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째 닫혀 있는 술 항아리 올해는 딸까…LG, ‘우승의 한’ 풀 기회 맞아
(시사저널=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LG 트윈스가 10월3일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했을 때 일부의 관심은 술 항아리에 쏠렸다. 올해로 41세가 된 프로야구는 수많은 서사를 품고 있고,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LG도 다르지 않다.
LG의 술 항아리는 2군 구장인 이천 챔피언스파크에 있다.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우승하면 마시자며 1995년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 훈련장에서 사 온 아와모리 소주가 담겨 있다(물론 술 항아리는 닫혀 있어 아직까지 술이 그대로 보존돼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구 회장은 1994년 전지훈련 때도 같은 술을 샀고, 당시 우승했던 터라 연속 우승을 바라며 똑같이 행한 일이었다. 물론 모두가 알다시피 이 항아리는 지금까지 무려 28년간 열리지 않았다.
LG 야구의 서사에는 롤렉스 시계도 빠질 수 없다. 역시나 구 회장이 한국시리즈 MVP에 주겠다면서 1998년 사 왔다. 당시 가격만 8000만원이었다. 고가의 이 롤렉스 시계도 아직 제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투타 완벽 조화 뽐내며 29년 만에 정규리그 1위
2023년, 드디어 묵혀 놓은 술 항아리를 따고 롤렉스의 주인공을 찾을 기회가 왔다. 정규리그 1위에 오른 LG는 한국시리즈 4승만 거두면 1994년 이후 29년 만에 통합 우승을 이룬다. MBC 청룡 인수 후 창단 첫해인 1990년과 1994년에 이은 3번째 우승이 된다. LG가 한국시리즈 무대에 서는 것도 2002년(준우승) 이후 21년 만이다. 김성근 감독이 지휘했던 당시 LG는 정규리그 4위로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를 거쳐 한국시리즈에 올랐으나 결국 체력이 고갈되며 삼성 라이온즈에 2승4패로 패했다.
지난해 정규리그 2위를 하고도 플레이오프에서 키움 히어로즈에 덜미가 잡혔던 LG는 류지현 감독과 연장 계약을 하지 않고 넥센(현 키움) 히어로즈,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를 지휘했던 염경엽 감독을 영입했다. 염 감독은 LG에서 운영팀장 등을 했던 터라 아예 낯선 인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프랜차이즈 출신의 감독(류지현)을 내치고 외부 인사를 사령탑으로 앉힌 데 따른 일부 팬의 반발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시즌 초반 염 감독의 야구는 호불호가 갈렸다. 지나치게 많은 작전이 걸렸기 때문이다. 뛰는 팀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주루사, 도루사도 많았다. 그러나 LG는 의혹의 시선에도 6월27일 단독 1위로 올라선 후 정규리그 1위를 확정 지은 10월3일까지 단 한 번도 밑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LG는 올해 투타의 조화가 빛났다. 팀 평균자책점(3.68), 팀 타율(0.281) 모두 1위다. 팀 출루율(0.362), 팀 장타율(0.395)도 정상에 있다. 팀 도루 또한 1위(166개)인데 2위 두산(127개·이상 10월 10일 현재)과 40개 가까이 차이가 난다. 홍창기가 타율 0.333, 출루율 0.445로 팀 공격을 이끌었고, 딘 오스틴이 LG 외국인 타자 잔혹사를 끊고 타율 0.314, 22홈런 94타점으로 맹활약했다. 문보경, 문성주, 신민재 등도 한 단계 성장했다.
마운드에서는 애덤 플럿코, 케이시 켈리 원투 펀치가 다소 기복이 있었으나 선발 로테이션을 지켰고, 임찬규가 3선발 역할을 잘 해냈다. 다만 부상을 이유로 시즌 막판 던지지 않은 플럿코가 한국시리즈 때 등판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사령탑으로는 한국시리즈 우승을 못 해본 염 감독은 현재 플럿코를 제외하고 시리즈 구상을 짜고 있다.
1994년 우승 이후 28년 묵은 '우승의 한' 풀 기회 맞아
LG의 통합 우승에 가장 큰 대항마는 KT 위즈가 될 전망이다. KT는 10월10일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두산 베어스전)를 승리하며 2위를 확정했다. 추가 일정 발표 뒤 우천 취소된 경기가 단 한 번도 없어 다른 팀들보다 일찍 시즌을 끝낼 수 있었다. LG가 15일 시즌을 마치는 것과 비교된다. 이 때문에 KT는 2주 넘게 휴식기를 갖고 플레이오프에 임하게 된다. 피로가 누적된 투수진에 충분한 휴식을 줄 수 있다. 플레이오프를 통해 방망이를 예열할 시간을 갖게 된다는 점도 플러스 요인이다. LG는 3주 넘게 쉬기 때문에 경기 감각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2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에 도전하는 KT는 남부럽지 않게 탄탄한 투수진을 구축하고 있다. 시즌 도중 재영입된 윌리엄 쿠에바스는 18경기 선발 등판에 12승 무패 평균자책점 2.60을 기록했다. KBO리그 최초 순수 선발 승률 100% 기록을 세웠다. 시즌 초반 다소 부진했던 웨스 벤자민 또한 6월부터 안정을 찾으며 팀 내 최다승(15승6패) 투수가 됐다. 여기에 고영표(12승7패 평균자책점 2.78), 배제성(8승10패 평균자책점 4.49) 등 토종 선발진도 괜찮다. 이번 항저우아시안게임 때 '믿을맨' 역할을 완벽하게 해준 박영현(32홀드·부문 1위)이나 마무리 김재윤(32세이브·부문 2위) 또한 철벽 불펜을 자랑한다. 타선에서는 공황장애로 수개월 동안 1군에서 제외됐던 중심 타자 강백호가 아시안게임을 통해 자신감을 회복한 것이 고무적이다.
LG는 이번 시즌 KT와의 상대 전적에서 10승6패로 앞선다. LG의 한 관계자는 "선수들이 시즌 동안 쿠에바스나 고영표를 상대로 잘 쳤기 때문에 걱정은 많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실제로 쿠에바스는 LG를 상대로 3경기에 등판했지만 승패 없이 평균자책점 11.45(11이닝 14자책)로 부진했다. 피안타율이 0.429에 이른다. 고영표 또한 LG전 성적이 4경기 2패 평균자책점 7.36이다. 피안타율은 0.342. 벤자민은 그나마 5경기 4승 평균자책점 0.84로 좋았다. 장기전과 단기전은 다를 수 있지만 LG로서는 KT가 두렵지 않을 수 있다. KBO리그가 단일리그로 진행된 1989년 이후 정규리그 1위 팀(양대 리그로 열린 1999~2000년 제외)이 한국시리즈 정상에 오른 것은 32번 중 27번(84.4%)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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