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수출' 눈 감고, '성실실패'에 가혹…기울어진 방산 운동장 [취재파일]
모름지기 행정은 공정해야 합니다. 방산을 관장하는 방사청의 행정도 공정해야 하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인데 업체에 따라 들쑥날쑥하다는 말이 들리고 있습니다. 그것도 엄격해야 할 불법에 관대하고, 관대해야 할 성실실패에 엄격한 사례들이다 보니 구설수에 아니 오를 수 없는 상황입니다.
총기류 제조업체 D사가 1~2년마다 총기와 부품을 불법수출했어도 방사청은 적절히 제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반면, 한화오션이 1조 원에 달하는 한국형 3천 t급 잠수함을 건조하는 과정에서 수십억 원짜리 부품 하나 다소 늦게 개발됐다고 방사청은 한화오션에 1천억 원에 육박하는 벌금을 물렸습니다.
업체의 불법수출과 방사청의 무사통과
경찰과 국정원은 현재 D사의 불법수출 위반 혐의를 수사하고 있습니다. 수년간 UAE에 총기류를 수출했는데 UAE 외 제3국으로 D사의 총기가 유출된 것으로 보입니다. 대외무역법상 '최종사용자 승인' 조항 위반의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UAE의 정보 당국도 D사의 UAE의 협력사인 C사를 들여다보고 있다고 정부 소식통은 말합니다.
D사의 불법수출은 또 있습니다. 2019년 방사청은 폴란드를 최종 사용자로 지정한 D사의 총기류 수출에서 불법 혐의를 포착하고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경찰은 D사의 유럽 지사 직원 2명에게 각각 수천만 원, 수백만 원의 벌금을 물렸습니다.
한 번이 아니었다
1조 잠수함에 30억 부품 개발 지연…948억 물렸다
성실히 개발했지만 역부족이어서 벌어진 작은 실패에 방사청은 가혹했습니다. 한화오션이 8년간 건조한 3천 t급 잠수함 도산안창호함에 방사청은 948억 원의 지체상금을 물렸습니다. 협력업체가 어뢰기만기를 110일 늦게 개발했다고 잠수함 전체 건조비용의 10%에 달하는 돈을 환수한 것입니다. 어뢰기만기를 외국에서 구입했다면 30억 원으로 충분했지만 돈 더 들여 독자 개발한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협력업체 귀책 사유 또는 도전적 연구개발에 따른 기술적 한계로 개발이 지연됐을 때 지체상금을 면제한다"는 방사청 훈령 조항이 신설됐어도 방사청은 요지부동입니다. 한화오션의 한 임원은 "이런 식이면 외국에서 사다 쓰지, 무슨 영화 누리겠다고 도전적 개발을 하겠나"라고 한탄했습니다.
대한항공의 해상초계기 성능개량 사업, HJ조선의 검독수리-B batch-Ⅰ 건조 사업도 수백억 원의 지체상금을 맞았습니다. 대한항공은 소송을 벌여 기납입한 725억 원 지체상금 중 473억 원을 돌려받을 수 있는 판결을 이끌어냈습니다. 방사청은 473억 원에 더해 혈세로 막대한 이자를 뱉어내야 합니다. HJ조선도 지체상금 무효 소송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행정과 사법, 그리고 돈의 낭비가 이만저만 아닙니다.
어떤 업체는 큰 잘못 저지르고도 무탈하고, 어떤 업체는 작은 잘못에도 벼락을 맞습니다. 그래서 방사청이 깔아놓은 국산무기 개발의 운동장이 기울어졌다는 업계의 반발이 나오는 것입니다. 방산비리 근절하고 국산무기 개발 권장하려면 방사청이 많이 바뀌어야 할 것 같습니다.
김태훈 국방전문기자 oneway@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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