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로 보는 세상] 속이지 않는 뒷모습의 진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대학 다닐 때 아버지가 갑자기 자취방을 찾아오셨어요. 용돈을 주시고 선걸음에 가신다고. 기다란 골목길을 걸어가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처음으로 '아, 아버지가 늙으셨구나. 아버지가 쓸쓸해 보여'."
아니 뒷모습에 더 진실한 표정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뒷모습을 보는 일은 힐긋 보는 일이 아니고 오래 보는 일이며, '지켜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울=연합뉴스 ) 도광환 기자 = "대학 다닐 때 아버지가 갑자기 자취방을 찾아오셨어요. 용돈을 주시고 선걸음에 가신다고…. 기다란 골목길을 걸어가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처음으로 '아, 아버지가 늙으셨구나. 아버지가 쓸쓸해 보여'……."
한 미술 에세이 책에서 읽은 글이다.
아버지 모습에서 유독 쓸쓸함을 느낀 이유는 무엇일까?
얼굴을 맞대고 인사를 나눴으면 밝은 마음으로 헤어졌을지 모른다. 슬펐던 이유는 뒷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뒷모습에도 표정이 있다. 아니 뒷모습에 더 진실한 표정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뒷모습을 보는 일은 힐긋 보는 일이 아니고 오래 보는 일이며, '지켜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덴마크를 대표하는 빌헬름 함메르쇠이(1864~1916)는 뒷모습에 천착한 화가다. 그보다 뒷모습을 많이 그린 화가도 드물 것이다.
뒷모습 주인공 대부분이 그의 부인이었다는 점, 외부가 아닌 실내만 고집했다는 점, 그 공간에 여백이 많다는 점이 뚜렷한 특징이다. 포근한 여백은 '빈 곳'이 아니다. 오히려 그림에 힘을 불어넣는다. 생각할 시간을 준다.
아래는 다른 대표작 두 점이다.
그림에서 강하게 느껴지는 감성을 꼽자면 침묵, 우울, 시 등이다. 뒷모습뿐 아니라 무채색 톤이 화면을 지배하고 있어 그런 감성을 고양한다.
함메르쇠이 여인은 거의 검정 옷을 입고 있다. 실내 가구나 벽을 그리면서도 밝은 색조는 찾지 않았고, 환한 빛은 겨우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조연'으로 그렸다.
미스터리한 분위기도 있지만, 차분히 응시하며 사유에 빠질 수 있는 그림들이다.
'실내 정경' 하면 떠오르는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1632~1675)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페르메이르는 빛을 '주인공'으로 삼았으며 등장인물 표정도 뚜렷이 살렸다는 점에서 함메르쇠의와 차이가 있다.
페르메이르가 '안온한 고요함'을 그렸다면, 함메르쇠이는 '적막한 단절감'을 그린 것이다.
프랑스 작가 미셸 투르니에는 '뒷모습'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자신을 밝히지 않는 뒷모습은 마주하는 이도 속이지 않는다. 뒷모습이 요령부득의 사실로 느껴진다면 진실의 모습도 요령부득하기 때문이다"
함메르쇠이 그림은 파고들거나 다가가기 쉽지 않다. 대신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상상은 감상자 몫이므로 속을 일이 없다.
투르니에 말대로 진실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 없다. 그래서 뒷모습 그녀를 불러 돌아보게 하고 싶지 않다. 그저 지긋이 바라보고 싶다.
dohh@yna.co.kr
▶제보는 카톡 okjebo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이영애, '김여사 연관설' 제기 유튜버 화해거부…'끝까지 간다' | 연합뉴스
- 영장실질심사 출석 명태균 "민망한데 무슨…"…김영선도 출석 | 연합뉴스
- "마약 투약 자수" 방송인, 필리핀서 귀국하자마자 경찰 조사 | 연합뉴스
- 무인카페 비밀번호로 음료 1천번 무단 취식한 10대들…경찰 수사 | 연합뉴스
- 스쿨존서 70대 몰던 승용차 인도 돌진…행인 부상·반려견 즉사 | 연합뉴스
- "초등 저학년생에 음란물 시청 강요"…초등생 3명 경찰 조사 | 연합뉴스
- 지하주차장서 '충전 중' 벤츠 전기차 화재…주민 수십명 대피(종합) | 연합뉴스
- "왜 이리 나대나"…트럼프 측근들, 머스크에 '도끼눈' | 연합뉴스
- 등교하던 초등생 머리 박고 도주…'박치기 아저씨' 검거 | 연합뉴스
- 가족 앞에서 헤어진 여친 살해, 34세 서동하 신상 공개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