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솔로 16기’ 대란…‘만들어진’ 적나라함, 일반인 빌런의 탄생

한겨레 2023. 10. 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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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한겨레S]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결혼 급한 ‘평범한’ 사람 모아 5박6일간 경쟁하며 오해·분쟁…감정 폭발하는 ‘빌런 탄생 구조’
‘나는 솔로’ 16기 방송의 한 장면. 이엔에이(ENA) 에스비에스플러스(SBS Plus) 제공

체감상으로만 보면 ‘대장금’ 수준의 인기다. 최근 이엔에이(ENA)·에스비에스플러스(SBS Plus) ‘나는 솔로’를 둘러싼 인기는, 프로그램을 안 보던 사람들까지도 입문하게 할 만큼 뜨거웠다. ‘돌싱 특집’으로 진행된 16기는 영숙과 영자, 영수 등이 주도한 ‘가짜뉴스’ 소동이 불러온 롤러코스터와 같은 오해의 연속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고, “경각심 가지세요”, “산전수전”, “나니까”, “테이프 깔까?” 등의 유행어들로 온라인을 수놓았다. 16기의 마지막 회는 두 채널 합산 평균 7.05%(수도권 유료 방송 가구 기준)를 기록했고, 방송이 끝난 뒤에도 사람들은 16기 신드롬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16기가 한 기수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빌런’(악당)들이 유달리 많이 모인 기수여서 화제가 된 측면도 크지만, ‘나는 솔로’의 인기는 단순히 16기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연애예능의 전성시대라고 하지만, 작년 한 해에만 30개 가까이 등장한 연애예능 중에서도 ‘나는 솔로’는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매 기수가 끝날 때마다 해당 기수 출연자들의 사생활이나 과거 행적들을 다루는 유튜브 콘텐츠들이 양산되고, 팬들은 수많은 밈(meme)과 이따금 등장하는 빌런을 씹고 뜯으며 논다. 이런 인기의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바로 다른 연애예능과 비교되는 ‘적나라함’에 있다.

판타지 제거하고 결혼 목표 향해

비슷한 시기 등장해 인기를 끌었던 여타 연애예능과 비교해보자. ‘환승연애’나 ‘하트시그널’ 등은 지금 당장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가 되어도 손색이 없을 법한 외모를 지닌 젊고 아름다운 출연자들을 섭외해 아름답게 꾸며진 맨션에서 합숙을 시키고, ‘솔로지옥’은 아예 일상에서 유리된 섬으로 출연자들을 데려가 수영복 차림의 출연자들을 화면 위에 전시한다. ‘연애’라고 했을 때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예쁘고 애틋한 판타지들을 모으고, 그에 수반되는 비루한 일상은 최대한 쳐냄으로써 당도를 높이는 것이 연애예능의 기본 공식이다.

‘나는 솔로’ 16기 방송의 한 장면. 이엔에이(ENA) 에스비에스플러스(SBS Plus) 제공

‘나는 솔로’는 다르다. 길에서 흔하게 마주칠 수 있을 법한 평범한 외모의 소유자들이 모여서, 교과서에서 자주 접했던 영철, 영수, 영호, 광수, 영자, 영숙, 정순 등의 이름을 달고 만난다. 시간이 지나면서 숙소의 여건이 다소 나아지긴 했지만, 대학생들이 엠티 갈 때 묵을 법한 펜션에 투박한 앵글로 설치한 카메라가 잡은 화면은 판타지라기보단 다큐멘터리나 실험 카메라 쪽에 가깝다. 남규홍 피디의 전작인 에스비에스(SBS) ‘짝’에서부터 그랬지만, ‘나는 솔로’는 애초에 연애를 판타지의 형태로 제공할 생각이 없다.

이는 ‘나는 솔로’가 택한 출연자 연령대와도 연결된다. ‘환승연애’나 ‘하트시그널’ 등의 여타 연애예능의 방점은 ‘연애’에 찍혀 있고, 그래서 이들 프로그램은 육체적인 매력이 가장 찬란한 시기이지만 당장 결혼이 급한 것은 아닌 20대 청춘들을 섭외한다. ‘나는 솔로’는 다르다. 사회적으로 결혼 적령기라고 여겨지는 30대 중반의 출연자들을 섭외해, 연애 감정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이라는 정해진 목표를 향해 더 절박하게 달리도록 유도한다. 이에 대해 남규홍 피디는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실 연애만 하고 싶은 20대 청춘들이 나오는 데이팅 프로그램은 싱겁다고 생각한다. 목표가 있고 목표를 이루어야만 하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어야 진정성이 생기기 때문에 결혼 적령기의 출연자를 대상으로 하는 게 맞다. ‘짝’ 때만 해도 30살 전후 출연자가 많았는데 지금은 남자는 30대 중후반, 여자는 30대 초중반이 대부분이다. 덕분에 프로그램 초반에는 실제 결혼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았다.”([인터뷰] 이곳에선 누구든 ‘빌런’이 될 수 있다, ‘나는 솔로’ 남규홍 피디. 2023년 9월21일. 씨네21 임수연 기자)

목표가 더 구체적이고 절박한 사람들을 모아 놓았으니, 출연자들의 욕망도 더욱 노골적이 된다. 다른 프로그램에서는 아름다운 외모나 취미, 성격, 태도 등 연애를 최대한 낭만적으로 꾸밀 수 있는 매력자원이 전면 배치된다면, ‘나는 솔로’의 세계에서는 안정적인 직장이나 보유한 자산 등의 재력 등 결혼 시장에서 우위를 선점하게 해주는 자원들이 한층 더 부각된다. 연애를 오래 즐기고 낭만을 누릴 시간적 여유가 상대적으로 적은 사람들, 연애의 목적을 결혼이라는 결말로 정해놓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탓에 더 ‘현실적인’ 요소들이 부각되는 것이다.

비루함 숨기지 않아 ‘더 몰입감’

이처럼 ‘나는 솔로’는 일상적인 인간의 피로와 비루함을 숨기지 않고, 그렇기에 오히려 몰입감을 유발한다. 잘 세공된 판타지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혼자이고 싶지 않다’는 욕망이 적나라하게 터져 나오는데, 연애를 예쁘게 포장할 수 있는 요소들만 모은 것이 아니라 갖은 오해와 질투, 콤플렉스와 현실적인 계산 등이 난무하는 ‘나는 솔로’는 보는 이로 하여금 “이건 진짜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나는 솔로’ 16기 방송의 한 장면. 이엔에이(ENA) 에스비에스플러스(SBS Plus) 제공

문제는 그것이 ‘적나라함’일지언정 ‘진짜’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이 자연스럽게 호감을 쌓고 연애를 시작하는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가 되었든, 소개팅이나 맞선 등을 통해 연애를 목적으로 만남을 가지는 ‘인만추’(인위적인 만남 추구)가 되었든, 현실세계의 연애는 ‘이 중에서 내 짝을 찾아야지’라는 마음 하나로 5박6일 동안 제한된 공간 안에서 다수의 남녀가 동거를 하는 형식으로 이뤄지지는 않는다. 각자의 공간에서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하고, 잠재적 경쟁자가 아닌 평범한 동료들에게 의견을 묻기도 하고, 더 차근차근 서로를 알아갈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솔로’를 비롯한 수많은 연애예능의 세팅은 현실세계에서는 불가능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현실세계에서보다 훨씬 더 증폭된 형태의 정서가 분출될 수밖에 없는 형태를 지니고 있다. ‘연애’라는 목표 하나로만 꾸려진 임시 공동체이니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서로를 잠재적 연애 대상이나 경쟁자로 의식한 상태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고,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제한적이다 보니 서로를 탐구하는 과정 또한 현실세계의 그것보다 더 급해질 수밖에 없다. 함께하는 이성들이 그냥 평범한 일상을 공유하는 동료 시민이 아니라 ‘하나의 선택지’로 존재하는 환경인데, 서로를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은 제한돼 있으니 쉽게 선택을 내리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사람도 생기는가 하면, 4기의 영철처럼 만난 지 이틀 만에 정자를 무례하게 다그치면서 선택에 대한 압박을 주는 사람도 등장한다. ‘빌런’의 탄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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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렇게 안 하지’ 거리 두며 평가

남규홍 피디 또한 이것이 현실적인 세팅이 아니라 특수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다시 씨네21과의 인터뷰를 인용하자면, 남규홍 피디는 “기수마다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사람이 반드시 등장한다”는 인터뷰어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내가 의식적으로 특이한 사람을 찾는 것도 아니다. 방송 출연하기 전에는 다들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16기 상철도 원래 보통의 무난한 분이었는데 ‘나는 솔로’를 보는 시청자들은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받아들이지 않나. 다양한 인간들이 모여 관계를 맺고 사건이 터지고 농축된 감정이 폭발하고 그 과정이 드라마틱하게 표현되면 시청자가 보기에 독특한 캐릭터가 만들어질 수 있다. 누구든 ‘나는 솔로’ 같은 특수한 상황에 놓이면 이른바 ‘빌런’이 될 수 있다.”

‘일상적인 현실에서 유리되어 있는 판타지’임을 강조하며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분히 낭만적으로 포장해 주는 여타 연애예능과 달리, ‘나는 솔로’는 출연자들 사이의 오해나 분쟁 등의 모습까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그것이 대단히 현실적인 모습인 것처럼 보여준다. 흔히 볼 수 있는 외모의 사람들이, 흔히 있는 펜션에 모여, 잘 꾸며지지 않은 일상적인 미장센 안에서 정제되지 않은 감정을 폭발시키는 영상. 그것은 분명 아주 특수한 상황에서 특정 욕망만을 부각시킨 상황임에도, 판타지를 걷어낸 ‘적나라함’은 그것을 일견 ‘리얼’한 상황인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러다 보니 ‘나는 솔로’에서 종종 나오는 이상행동들은, 그것이 대단히 특수한 상황에서 나오는 행동임에도 이 사람의 본질인 것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을 수반한다.

이 착시현상은 화면 속 출연자와 시청자 사이의 거리두기에서 생긴다. 여타 연애예능과 달리 ‘적나라함’을 내세운 탓에, 시청자들은 ‘나는 솔로’를 판타지가 아니라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소비한다. 그렇게 이것이 대단히 특수한 상황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만듦으로써, 시청자들로 하여금 안심하고 ‘나는 저렇게 이상한 행동은 안 하지’라며 출연자와 거리를 두고 마음 편히 평가하고 조롱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다. “누구든 ‘나는 솔로’ 같은 특수한 상황에 놓이면 이른바 ‘빌런’이 될 수 있”음에도 말이다.

남규홍 피디는 프로그램의 인기 비결로 “정직하고 사실적으로 만들어온 방송”이라 말하며 “2023년의 사랑을 보려면 ‘나는 솔로’를 보라”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인간의 감정을 극도로 증폭시키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등장하는 이상행동들로 화제몰이를 한 프로그램이 “정직하고 사실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프로그램의 성공은 축하할 일이나, 그것이 “사실적”이라고 말하는 기만은 이제 멈출 때도 됐다.

티브이 칼럼니스트

정신 차려 보니 티브이를 보는 게 생업이 된 동네 흔한 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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