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동행] "어렵게 살았으니 더 나눠야죠" 40여년 봉사 남해 김윤상씨

이준영 2023. 10. 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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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렵게 살았다 보니 남에게 더 베풀수록 만족과 보람도 큰 것 같습니다."

경남 남해군 창선면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윤상(67) 씨에게 봉사는 어느새 삶의 일부가 됐다.

김씨는 "몇 년 뒤면 제가 저 자리에 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면서 남모를 애틋함 같은 것들이 생기더라"며 "어르신들이 고생한다고 좋게 봐주신 덕분에 지금까지 꾸준히 봉사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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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중식당 연 뒤 꾸준히 자장면 봉사…의용소방대원 활동도
"나눌수록 보람 커져…봉사 인생 50년 채우고파"
자장면을 만드는 김윤상씨 [김윤상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남해=연합뉴스) 이준영 기자 = "제가 어렵게 살았다 보니 남에게 더 베풀수록 만족과 보람도 큰 것 같습니다."

경남 남해군 창선면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윤상(67) 씨에게 봉사는 어느새 삶의 일부가 됐다.

1980년 의용소방대원으로 시작해 자장면 봉사를 이어온 지도 벌써 40년이 넘었다.

생의 절반 이상을 꾸준히 봉사했으니 이쯤 되면 '봉사의 달인'이라는 말이 어울릴 법하다.

"봉사라는 게 별거 있나요. 내가 할 수 있는 것으로 남을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으면 그게 봉사죠."

김씨가 봉사에 눈 뜨게 된 건 어려웠던 가정 형편 때문이다.

1969년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무작정 서울로 올라가 중식당에서 일을 배웠다.

돈이 없던 그에게 중식당은 숙식을 해결하며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곳은 유일한 곳이었다.

이후 1981년 고향인 남해군에서 마침내 자신의 중식당을 열었다.

비록 임차인이긴 했지만, 나만의 가게를 갖고 음식을 대접할 수 있는 상황이 되자 어려운 주위 이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김씨는 "형님 두 분이 일찍 돌아가시고 제가 맏이 역할을 하며 어릴 때부터 닥치는 대로 일했다 보니 주변의 작은 도움도 정말 고맙게 느껴졌다"며 "베풀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지역에서 의용소방대원을 하면서 자장면 봉사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반죽된 면을 손질 중인 김윤상씨 [김윤상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자장면 봉사는 처음엔 불교 신자인 이유로 지역 사찰 위주로 다녔다.

전남과 경북, 부산 등 경남 외 지역도 가리지 않고 봉사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갔다.

한 번 봉사할 때마다 적게는 100그릇에서 많게는 700그릇까지 대접했다.

김씨는 "오전 2시께 일어나 반죽하고 춘장을 일차 볶은 뒤 무게 45㎏의 제면 기계까지 싣고 곳곳을 다녔다"며 "옛날엔 자장면 한 그릇이 귀해 다들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면 그걸로 힘든 게 싹 가시곤 했다"고 말했다.

김씨 활동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봉사 장소는 경로당과 지역 복지회관, 노인대학 등으로 더 다양해졌다.

김씨는 "몇 년 뒤면 제가 저 자리에 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면서 남모를 애틋함 같은 것들이 생기더라"며 "어르신들이 고생한다고 좋게 봐주신 덕분에 지금까지 꾸준히 봉사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면을 삶는 김윤상씨 [김윤상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1995년부터는 중식집을 그만두고 계절 음식을 다루는 지금의 식당을 운영하고 있지만 자장면 봉사는 계속 이어진다.

봉사 횟수로 따지면 150회가 훌쩍 넘는다.

이 같은 활동 덕분에 김씨는 그동안 경남도지사 표창장을 비롯해 환경부 장관상, 행정자치부 장관상, 행정안전부 장관상 등 수십여장의 표창을 받았다.

40여년을 봉사했으니 이제 지칠 법도 하지만 그는 여전히 달릴 수 있다고 자신한다.

김씨는 "봉사는 이제 내 인생이나 마찬가지인 만큼 최소 50년은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그동안 군말 없이 함께 봉사해준 아내에게도 정말 고맙고 앞으로도 아내와 함께 힘닿는 데까지 지역 사회를 위해 봉사하겠다"고 말했다.

lj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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