문드문 활용되는데다 관리 담당자가 있어서 경기에 임박해 준비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그렇다고 경기 전에 준비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신문에 쓸 만큼 특별한 '뉴스'도 아닌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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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신문에 실린 사진을 통해 오늘의 사진을 생각해보는 [백년사진]입니다.
정구대회를 앞두고 경기장을 정리하는 모습입니다. 롤러를 가지고 사람들이 일일이 바닥을 다지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1923년 10월 14일에 열린 ‘제 3회 전 조선 정구대회’ 소식입니다. 오전 8시부터 휘문운동장에서 열렸는데 조선체육회 주최, 동아일보사 후원행사였다고 합니다.
▶ 100년 전 스포츠 사진을 보며 지금은 사라진 스포츠사진은 뭐가 있을까, 새롭게 생겨난 사진은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얼마 전 아시안게임이 끝났죠? 생각보다 관심이 높고 인기가 있어서 놀랐습니다.
유쾌하면서도 감동적인 많은 경기와 시상식 장면 중에서 저는 탁구 신유빈 선수가 금메달을 확정지은 후 손에 든 태극기를 바로 잡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카메라에 건곤감리가 바로 잡히도록 신경쓰는 모습 말입니다. 그리고 기쁜 감정을 카메라를 향해 드러내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카메라를 향해 손 하트도 적극적으로 만들고, 동료와의 적극적인 포옹도 주도합니다.
이미 카메라를 대할 준비가 되어 있는 세대라는 생각이 듭니다. 경기 중간중간에 멋진 사진이 나오는 것도 젊은 세대답게 자기를 표현할 준비가 항상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포토제닉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카메라 세대’가 한국을 대표하는 시대입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가 생각납니다. 그 당시 한국 선수들은 안정환의 반지 세리머니와 단체로 손을 잡고 경기장을 달리며 슬라이딩을 하는 ‘아이콘’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한국 기자들 전체를 당황하게 했던 외국 선수의 세리머니가 있었습니다. 영국의 베컴 선수가 골을 넣은 후 골대 뒤쪽 카메라기자들이 모여 있는 지역으로 달려오는 ‘무릎 세리머니’를 했습니다. 한국 사진기들은 눈앞으로 다가온 스타의 모습에 당황하고 말았습니다. 망원렌즈를 끼고 ‘킬러’들의 포효를 포착할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이 멱살잡이할 때 사용하는 작은 렌즈(와이드 렌즈)에나 잡힐 만한 장면이었습니다. 베컴은 카메라 기자들 앞에 와서 포즈를 취했지만 우리는 그 장면을 찍지 못했습니다. 우리 옆에 있던 영국 통신사인 게티이미지 기자의 손에 짧은 렌즈가 끼어 있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사진기자를 향해 뛰어 온 스포츠 스타, 그리고 그와의 거리가 가까울 것을 미리 예상한 사진기자의 합작으로 한국 기자들은 ‘물을 먹은’ 사건이었습니다.
▶어쩌면 당연하게 받아들일 세리머니에 대해 제가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는 개인적인 경험으로 보면 국대들의 감정 표현이 불과 20여 년 만에 엄청나게 변했다는 점 때문입니다. 옛날 스포츠 선수들도 골을 성공시키거나 메달을 따면 격정적인 포효를 했습니다. 그러나 감정을 드러내는 대상이 팀의 감독이나 현장에 응원하러 온 가족 친구들을 향한 경우가 많았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시상대에 올라가서도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태극기를 향해 애국가를 따라 부르는 장면과 메달을 들고 손을 흔드는 정도였습니다. 뭔가 새로운 것을 원하는 사진기자들과 독자들에게는 부족한 사진일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감정이 드러나지 않을 때 메달리스트들에게 사진기자들이 연출상황을 부탁합니다.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경기에서 메달을 딴 선수들에게 사진기자들이 많이 연출시켰던 포즈가 ‘금메달을 입에 물어 보시라’는 주문이었습니다. “금메달 이맛이네”라는 제목을 염두에 둔 사진이 목표였을 겁니다. 그런데 10여 년 전부터 현장에서 금메달 맛보는 세리머니를 부탁하면, 식상해 하는 젊은 선수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탑 클래스의 선수들은 그런 연출을 오히려 부담스러워 합니다. 대신 젊은 세대 선수들은 카메라 앞으로 찾아와 윙크를 하고 하트를 만들고, 때로는 렌즈에 사인을 하는 등 ‘그림을 만들어 주곤’ 경기장을 떠났습니다. 자연스러운 개성 표현이 가능한 세대에게 사진기자들의 연출 요구는 필요 없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깨무는 사진이 거의 사라진 것을 저는 이런 변화의 흐름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가 못 본 경기 중에 금메달 깨무는 세리머니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 현장을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운동에 집중하느라 특별한 세미머니를 준비하지 않은 선수들도 얼마든지 훌륭한 분들이시니까요.
▶ 자원이 없던 시절이라 신문 지면도 아주 적었습니다. 경기는 많고 지면은 적고 그러다보니 단체사진이나 전체 경기장 모습을 지면에 실을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당연히 지금의 눈으로 보면 사진이 임팩트도 없고 시선도 잘 못 끕니다. 집단적인 사진에만 익숙했는데 이제는 미니멀한 선수 개개인의 모습을 촬영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뉴스를 전달하는 입장에서 보면 자원이 많은 시대입니다. 지면도 많아졌고 인터넷을 통해서는 무한대의 사진을 찍어 전달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초등학교 앨범에 ‘모듬 별’ ‘개인 별’ 사진이 있는 시대입니다. 제가 어릴 때와는 다르네요.
▶승리하면 기쁨을 만끽하며 개성을 충분히 드러내고, 패배해도 웃는 우리 젊은 선수들. 사진기자들의 고민이 시작되어야 하는 걸까요? 어쩌면 행복한 고민일 수도 있겠습니다. 오늘은 백 년 전 신문에 실린 스포츠대회 사진을 보며 스포츠 사진의 변화를 한번 생각해보았습니다. 가을 주말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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