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기다리는 동안’… 한국의 나폴리 서귀포 바다와 사랑에 빠지다[강동삼의 벅차오름]
# 이탈리아 나폴리와도 바꾸지 않을 아름다운 바다 서귀포
영국사람들이 ‘셰익스피어를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토머스 칼라일)’고 자랑스럽게 말하듯, 서귀포사람(서귀피안)들은 서귀포 앞바다를 이탈리아의 나폴리와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한국의 나폴리 서귀포 바다는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보석처럼 빛나는 바다다. 서귀포 삼매봉을 지날때쯤 펼쳐지는 코발트빛 바다 위에 떠 있는 범섬, 문섬, 그리고 섶섬은 1985년 당시 인기있던 노래 윤수일의 ‘환상의 섬’ 그 자체다. 눈앞에 그 환상의 섬이 펼쳐지면 여기가 바로 지상낙원은 아닐까 생각든다. 너무나 아름다워 마음마저 행복해질 정도다.
노래가사 처럼 ‘세월이 흐른 뒤 다시 찾은 그 섬엔/문명이 할퀴고 간 초라한 그 모습’일 수도 있지만, 서귀포 앞바다는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 아름다움은 변하지 않았다. 아름다운 그 모습 그대로여서 안도하고 그 변함없음에 경탄하게 된다.
어릴 적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변함없는 모습일 때 더 반가운 것과 같은거다. 주름이 생기고 살이 찌고 머리가 희끗희끗해졌지만, 성형하지 않은 옛 모습 그대로일 때의 그 익숙한 아름다움이다. 사람은 낯섦보다 익숙함에 더 끌린다. 그 익숙함에 마음의 안식을 느끼게 되는 것 처럼….
# 보목포구 앞 섶섬을 닮은, 섬같은 오름 제지기오름
제지기오름은 바로 그 섬들 중에도 동쪽에 있는 아름다운 섬, 섶섬을 내려다보는 오름이다. 변함없이 아름다운 모습이다. 서귀포에서도 가장 따뜻하기로 유명한 보목동 275-1번지 일대에 자리잡은 오름. 물론 사견을 곁들이자면, 멀리서 보면 섬처럼 보이는데다 바로 앞에 떠 있는 섶섬과도 닮아서 형제같다.
제지기오름은 천천히 걸어도 20분이면 정상에 닿는다. 표고가 94.8m에 불과하다. 그러나 입구에서 조금만 지나면 가파른 계단이 이어지기 때문에 호락호락하지 않다. 다만 힘든 오르막이 짧을 뿐이다.
제지기오름은 남쪽 중턱의 굴이 있는 곳에 절과 절을 지키는 사람인 절지기가 있었다 하여 절오름, 절지기 오름으로 불리다가 와전되어 제지기오름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있으며 또한 1800년도 경과 그 이전에 제작된 옛 지도에 저즉지(貯卽只)와 저즉악(貯卽岳)으로 표기되는 등 ‘저’자가 쓰인 것으로 보아 오름모양이 낟가리(눌)와 비슷한 데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오르막을 다 오르면 그 헉헉대던 심장이 보상을 받을 정도로 황홀한 섶섬이 한눈에 들어온다. 해송들 사이로 보이는 서귀포 앞바다와 문섬, 범섬, 멀리 산방산까지 들어온다. 섶섬과는 불과 1㎞ 거리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가까운 벗이다. 보목항에는 잠수하는 사람들로 늘 북적거리는데 10만원만 내면 섶섬 바다 밑을 스쿠버다이빙하며 맘껏 즐길 수 있다. 외국인들도 즐겨 찾는 명소가 됐다. 더불어 갯바위 낚시터로 유명한 지귀도가 아른거린다.
#자리물회로 더 유명한 보목포구… 백두산 천지를 축소한 소천지… ‘수리남 촬영지’ 허니문하우스
사실 제지기오름 동네 보목동은 잠수하기 좋은 포구이기도 하지만, 자리물회로 더 유명한 곳이다. 매년 5월 말이면 어김없이 보목자리돔축제가 펼쳐진다. 육지에선 집 나간 며느리도 가을전어 굽는 냄새에 돌아온다고 하지만, 제주에선 삼복더위에 입맛을 잃었을 때 자리물회를 먹으면 입맛이 돌아온다고 할 정도다.
그러나 제주 특산품 옥돔, 갈치, 다금바리를 좋아하는 관광객은 있어도 자리돔을 좋아하는 관광객은 많지 않은게 사실이다. 유달리 가시가 많고 비린내가 많이 나 호불호가 갈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주사람들은 그 비린내는 제피로 잡고 빙초산 한방울이면 잡내도 오케이다. 3박4일간 자리물회를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는 귀여운 어린 친구는 자리물회 사준다는 말만 해도 멀리 서울에서 금세 달려올 것이 분명하다. 그만큼 제주인들의 자리사랑은 남다르다. 뼈까지 오도독 오도독 씹어 먹을수 있게 잘 볶아먹고 회로 먹고 심지어 홍어 삭히듯 묵혀 놓은 젓갈로 오래두고 먹는다.
제지기오름에서 내려와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유명하다는 어진이네집에 가서 자리물회를 시켰더니 이날 자리돔이 없단다. 사실 자리돔철도 아니다싶긴 하다. 너무 늦게 찾아왔다. 그 대신 한치물회로 아쉬움을 달랜다.
오름이 짦다보니 좀 더 걷고 싶어 오름에서 지근거리에 있는 산책할만한 장소로 발길을 옮긴다. 제주올레 6코스로 연결되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 소천지 가는 산책로다. 소천지는 마치 백두산 천지의 모습을 축소해 놓은 모습이다. 투명에 가까운 푸른 바닷물에 비친 기암괴석들이 혼을 빼놓는다. 연못같은 바위에 걸터앉아 발을 담그는 관광객들도 눈에 띈다. 나 역시 그 맑고 푸른 물의 유혹에 넘어가고 싶어진다. 제지기오름을 탐방했다면 놓쳐선 안될 볼거리다.
인근엔 칼호텔과 허니문하우스, 정방폭포 등 풍광이 끝내주는,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비경들이 즐비하다. 서귀포에서 하루 쯤 더 머물 생각이라면 차근차근 칼(KAL)호텔의 잘 정돈된 산책로를 따라 섶섬 바다의 풍광을 즐겨보는 것도 권유한다. 다시 핫플로 떠오른 허니문하우스(수리남 촬영지)도 이국적이다. 수십년전, 그 카페는 고교졸업생들의 미팅하기 좋은 장소였다. 그곳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차 한잔 하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이 있을까/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너였다가/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다시 문이 닫힌다’
마치 황지우 시인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 시처럼, 오래도록 기다려본 사람은 안다. 예전엔 그 기다리는 일이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면, 지금은 사람을 기다리는 일도, 소식을 기다리는 일도, 어떤 기약없는 행복을 기다리는, 그 기다림도 일상이 된 지 오래다.
묵묵히 시간이 해결해주거라 믿으며 기다린다. 나이가 들면서 기다림엔 익숙해진다. 누군가가 다친 상처를 딛고 다시 일어서기를 기다려주고, 누군가가 닫힌 마음을 열고 다시 다가오기를 기다려주고, 누군가가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나기를 기다려주는 그 기다림의 일상. 그 누군가가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하면서 오늘도 누군가를 그리워하다가 그만 눈부시도록 시린 바다와 사랑하게 된다. 서귀포바다와 로맨틱한 ‘폴링 인 러브’를 하게 된다.
#잠깐, 여기서 쉬었다 갈래… 새섬과 서귀포관광 유람선
바다를 끼고 걷고 싶다면 유명관광지 천지연폭포로 가는 길에 만나는 서귀포항 앞 새섬을 한바퀴 돌아볼 것을 권유한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촬영지로도 유명해진 새섬은 서귀포항 앞바다에 있는 섬으로 새연교와 연결되어 있다. 제주도에는 띠로 엮은 지붕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여기에 사용되는 띠풀을 ‘새 풀’이라고 한다. 새 섬은 이 ‘새 풀’이 많이 자라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2009년 서귀포항과 새섬을 잇는 새연교가 개통된 이후 도민과 관광객들이 쉽게 새섬을 방문할 수 있게 됐다.
무인도인 새섬은 난대림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새섬의 생태를 관찰할 수 있다. 문섬이 바로 앞에 있으며 한바퀴 도는데 걸리는 시간은 20여분 정도. 코스가 짧아 가볍게 산책하기 제격이다.
새섬 앞에는 뉴파라다이스호를 타고 서귀포 바다를 관광하는 유람선이 뜬다. 성인 1만 9000원 요금으로 서귀포가 왜 한국의 나폴리보다 아름다운지 실감할 수 있다. 코스는 새연교와 새섬을 지나 외돌개, 범섬, 문섬, 섶섬을 가까이 혹은 먼 바다에서 감상할 수 있으며 한라산 아래 서귀포 시가지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다.
특히 범섬 앞에선 마치 다른 세계를 경험할 수도 있다. 섬 모습이 마치 범과 같이 생겨서 붙여진 범섬(虎島)의 깎아지른 듯한 자연이 빚은 주상절리에 입이 벌어진다. 예전엔 사람이 살았으며 고려 공민왕 23년(1374)에는 최영장군 측이 몽골군을 물리친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단다. 이 섬의 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게 해식동굴이다. 날씨가 너무 좋고 파도마저 잔잔해 유람선은 동굴 바로 앞까지 다가섰다. 관광객들의 탄성이 쏟아졌다. 동굴 천장에도 주상절리가 있었다. 범섬을 한바퀴 돌면서 중문 주상절리와는 또 다른 주상정리를 감상하느라 넋이 나갈 정도였다. 낚시꾼들이 바위 곳곳에서 낚시를 즐길고 있다. 안내원이 손을 흔들어주란다. 말 잘 듣는 학생처럼 모두 손을 흔들어준다.
어쨌거나 무인도지만 사유지란다. 주인이 돈 많은 어르신이라며 여기서 풀어놓기 곤란한 농담까지 건네는 안내원은 오래도록 파도에 쓸려 만들어진 크기가 거의 비슷한 쌍굴(쌍둥이굴)이 있는데 설문대할망이 한라산을 베개삼아 누울때 뻗은 두발 때문에 동굴이 생겼다고 우스갯소리를 또 한다. 실제 그 구멍의 크기가 거의 비슷해 보인다. 안내원은 설문대 할망 콧구멍이라고 말한다.
안내원은 이날 쉬지 않고 걸죽하고 질펀한 농담으로 관광객을 배꼽잡게 만든다. 아마도 이미 다 알고 있는 세상의 농담을 가장 재밌게, 19금을 곁들여 웃음기 없이, 그것도 너무나 심드렁하게, 무심코 툭툭 던져 좌중을 사로잡는 사람으론 타의추종을 불허할 것 같다. 관광을 하는 건지, 스탠딩 코미디를 보는 지 모를 정도로 1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우울한 날, 한번 신나게 웃고 싶다면 유람선을 타고 그의 농익은 해설에 빠져보는 것도 괜찮을 성 싶다.
문섬은 물밑으로 암석이 수직으로 펼쳐지며 이를 따라 산호류와 다른 여러 해양생물이 살고 있어서 잠수함관광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배가 섬 거의 근처까지 가지만, 잠수함이 떠오르는 모습을 보고 지나친다. 안내원은 모기가 너무 많아 모기 문자를 써서 문섬(蚊島)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그리고 섶섬 앞 제지기오름을 가리키며 그 앞에 코미디언 고(故) 이주일(1940.10.24~2002.8.27)별장이 있다는 얘기도 전한다. 나무가 많아 설피섬 또는 섶섬이라고 부르며 한자로 삼도(森島) 라고도 한다. 이 섬에는 파초일엽이라는 귀한 식물이 자라고 있단다.
서귀포에 온 걸 100% 만족하는 섬순례 관광객들의 눈동자엔 이탈리아 나폴리보다 더 아름다운 서귀포바다가 담겨 있다.
글 사진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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