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너도 악마가 돼라"…하마스의 속삭임, 이스라엘은 저항할 수 있을까
(*이 기사 본문은 13일(금) 오후에 작성되었다.)
민간인 여성과 아이를 사냥했고, 인질로 잡아갔다. 어린아이들까지 목이 잘린 시신으로 발견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잡아간 인질을 죽인 뒤 그 사망자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인증샷을 올린다. 악마 같은 짓이라는 표현 외에 다른 말로 설명할 수 없다. 그동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탄압했다고 해서 이런 행위들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우리나라가 인접국으로부터 이런 일을 당했다고 생각해 보자. 피가 끓고 눈이 뒤집히지 않겠는가? 이스라엘 전체가 복수와 인질 구출의 열기로 끓어오르고 있을 것임은 불 보듯 뻔하다. 이스라엘 에너지 장관인 이스라엘 카츠는 교전 엿새째인 12일 성명을 내고, 하마스에 끌려간 인질이 풀려날 때까지 가자 지구에 물, 전기, 연료, 생필품, 인도적 지원 등 모든 것을 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 봉쇄의 극단이 어떤 결과에 닿게 되는지는 누구보다 이스라엘인들이 잘 안다. 2천 년 전부터 자신들이 당해봤기 때문이다. 박해와 차별과 인종청소가 어떤 것인지, 어떻게 하면 되는지를 유대인만큼 잘 알 수 있는 민족은 없다.
가자 지구는 끝에서 끝까지 차로 달리는 데 1시간이면 되는 좁은 땅이다. 지금 이스라엘 사람들 마음은 가자 지구 전체를 탱크로 밀어서라도 복수하고 싶은 마음으로 불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 수 있을까? 그래서는 안 된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장기적 이익을 고려해 봐도 그렇다.
하마스의 진짜 목표는 무엇이었을까
오히려,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가혹한 반격과 그로 인한 팔레스타인 민간인 피해를 의도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야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분노가 끓어오르고, 이스라엘을 지상에서 소멸시키겠다는 하마스의 존재 이유가 부각되기 때문이다.
민간인들이 사는 건물에 무기와 탄약을 숨겨놓는다든가 민간인들 틈에 숨어서 총을 쏘는 건 하마스 뿐 아니라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세력들이 단골로 쓰는 전술이다. 그렇게 해서 미국 이스라엘 등의 반격으로 민간인이 사망하면 1) 비난을 뒤집어 씌우고 2) 분노한 민간인들의 지지를 받으며 3) 복수심에 불타는 지역민들을 신규 조직원으로 포섭한다.
하마스의 이번 소행은 몇 가지 차원의 목표를 갖고 추진됐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1) 이스라엘에 잡혀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교환할 인질의 확보라는 실용적 이유가 있었을 수 있다.
2011년에도 총리였던 벤야민 네타냐후는 하마스에 납치된 이스라엘 병사 질라드 샬리트를 데려오기 위해 이스라엘에 수감 중이던 팔레스타인 죄수 1,027명을 풀어줘야 했다. 이 가운데 280명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이들이었다. 이번에 잡혀간 수백 명의 인질을 교환비로 따지면 이스라엘이 모든 팔레스타인 죄수들을 다 풀어줘야 할 수도 있다.
'악마가 된 이스라엘'을 하마스가 필요로 하는 이유
하마스는 왜, 어떻게 잊혀질 위기에 처해 있었을까. 좁게는 이스라엘 국내적으로, 넓게는 아랍권 전체로 생각해 볼 수 있다.
① 국내적 상황 - 가자(Gaza)는 이슈에서 밀려나고 있었다
먼저, 이번 사태를 볼 때 꼭 머릿속에 담아두어야 할 게 있다. 하마스와 팔레스타인은 동의어가 아니라는 점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모여사는 지역은 크게 두 군데, 요르단강 서안 지구와 가자(Gaza) 지구다.
지도를 보면 가자지구(Gaza strip)는 이집트와 지중해에 바짝 붙은 좁고 길고 작은 땅이다. 'strip'이라는 게 그런 모양의 땅이라는 뜻이다. 요르단강은 이스라엘 북부, 시리아 쪽으로부터 흘러 내려오는데, 그 서쪽의 넓은 땅이 요단강 서안 지구(West Bank)다. 여기서 bank는 강가의 제방이나 둔덕, 고수부지 같은 땅을 의미한다. 가자지구와 요단강 서안지구는 뚝 떨어져 있다.
요르단강 서안지구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Palestine Authority)가 관할한다. 파타(Fatah)당의 정부다. 반면 가자지구는 하마스가 통치한다. PA는 이스라엘을 인정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지구상에서 없애버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국제사회는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대표자는 압바스 수반) 팔레스타인의 대표로 인정한다.
원래 PA(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가자지구까지 관할했는데, 2006년 가자지구 선거에서 하마스가 이긴 뒤 가자지구 내에서 격렬한 내전이 벌어졌고, 파타 세력이 축출됐다. 사실상 팔레스타인은 서안지구와 가자(Gaza), 2개의 나라로 쪼개진 셈이다. 그렇다면 어디가 더 중요할까? 지금까지는 서안지구가 더 이슈의 중심에 있었다.
다시 지도를 보면 요르단강 서안 지구가 땅덩이도 훨씬 크고 이스라엘의 심장부에 지리적으로 가깝다. 서안지구 서쪽 끝이 예루살렘이다. 이스라엘의 실질적 수도이며 최대도시인 지중해변 텔아비브도 더 가깝다.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그 정부를 구성하는 파타 당은 PLO(팔레스타인 해방기구) 지도자 야세르 아라파트의 적통을 이어온 세력이다. 그들은 1993년 오슬로 협정을 통해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했고, 그 대가로 자치권을 인정받았다. 하마스보다는 온건하고 세속적이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파타 당은 그러나, 입지가 점점 약화되어 왔다. 요르단강 서안지구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점점 불만이 커졌다. '오랫동안 파타 당을 지지했지만 파타가 해낸 게 뭐냐,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꾸만 지역에 들어와 정착촌을 늘려가고 우리는 밀려난다. 살기 좋은 곳은 점점 유태인 차지가 되어간다. 그런데도 저들은 정부랍시고 부패해 간다' 등의 불만여론이 높다.
하마스는 그 틈을 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불만과 폭력적 반발을 부채질하며 서안지구에서 세력을 확장하는 중이었다. 그에 대응해 이스라엘은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더욱 거칠게 다루는 악순환이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가자지구는 상대적으로 평온했다. 2021년 11일간의 무력 충돌이 있긴 했지만,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 땅으로 출퇴근하며 돈 벌 수 있는 기회를 늘려줬고, 더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었다. 이스라엘 내에서는, 하마스가 싫지만 가자지구의 실질적 지배자로 인정하고 상대할 수밖에 없다는 기류도 존재했다.
하지만 하마스는 이런 상황을 장기적으로 조직에 불리하다고 본 것 같다. 자신들의 존재 근거인 팔레스타인의 분노와 갈등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하마스는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과의 갈등을 키우는 한편, 팔레스타인 내부 권력투쟁의 차원에서도 '서안지구만 중요한 줄 아냐. 가자지구의 지배자인 우리를 잊지 말라'는 액션을 벌일 필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② 국제적 상황 - 가자(Gaza) 놔두고 버스 출발하겠다고?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은 오랫동안 아랍 국가들과 이스라엘 간의 관계 정상화를 막는 걸림돌이었다. 그런데, 기류가 변하기 시작했다. 몇몇 아랍국가들은 석유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경제를 탈피해 보다 정상적이고 열린 국가로 활동하고 싶어 했다. 이스라엘 역시 주변의 적대적인 환경을 개선할 필요가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 시절인 2020년 미국의 중재로 아브라함 협정(Abraham Accords)이 체결돼 아랍에미리트(UAE)와 바레인이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했다. 두바이와 아부다비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유롭게 관광과 쇼핑을 다닐 수 있게 됐다.
이들 국가들과 이스라엘 간에 국제적인 경제협력 프로젝트가 추진되기 시작했다. 가자지구 앞바다에서 다국적 에너지회사 셰브론이 천연가스를 생산해 이집트 요르단 등 주변국가들에 수출했다.(이번 사태로 중단됐다.) UAE가 요르단에 태양광 발전단지를 만들어 전기를 이스라엘로 보내고, 이스라엘은 바닷물을 민물로 만들어 요르단에 보낸다는 프로젝트의 MOU도 지난해 11월 체결됐다.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이런 흐름에서 소외되고 싶지 않았다. 빈 살만 왕세자는 석유에만 의존하지 않는 경제, 그래서 젊은이들이 다른 나라들과 다양하게 교류하며 경제활동을 하는 나라라는 국가 비전을 세웠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란-이스라엘 등 그동안 종교적 이유로 불편한 관계였던 나라들과 관계를 개선할 필요가 있었다. 이란과의 관계개선은 중국이 다리를 놨고, 이스라엘과의 관계 개선은 바이든의 지원 하에 착착 속도를 내는 중이었다. 수개월 내 정상 간 협정 서명과 외교관계 정상화가 가능할 거라는 (장밋빛) 전망이 나오던 차였다.
팔레스타인 문제의 해결 없이 중동국가들과 이스라엘이 잘 먹고 잘살겠다는 그림. 골치 아픈 팔레스타인은 놔두고 번영의 버스는 떠나겠다는 소리. 하마스는 작금의 국제정세를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팔레스타인 패싱'이 현실화되면 팔레스타인 안에서도 마이너인 가자지구는 더더욱 패싱 당할 것이다. 하마스로서는 반전의 계기가 필요하다 생각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당분간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은 이스라엘과 거리를 둘 수밖에 없게 됐다.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으로 팔레스타인 민간인의 피해가 얼마나 커질지가 관건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잠정 중단', '속도 조절'이지, 큰 흐름이 바뀔 것 같진 않아 보인다. 이를 짐작할 수 있는 게 사우디 빈 살만 왕세자가 보인 반응이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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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식 D콘텐츠 제작위원 hyunsik@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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