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기 전에 얼리자? 난자동결은 보험일까 복권일까[딥다이브]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아이를 갖고 싶을 수 있으니 일단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난자를 얼려놓자.’ 이런 생각하는 미혼 여성들이 빠르게 늘고 있죠. 전 세계적으로 난자동결 시술이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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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자동결의 전 세계적 인기
난자동결은 말 그대로 난자를 꺼내 냉동 보관하는 겁니다. 나중에 이를 다시 해동해 시험관 시술에 써서 임신하기 위해서죠.
생소한 분들을 위해 과정을 좀 자세히 설명해볼까요. 난자동결 시술 과정엔 총 2주 정도가 걸립니다. 그 기간 동안 호르몬주사를 하루 한 번 배에 찔러넣어 난소를 자극하죠. 난자가 평소(1달에 1개가 성숙돼 배란)보다 더 많이(보통 7~14개) 자라도록 하기 위해서요. 그리고 배란되기 직전 시점을 골라 난자를 채취합니다. 질을 통해 넣은 주삿바늘로 난소를 십여 차례 찔러가면서 말이죠. 꽤 아프기 때문에 보통 수면마취를 합니다. 채취 당일은 쉬어야 하지만 다음날부터는 아마도 일상생활에 지장 없을 겁니다. 1회 시술 비용은 한국이라면 200만~500만원, 미국은 5000~1만 달러 수준입니다.
어떤가요. 간단하진 않지만 그래도 해볼 만하다 싶으신가요. 아시다시피 나이가 들수록 난자의 질이 떨어져 임신 가능성이 줄어들기 때문에 젊을 때 난자를 냉동시키는 건 ‘생식력 보존’을 위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
통계로 보면 필요한 시간과 돈, 수고로움에도 불구하고 이를 선택하는 여성들이 크게 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증가세가 놀라운 수준인데요. 미국의 경우 4년 만에 73% 늘었고요(2016년 7193명→2020년 1만2438명). 영국은 최근 2년 만에 64%나 증가했습니다(2019년 2576건→2021년 4215건).
그럼 한국은? 얼마 전 차병원그룹이 통계를 공개했는데요. 2020년 574건이던 난자동결 시술 건수가 지난해엔 1004건으로 늘어났다고 합니다(2년 증가율 75%).
얼리면 마음 편하다?
난자동결이 왜 이렇게까지 급증하는지를 두고는 다양한 해석이 나옵니다. 일단 결혼이 점점 늦어진다는 게 가장 근본적인 이유이고요. 코로나 영향도 있습니다. 팬데믹으로 데이트 자체가 어려워지면서, 이러다가 당분간 짝을 찾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난자동결을 결심한 사람이 늘어난 거죠.
1980년대 이후 난자동결을 포함한 보조생식술이 여성 근로자의 삶을 놀랍도록 변화시킨 건 사실입니다. 이는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클라우디아 골딘 하버드대 교수의 주요 연구업적 중 하나인데요. 지난 100년의 미국 대졸 여성을 세대별로 나눠 분석한 결과, 보조생식술의 등장으로 일과 아이, 둘 다 가진 고학력 여성이 전보다 늘어나게 됐다는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역시 난자동결은 불임클리닉 광고대로 여성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주는 희망의 기술인 걸까요. 글쎄요. 그렇게 결론이 단순하진 않습니다. 임신과 출산, 육아의 세계가 워낙 복잡 미묘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출산 성공률은 얼마?
난자동결의 최종 목표는 성공적인 출산입니다. 그럼 얼렸던 난자를 해동해 시험관시술을 했을 때 출산까지 성공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잘 모릅니다. 통계마다 수치가 워낙 제각각이기 때문인데요. 일단 영국 인간수정배아관리국(HFEA)에 따르면 얼렸던 난자를 이용한 여성의 이용한 정상 출산율은 18%입니다. 일반적인 시험관시술 성공률(26%)보다 훨씬 낮은, 실망스런 수치인데요.
그럼 성공확률을 최대로 높이기 위해 더 일찍, 20대 초반에 난자를 얼려야 하냐고요? 그건 전문가들이 권하지 않습니다. 자연임신을 할 수 있는 기간과 기회가 많으니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서이죠. 비싼 복권을 사놓고 아예 평생 긁지도 않게 될 수 있는 겁니다. 참고로 동결한 난자는 매년 일정금액(미국은 500~1000달러, 한국은 20만~30만원)의 보관료를 내야 하기 때문에 시술을 일찍 하면 그만큼 비용도 더 듭니다.
부작용 위험도 고려해야 합니다. 호르몬주사의 드물지만 아주 치명적인 부작용이 난소과자극증후군인데요. 몸이 붓고 복수가 차고 심하면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죠. 나이가 어리면 이 부작용 발생 위험이 더 커지기 때문에 더 조심해야 합니다.
난자동결 지원을 둘러싼 논쟁
현실적으로 난자동결을 할까 말까 망설이게 만드는 건 이런 의학적 이유보다는 비용입니다. 특히 미국의 비싼 병원은 시술 한 번에 1만5000달러, 5년 보관료까지 하면 2만 달러(약 2600만원)가 들어서 웬만해선 엄두가 안 나는데요. 바로 이 점 때문에 난자동결 비용 지원을 약속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습니다.
2014년 애플과 페이스북(현 메타)이 난자동결 지원을 직원 혜택으로 내걸어서 크게 화제가 됐죠. 지금은 구글·넷플릭스·우버 등 IT기업뿐 아니라 블랙록 같은 대형 투자회사, 쿨리 같은 로펌에서도 난자동결 비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지원합니다. 머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미국 대기업(임직원 수 2만명 이상) 중 19%가 난자동결을 직원 혜택 패키지에 포함시켰습니다. 2015년 6%에서 크게 늘었는데요. 경쟁력 있는 여성 인재를 확보·유지하려는 움직임입니다. 참고로 한국에서는 재보험사 코리안리가 지난해부터 난자동결 시술비용을 최대 200만원 지원해주고 있더군요.
솔직히 뭐 그렇게까지 예민하게 굴 필요가 있나 싶은데요. 또 다른 미국의 연구(2020년)에서는 회사로부터 난자동결 지원을 받은 직원들을 인터뷰해보니, 출산을 미뤄야 한다는 압력 같은 건 느끼지 못했다는 반응 일색이었거든요. 지원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나은 것 아닐까요.
하지만 이 점은 지적해야겠습니다. 난자동결을 지원해 주는 건 일-가정 균형 문제 해결과는 별개입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문제를 뒤로 미뤄둘 뿐이죠. 한국에서도 서울시가 저출산 극복을 위해 난자동결 비용을 최대 200만원 지원해주기 시작했는데요. 부담을 덜어주는 건 좋습니다. 그런데 과연 ‘얼려놓은 난자를 녹여서 아이를 낳을 결심’을 하게 만들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제가 난자동결 시술을 처음 취재했던 게 2007년. 당시 차병원에 난자를 동결해둔 미혼여성은 딱 2명뿐이었습니다. 한명은 항암치료를 앞둔 암환자, 다른 한명은 한국의 난자동결 비용이 미국보다 훨씬 싸다는 걸 알고 찾아온 미국 교포였죠. ‘건강에 문제 없지만 언젠가 출산을 하기 위한 일종의 보험으로’ 난자를 얼리는 미혼여성은 그때만 해도 뉴욕타임스 기사에나 나오는 사례였는데요. 지금은 한국에서도 연 1000명이 넘게 시술을 한다니, 참 많이 달라졌습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생식력 보존을 위해 난자를 얼리는 시술을 하는 여성이 전 세계적으로 급증하고 있습니다. 만혼 추세에 팬데믹까지 겹치면서 수요가 빠르게 늘었죠.
-불임클리닉의 마케팅도 영향을 끼칩니다. 잠시 임신 따위는 잊고 커리어에 집중할 수 있는 ‘보험’ 정도로 받아들이는 추세이죠. 실제 난자동결을 포함한 보조생식술은 미국 대졸 여성이 직업을 유지하며 아이를 가질 수 있게 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하지만 ‘지나친 낙관’은 곤란합니다. 영국에선 동결된 난자를 이용해 정상 출산을 하는 확률이 18%라는 통계가 있죠. 자칫 ‘보험’이 아니라 ‘비싼 복권’이 될지도 모릅니다.
-미국이나 영국에선 난자동결 비용을 지원하는 기업이 늘어나는 추세이지만 ‘출산을 미루라는 압박’이란 일부 부정적인 시각도 있습니다. 정말 출산을 장려하려면 ‘어떻게 하면 얼린 난자를 녹이고 싶게 만들 수 있을지‘에 초점을 둬야 하겠습니다.
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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