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로 보는 세상] 속이지 않는 뒷모습의 진실

도광환 2023. 10. 14. 09:00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대학 다닐 때 아버지가 갑자기 자취방을 찾아오셨어요. 용돈을 주시고 선걸음에 가신다고. 기다란 골목길을 걸어가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처음으로 '아, 아버지가 늙으셨구나. 아버지가 쓸쓸해 보여'."

아니 뒷모습에 더 진실한 표정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뒷모습을 보는 일은 힐긋 보는 일이 아니고 오래 보는 일이며, '지켜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울=연합뉴스 ) 도광환 기자 = "대학 다닐 때 아버지가 갑자기 자취방을 찾아오셨어요. 용돈을 주시고 선걸음에 가신다고…. 기다란 골목길을 걸어가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처음으로 '아, 아버지가 늙으셨구나. 아버지가 쓸쓸해 보여'……."

한 미술 에세이 책에서 읽은 글이다.

아버지 모습에서 유독 쓸쓸함을 느낀 이유는 무엇일까?

얼굴을 맞대고 인사를 나눴으면 밝은 마음으로 헤어졌을지 모른다. 슬펐던 이유는 뒷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뒷모습에도 표정이 있다. 아니 뒷모습에 더 진실한 표정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뒷모습을 보는 일은 힐긋 보는 일이 아니고 오래 보는 일이며, '지켜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함메르쇠이의 작품 (1904) 덴마크 란데르스 미술관 소장

덴마크를 대표하는 빌헬름 함메르쇠이(1864~1916)는 뒷모습에 천착한 화가다. 그보다 뒷모습을 많이 그린 화가도 드물 것이다.

뒷모습 주인공 대부분이 그의 부인이었다는 점, 외부가 아닌 실내만 고집했다는 점, 그 공간에 여백이 많다는 점이 뚜렷한 특징이다. 포근한 여백은 '빈 곳'이 아니다. 오히려 그림에 힘을 불어넣는다. 생각할 시간을 준다.

아래는 다른 대표작 두 점이다.

함메르쇠이의 작품 (1901) 덴마크 코펜하겐 미술관 소장
함메르쇠이의 작품 (1908) 덴마크 오르후스 미술관 소장

그림에서 강하게 느껴지는 감성을 꼽자면 침묵, 우울, 시 등이다. 뒷모습뿐 아니라 무채색 톤이 화면을 지배하고 있어 그런 감성을 고양한다.

함메르쇠이 여인은 거의 검정 옷을 입고 있다. 실내 가구나 벽을 그리면서도 밝은 색조는 찾지 않았고, 환한 빛은 겨우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조연'으로 그렸다.

미스터리한 분위기도 있지만, 차분히 응시하며 사유에 빠질 수 있는 그림들이다.

'실내 정경' 하면 떠오르는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1632~1675)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페르메이르는 빛을 '주인공'으로 삼았으며 등장인물 표정도 뚜렷이 살렸다는 점에서 함메르쇠의와 차이가 있다.

페르메이르 '진주 목걸이 여인' (1664) 베를린 국립 회화관 소장

페르메이르가 '안온한 고요함'을 그렸다면, 함메르쇠이는 '적막한 단절감'을 그린 것이다.

프랑스 작가 미셸 투르니에는 '뒷모습'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자신을 밝히지 않는 뒷모습은 마주하는 이도 속이지 않는다. 뒷모습이 요령부득의 사실로 느껴진다면 진실의 모습도 요령부득하기 때문이다"

함메르쇠이 그림은 파고들거나 다가가기 쉽지 않다. 대신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상상은 감상자 몫이므로 속을 일이 없다.

투르니에 말대로 진실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 없다. 그래서 뒷모습 그녀를 불러 돌아보게 하고 싶지 않다. 그저 지긋이 바라보고 싶다.

dohh@yna.co.kr

▶제보는 카톡 okjebo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