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사우디-이스라엘 수교 막으려 하마스 배후 조종했나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2023. 10. 14.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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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아랍 국가의 수교 확대에 따른 고립 피하고 사우디 핵 보유 저지 속셈

이슬람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아라비아와 시아파 맹주 이란은 중동 지역에서 1400여 년간 대립해왔다. 사우디와 이란의 적대관계는 수니파와 시아파가 칼리프(최고 통치자) 선정 문제로 대립한 역사에서 비롯됐다.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는 632년 후계자를 남기지 않고 사망했다. 그러자 후계자 자리를 놓고 이슬람은 수니파와 시아파로 분열됐다. 시아파는 무함마드 혈족인 알리가 당연히 칼리프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수니파는 무함마드와 혈연관계가 없어도 통치자 자격이 있는 사람이 칼리프가 돼야 한다고 맞섰다.

10월 8일(현지 시간)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가자지구가 화염에 휩싸였다. [뉴시스]

사우디와 이란의 '피의 역사'

결국 슈라(원로회의)에서 무함마드와 피가 섞이지 않은 아부바크르(재위 632~634)가 초대 칼리프로 선출됐다. 2대와 3대 칼리프를 거쳐 알리(재위 656~661)가 4대 칼리프로 등극했지만 661년 이라크 쿠파에서 암살되면서 두 종파는 본격적으로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수니파는 680년 이라크 카르발라에서 알리의 아들 후세인이 이끄는 시아파와 전투해 승리했고, 패배한 시아파는 겨우 명맥을 유지했다. 이런 '피의 역사' 때문에 사우디와 이란은 지금까지도 반목하고 있다.

양국은 중동 지역 패권을 놓고도 오랫동안 다퉈왔다. 가장 대표적 사례가 시리아와 예멘 내전이다. 시리아 내전에서 사우디는 반군을, 이란은 정부군을 각각 지원했다. 예멘 내전에선 사우디가 정부군을, 이란이 후티 반군을 각각 지원했다. 사우디는 수니파인 아랍 온건 국가, 왕정 국가와 연대해 협력해왔다. 이란은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로 이어지는 '시아파 벨트'를 구축했다.

특히 양국은 핵 문제를 놓고 팽팽히 맞서왔다. 이란이 핵 개발에 적극 나서자 사우디는 미국의 대이란 제재를 강력하게 지지했다. 사우디는 또 이란의 핵 개발을 절대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여온 이스라엘과도 협력했다. 게다가 미국이 이란을 고립시키기 위해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이 외교관계를 맺도록 중재에 나서자 사우디는 이를 은밀히 지원했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2020년 9월 15일 바레인·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아브라함 협정'을 체결하고 국교를 수립했다. 이후 아브라함 협정에 따라 모로코와 수단이 이스라엘과 수교했고, 사우디도 미국 중재로 이스라엘과 수교 협상을 벌이고 있다. 이란은 이스라엘과 사우디가 수교할 경우 자칫하면 중동 지역에서 외교적·군사적으로 고립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조명받는 하마스-이란 커넥션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6월 테헤란을 방문한 하마스 지도부를 만나고 있다. [이란 대통령실 제공]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면서 양측이 전쟁을 벌이는 이면에는 이처럼 이란과 사우디의 치열한 패권 다툼이 자리하고 있다.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배후에 이란이 있다는 추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하마스의 공격이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관계 정상화가 급물살을 타는 것을 경계한 이란의 노림수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태는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수교를 저지하려고 이란이 정교하게 계획한 '빅 픽처'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란은 하마스를 비롯한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등 반(反)이스라엘 세력을 규합해 이스라엘 공격을 상당 기간 준비해온 것으로 보인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0월 8일(이하 현지 시간) 이란 혁명수비대의 최정예 부대 알쿠드스(아랍어로 예루살렘)가 8월부터 하마스와 협력해 육해공 3개 방면에서 이스라엘을 급습하는 작전을 짜왔다고 보도했다. WSJ는 당시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주재 이란대사관에서 알쿠드스의 사다르 이스마일 카니 사령관을 비롯해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 하마스의 군사 책임자 살레 알아룰리,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이슬라믹지하드의 알나칼라 등이 최소 격주로 모여 이스라엘 공격과 이후 일들을 논의했다면서 호세인 아미르 압둘라히안 이란 외무장관도 최소 두 차례 회의에 참석했다고 전했다. 이어 이란이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작전을 10월 2일 최종 승인했다고 밝혔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도 10월 9일 서방·중동 전현직 정보기관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이란이 하마스가 로켓을 제조할 수 있도록 기술적 도움을 줬다면서, 일부 하마스 조직원은 1년 전부터 레바논 '훈련 캠프'에서 이란 혁명수비대 기술고문들로부터 첨단 군사기술을 전수받았다고 보도했다.

"하마스, 단독으로 전쟁 결정 안 해"

마크 폴리메로풀로스 전 미국 중앙정보국(CIA) 중동 대테러 담당관은 "육지·바다·하늘과 국경을 넘나든 복잡한 공격, 이를 위해 필요했을 훈련·인원·통신·무기의 규모는 이란 개입이 있었음을 시사한다"며 "특히 패러글라이더 공격은 가자지구 밖에서 훈련해야만 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리나 카티브 영국 런던대 중동연구소장 역시 "이런 규모의 공격은 수개월 동안 계획을 거쳐야만 가능하며, 이란과 조율이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헤즈볼라와 마찬가지로 하마스는 이란의 명시적 사전 동의 없이 단독으로 전쟁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미국 외교협회(CFR) 중동 전문가인 스티븐 쿡 연구원도 "이란 혁명수비대가 이스라엘을 더욱 효과적으로 도발하고자 하마스와 헤즈볼라, 이슬라믹지하드의 지도자들과 만나왔다"며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은 그 결과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하마스가 이란 의도대로 이스라엘을 공격한 이유는 사우디와 이스라엘이 수교할 경우 자칫하면 팔레스타인 내에서는 물론, 아랍 국가들로부터도 고립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9월 외교 사절단을 요르단강 서안지구로 보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의 마무드 아바스 수반을 만나 이스라엘과 협상에서 이해관계자인 팔레스타인의 지지를 얻으려는 행보를 보였다.

요르단강 서안을 통치하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라이벌 관계인 하마스는 사우디의 이런 움직임에 강하게 반발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이스라엘 파괴가 목적인 하마스와 달리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고 협상하려는 온건파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10월 9일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를 모색하는 사우디의 움직임을 막기 위해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했을 개연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하마스의 위기감은 이스라엘이 아브라함 협정에 따라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던 아랍 국가들과 잇따라 수교하자 더욱 가중됐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에서 더욱 주목할 점은 이란의 의도에는 사우디의 핵 개발을 저지하려는 속셈도 있다는 것이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미국에 이스라엘과의 수교 전제조건으로 △상호방위조약 체결 △원전 건설 목적의 우라늄 농축 허용과 기술 지원 등을 제시했다. 빈 살만 왕세자가 미국에 우라늄 농축 허용을 요구한 것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핵 개발을 하겠다는 의미다. 빈 살만 왕세자는 "사우디는 핵무기를 추구하지 않지만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한다면 우리도 빨리 핵무기를 개발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왼쪽부터). [WIKIPEDIA, 뉴시스, 동아DB]
사우디는 중국의 중재로 이란과 국교를 정상화했지만 이란의 핵 보유를 상당히 경계해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9월 20일 유엔 총회 참석차 뉴욕을 찾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만나 사우디가 제시한 수교 조건을 논의했다. 이와 관련해 WSJ는 9월 21일 미국과 이스라엘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수교를 위한 복잡한 3자 거래 일환으로 이스라엘 관리들이 미국이 운영하는 우라늄 농축 시설 설치 방안을 미국과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폴리티코는 이 방안이 실현된다면 사우디는 이란에 이어 우라늄 농축을 하는 두 번째 중동 국가가 되는데, 이런 상황을 이란이 극도로 경계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에란 레르만 전 이스라엘 국가안보 부보좌관은 "이란은 사우디를 핵 개발로부터 멀어지게 하려고 하마스를 부추겨 이스라엘 공격을 감행했다"고 분석했다.

빈 살만 왕세자 "팔레스타인 지지"

이란의 의도는 지금까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스라엘이 하마스에 강경하게 보복해 가자지구가 쑥대밭이 되고 민간인 피해가 엄청나게 발생한다면 사우디와 아랍 국가들의 반이스라엘 정서는 고조될 수밖에 없다. 특히 사우디는 상당히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사우디는 이스라엘은 물론, 하마스 편도 들 수 없는 입장이다.

이 때문인지 빈 살만 왕세자는 10월 10일 아바스 수반과 통화에서 "확전을 막아야 한다"며 "팔레스타인 국민의 정당한 권리와 희망, 그리고 정의롭고 지속적인 평화를 성취할 권리를 지지한다"고 강조했다. 빈 살만 왕세자의 발언은 이슬람 국가들이 지지하는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건설이라는 '대의'에 동참하겠다는 의미다. 이에 미국이 추진해온 중동 데탕트는 당분간 어렵게 됐고,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관계 개선도 쉽게 성사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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