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민] 튀니지전 후반, 세상이 뒤집어졌다
[골닷컴, 서울월드컵경기장]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3>에서 잭 스패로우는 ‘세상의 끝’에 갇힌다. 그리곤 기막히게 탈출한다. 방법은 간단했다. 배를 뒤집었다. 아래는 위로, 위는 아래로 바뀐다.
13일 대한민국은 튀니지를 상대했다. 경기 결과의 무게가 가벼운 평가전이었다. 하지만 경기 전부터 팬심의 미간에는 ‘내 천(川)’ 자가 깊게 패여 있었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을 향한 원성이 뾰족뾰족했다. ‘모의고사’라고도 불리는 경기를 앞두고 “만약 오늘 지기라도 하면…”이라는 말이 들렸다. 하긴, 얼마 전 일본 평가전 대패 후 감독을 날린 국가가 있긴 했다.
시선은 온통 클린스만 감독에게 쏠렸다. 튀니지가 2022년 카타르월드컵에서 1승 1무 1패로 선전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프랑스전 1-0 승리를 기억하는 사람이 드물다. 유럽 빅5 활동자가 현 클린스만호와 같은 6명이라는 점도 관심 밖이었다. 13일 당일 포털 뉴스에서는 ‘다득점’을 제목으로 뽑은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한국은 26위, 튀니지가 29위다. 참고로 카타르에서 한국을 꺾었던 가나가 60위다.
전반 45분이 힘겹게 지나갔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가장 느리게 느껴진 45분’으로 기념할 만했다. 클린스만호의 빈공은 새롭지 않았다. 튀니지처럼 수비적 상대라면, 한국의 창끝은 더 뭉뚝해질 수밖에 없다. 한편으론 튀니지의 전술 선택이 부럽기도 했다. 상상해보라. 한국 대표팀이 저렇게 극단적 수비를 기본 전술을 채택했다면? 댓글 게시판은 타고 타고 또 타서 지금쯤 참숯이 됐을 것 같다.
어둡고 탁한 전반전이 끝났다. 이제 후반전이다. 그리곤 세상에 제일 아름다운 미소가 팬들의 근심걱정을 재우고 떠났다(여기서 피식 하면 최소 40대 인증). 한국의 중원에서 패스가 길게, 곧게, 빠르게, 상대 수비 뒷공간으로 날아갔다. 경기 템포가 빨라졌다. 이강인은 본인이 얻은 프리킥을 상대 골문에 꽂아 넣었다. A매치 출전 기록을 뒤지는 동안, 이강인은 대표팀 2호 골을 추가했다.
클린스만 감독 부임 후 6경기에서 한국의 득점수는 5골이었다. 경기당 1골을 채우지 못했다. 13일 저녁, 심지어 45분만으로 한국은 4골을 터트렸다. 3경기 연속 무실점 기록도 작성했다. 4득점 경기는 2022년 6월 14일 이집트전(4-1) 이후 16개월 만이었다. 손흥민이 결장한 경기였기에 더 뜻밖이었다. 경기 후, 손흥민은 “나 없어도 되겠는데 싶었다”라면서 웃었다.
축구가 과학이 아니다. 잘 안다. 하지만 이 정도로 인과관계를 완벽하게 무시하는 90분도 드물다. 튀니지전 4-0 대승을 예상했던 언론이나 팬이 있었을까? 후반전 4득점을 두고 클린스만 감독은 “골을 넣고 싶다는 선수들의 열망이 밖으로 나왔다”라고 평가했다. 전술 설명은 없었다. 런던 인터뷰처럼 클린스만 감독은 “톱레벨에선 멘털이 가장 중요하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전술이 없다는 지적은 여전하다. 그런데, 전술 없는 4-0 대승이 가능한가? 잘 모르겠다.
경기 전 상암에 모인 5만 9천 팬들은 클린스만 감독의 호명에 야유를 보냈다. 이례적 상황은 선수들을 자극했다. 경기 후, 조규성은 “야유를 들었다. 그걸 듣고 감독님께 힘을 더 실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아직 경기가 많이 남아있는데”라는 말도 덧붙였다. 네 번째 골의 주인공 황의조는 “선수들이 할 수 있는 걸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첨언했다.
튀니지전 결과는 ‘업사이드 다운(upside down)’이었다. 정통으로 맞아 홀라당 뒤집어지는 딱지 같았다. 국내 축구를 무시하면서 망친다는 격노와 아프리카 강호를 상대로 거둔 4-0 대승은 상관관계가 희박해 보인다. 물론 한 경기일 뿐이다. 그것도 평가전이었다. 팬심 온도가 상승하려면 튀니지전 같은 결과가 더 필요하다. AFC아시안컵에서 성공할 때까지 계속 쌓여야 한다. 어쨌든 튀니지전만 놓고 보면 많은 것이 뒤집힌, 당혹스러운, 표정 관리가 필요한 저녁이었다.
현장에서 함께 철수하는 동료와 이야기를 나눴다. “모르겠다… 하여튼 이기니까 좋다 야.”
글 = 홍재민
사진 = 홍재민, 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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