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세에 '달리기'까지…"운전면허 반납한 덕분"[체헐리즘 뒷이야기]

남형도 기자 2023. 10. 1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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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1977년부터 42년 함께한 운전면허증 반납한 배우 양택조씨(84)…"다리 약하면 일찍 죽어, 하체 건강하려면 차 두고 걸어야지요"
[편집자주] 2018년 여름부터 '남기자의 체헐리즘(체험+저널리즘)'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해봐야 깊이 안다며, 동떨어진 마음을 잇겠다며 시작했지요. 글에 꾹꾹 담은 맘을 독자들이 알아줄 때 참 행복합니다. 여전히 숙제가 많으니, 차마 못 다한 뒷이야기도 풀고자 합니다.

13일 오전 경기도 일산 모처에서 인터뷰를 하는 배우 양택조씨(84). 배우로 지내온 삶 이야기와 함께했던 차, 그리 어우러져 뗄 수 없는 긴 이야기를 들었다./사진=남형도 기자
운전면허증을 처음 받아든 건 1977년이었답니다. 무려 46년 전이지요. 그해 기아에선 '브리사'란 차가 나왔다고요.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송강호 배우가 몰았던 그 차 맞습니다. 그러나 당시엔 비싸서 사지는 못했답니다.

배우 양택조씨(84)를 경기도 일산에서 만나는 중이었습니다. TV에서 기억했던 것보단 세월이 꽤 흘러 있었지요.

이야기는 꽤 자주, 옛날로, 여러 갈래로 흘러갔습니다. 실은 운전면허를 반납한, 고령운전자로서 인터뷰를 하러 간 거긴 했지만요. 아무렴 어떨까 싶었습니다. 이 또한 기록이니까요.

1960년대 초에 군대 제대.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대. 연극 집안에서 자라 연극을 하다, 영화계로 넘어갔던 시기. 얻어 먹지도 못해 삐쩍 말라 배우로도 뽑히지 않고, 조감독을 했다고요. 수입이 적었지요. 장가도 가야하는데요. 더빙하는 사람들이 돈 버는 걸 보고, 그리로 파고 들었답니다. 그 결과 이랬답니다.

"완전히 섭렵을 해버렸지. 충무로를 내가 다 먹어버린 거야. 1년에 국산 영화가 103편이었는데, 내가 거의 다 했어."

우리나라 영화가 '후시녹음(영화 촬영이 끝나고 다시 녹음하는 것)'을 할 때였다고요. 20년의 성우 생활. 그리고 42세 나이엔 배우로 데뷔합니다. 투캅스 1~3편 얘긴 빠질 수 없지요. 1편에선 수사 과장이었다가 2편에선 경찰서장으로 진급했답니다. 주책 맞은 역할이었답니다.

촬영장에서 함께했던 車
배우 양택조씨의 첫 새 차였던 현대 포니 자동차. 현대자동차가 밴드 잔나비와 함께 브랜드 헤리티지(정신)를 소개하는 뮤직비디오를 찍은 모습이다./사진=현대자동차
인터뷰가 다른 데로 한참 샜습니다. 불안이 스멀스멀 차올라 아랫배가 저릿할 무렵, 다시 차 얘기로 이어졌습니다. 야외 촬영을 나갈 땐 특히 차가 꼭 필요했다고요.

"옛날엔 드라마하려면 차가 꼭 있어야 하거든. 왜냐면 방송국은 스튜디오니까 상관 없는데, 야외 촬영 땐 필요하지. 촬영 안 할 땐 차에 앉아서 잠깐 쉬기도 했었어."

한창 때였을, 그러나 아직 무명이었을 시절. 아마 기다리는 시간도 꽤 많았겠지요. 차는 그에게 그런 의미였을테고요.

배우 양택조씨가 세 번째 차로 탔던 대우 로얄차./사진=위키백과

"첫 번째 차는, 저기 이태리 비아트(피아트)를 샀어. 그게 내 첫 차였지."

중고차가 첫 차였고, 타다가 팔고 다른 차를 샀다고 합니다. 1985년에 나온 현대 포니랍니다. 기분이 어땠을까요.

"차가 예뻤다고, 포니가. 새 차로 산 건 처음이었어."

그 다음엔 대우 로얄차를 탔고, 이어서 현대 소나타로 바꿨다고요. 양택조씨 눈빛이 오래 전 어딘가를 바라보는듯 깊어졌습니다.

시청률 68% '그대 그리고 나'로 뜨고, 20년 친구 '볼보'를 사고…간경화로 쓰러졌다
/사진=스타뉴스
"어설픈 주연보단 당찬 조연이 낫다"며 한 발씩 나아가던 그였습니다. 노력하는 이였고, 기회가 오니 잡을 수 있었지요.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에서 소위 말해 붕 떴답니다.

"그 드라마 할 때 IMF가 터졌어. 전부 힘든데 그거 보느라 그 시간엔 서울 시내에 차가 안 다녔지. 시청률이 68%가 나왔어. 그 드라마로 빵 떴지."

잘 나가는 이들만 한단 핸드폰 광고도 들어왔고, KFC 광고도 했답니다. 차도 좋은 걸로 탔다지요.

/사진=스타뉴스

"이제 돈도 많이 벌고 그러니까, 저기 뭐야 볼보, 볼보를 탔어. 볼보를 20년을 탔지. 최고야. 클래식이지. 각진 차, 그게 볼보지."

그러나 불행은 뒤에서 조용히 찾아온다지요. 그도 그걸 몰랐고, 대비하지 못했습니다. 바삐 지내던 날들. 녹화 끝나면 MBC 포장마차 앞에서 급히 먹고 허기를 채우고, 휴일도 없이 일하고. 2004년엔 결국 피를 토했습니다. 간경화였습니다. 쓰러졌지요. 간 이식을 해야한다고 했습니다.

양택조씨 아들이 아버지를 살렸습니다. 알아보고, 병원에 데려가고, 간을 줘서 살려냈다고요.

심근경색에 뇌출혈까지…'운전면허'를 반납했다
젊은이에게 의지할 생각 말고 내 힘으로 다녀야한다고. 여전히 팔굽혀펴기도 50개씩 하는 그는, 걷기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얘기했다./사진=남형도 기자
간 이식 수술을 하고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갈비 장사를 시작했답니다. 이름을 걸고, 친척들이 해보자고 했다지요. 장사도 잘 됐답니다.

점심이 되고, 배고프면 먹어야 하는데 시간이 없을정도로요. 그러니 그냥 빨리 되는 갈비탕 같은 걸 많이, 또 오래 먹었답니다. 결국 심근경색까지 오게 됐지요. 운동해야 하는데 장사하기 바빠 그럴 시간도 없었답니다.

건강엔 계속 적신호가 켜졌고요. 어느 날 아침엔 일어났는데 이상하게 감각이 없었답니다. 엠뷸런스에 실려가 MRI를 찍었지요. 뇌가 터져서 피딱지가 보였습니다. 뇌출혈이 온 거였지요. 그만의 일은 아녔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배우 사미자씨는, 차 안에서 심장마비가 왔었다고요. 운전 중 그런 일이 생기면 큰일나겠구나 싶었답니다.

2019년, 양택조씨 나이 80세 때였습니다. 운전면허증을 반납한 게 그 때였습니다.

"난 반강제로 한 거나 마찬가지야(웃음). 아침마당 방송할 때 MC가 '나이 80이 되면 운전면허증은 어떻게 할까요?' 그래서 내가 '80이 되면 반납해야지, 무슨 운전을 해?' 그랬지. 그랬더니 바로 반납하라 그래서 생방송 중 반납한 거야."

배우 양택조씨가 마지막으로 탄 차이자, 20년 동안 탔던 차인 볼보 세단 850./사진=나무위키

20년 동안 타고 다닌 볼보 세단 850. 그 차도 교회 친구에게 줬답니다. 아주 수지 맞은 거라고, 주고 났더니 솔직히 좀 후회됐다며 너털 웃음을 짓습니다. 오래 품은 운전면허증, 몸과 같이 타고다닌 차가 사라진 기분은 어땠을까요.

"수십년 갖고 있던 면허증을 반납한 거잖아. 그건 좀 섭섭하지. 그거 외엔 그냥 맘 편하게 했어."

뛰기까지 하는 '노익장'…"하체 건강 신경 쓰려면, 차 놓고 걸어야지"
인터뷰를 하고 있는 배우 양택조씨./사진=남형도 기자
양택조씨는 올해 84세가 됐습니다. 면허를 반납한지 벌써 4년이 됐지요. 차가 없는, 요즘의 삶은 어떨까요.

"우선 행복해. 차를 타면 내가 가는 앞 밖에 못 보잖아. 경관을 느끼고 할새도 없지. 걸으니까 이것저것 다 보며 다녀. 사람 사는 것 같지. 하다못해 누가 싸우면 말리기도 할 정도로(웃음)."

주위를 두리번거릴 여유가 생긴 거지요. 또 다른 장점도 계속 열거했습니다.

"어디 가서 주차할지 걱정이 없어. 시간 약속했는데 교통 막히면 초조하잖아. 운전대 잡았다 하면 맨날 초조했었어. 빨리 가야할텐데 하고. 그게 사라지니 심리적으로 이완이 돼. 마음이 편안하니까 얼굴이 좋아지나봐."

그러나 면허증을 반납하지 못하는 이들도, 충분히 헤아렸습니다. 양택조씨는 지하철역이 가까워 다니기 좋았다고요. 그러기 힘든 지역에 사는 이들도 많으니, 그런 어르신들을 위해 버스 할인 혜택 등도 검토됐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실질적인 혜택이 필요하다고요.

고령운전자의 신체적 특징들./사진=도로교통공단

또 택시를 타야하는데, 섬세하게 살펴볼 부분이 보였습니다. 경기도 파주 외진 지역서 촬영할 때였답니다. 택시를 불러야 하는데 잘 잡히지 않았던 거지요. 다행히 스텝이 택시앱으로 불러줬답니다. 양택조씨는 그 앱을 어떻게 쓰는지 전혀 몰랐다고요.이런 문제도 해결이 필요해 보입니다. 고령운전자에게 차를 놓으라 한다면, 대안이 촘촘해야 하지요.

같은 나이가 그들을 이해한다고 했습니다. 애착을 갖는 거라고, 자존심일 수 있다고요.

김진표(오른쪽) 도로교통공단 운전면허본부장이 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도로교통공단 '어르신 교통사고 Zero 캠페인'에서 어르신과 차량에 고령운전자 표지를 부착하고 있다./사진=뉴스1

면허 반납에 가장 설득력이 있을 얘기라며, 결국 '건강'을 들었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양택조씨이기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됐습니다.

"다리가 약하면 일찍 죽는다고 해. 무너지면 얼마 있다가 가는 거야. 차 운전 안 하니 많이 걷게 되더라고. 나는 심지어 뛰기까지 해요. 운동 열심히 해야해. 그러려면 차 타지 말고 많이 걸어야 하고. 오래 살고 싶으면 하체 건강 신경써야 해요."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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