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좋은 말 듣고 너무 힘들었다"…곽빈의 각성, '0구 金 한풀이' 제대로 했다
[스포티비뉴스=잠실, 김민경 기자] "요즘 안 좋은 말도 듣고 하니까 계속 너무 힘들었던 것 같다."
두산 베어스 에이스 곽빈(24) 그동안 홀로 답답했던 마음을 털어놨다. 곽빈은 13일 잠실 KIA 타이거즈전에 선발 등판해 6이닝 109구 2피안타 2사사구 9탈삼진 1실점 호투를 펼치며 정규시즌 마지막 등판을 화려하게 마쳤다. 두산은 3-1로 승리했고, 곽빈은 시즌 12승(7패)째를 챙겼다. 5위 두산은 곽빈이 6위 KIA의 추격을 뿌리치는 중요한 경기를 잡은 덕분에 5강 확정까지 단 1승을 남겨뒀다. 3위 SSG 랜더스(1경기차), 4위 NC 다이노스(0.5경기차)와 막판 순위 싸움도 시즌 끝까지 치열할 전망이다.
곽빈은 이날 마운드에 서기까지 마음고생을 했다.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에 나섰다가 공을 단 하나도 던지지 못하고 돌아온 탓이다. 류중일 한국 감독은 일찍이 곽빈과 문동주(한화)를 에이스로 낙점하고 중용할 계획을 세워놨는데, 곽빈이 지난 1일 홍콩과 조별리그 첫 경기 등판을 앞두고 등에 담 증세가 생기는 바람에 계산이 어긋났다. 곽빈은 슈퍼라운드와 결승전 때는 어떻게든 공을 던지기 위해 애를 썼으나 끝내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다. 대신 박세웅(롯데), 원태인(삼성), 문동주 등 다른 선발투수들이 중요한 경기에서 호투를 척척 해낸 덕분에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다. 곽빈은 동료들과 함께 금메달을 따고도 마음껏 웃을 수는 없었다. 대표팀에 기여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품은 채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곽빈은 "내가 몸을 조금 일찍 푸는 편인데, 홍콩전 2시간을 앞두고 몸을 풀다가 담이 왔다. 트레이너한테 말해서 '어떻게 안 되겠냐'고 했는데, 무리하지 말고 쉬어보자고 했다. 그날 쉬고 다음날 최일언 코치님께서 나가서 캐치볼을 해보라고 했다. 그런데 그날 몸살이 와서 열이 39도 가까이 올랐다. 새벽에 혼자 끙끙 앓고, 아침에 링거를 맞고 담이 풀리는 주사도 3대를 맞았다. 그런데도 담이 안 낫더라. 쉬는 날에 근육에 넣어서 찢듯이 풀어주는 침이 있길래 그걸 맞으니까 담이 조금 풀리더라. 그때부터 준비했던 것 같다"고 대회 당시 사정을 설명했다.
이어 "너무 힘들었다. (문)동주나 다른 선수들한테 너무 미안했다. 선수들 볼 때마다 미안하다고 했다. 진짜 미안하다고. 아파서 마음이 불편하다고 하니까 대표팀 동료 형들과 후배들이 괜찮다고 격려를 많이 해줬다. 슈퍼라운드 중국전부터는 대기를 했다. 슈퍼라운드 중국전 때는 불펜 피칭도 했고, 결승전에는 2회부터 팔을 풀었다. 동주가 다행히 잘 던졌고, 후반에는 필승조가 있어 맡기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부상을 탓할 순 없지만, 운동선수들은 몸 관리도 곧 실력이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곽빈은 이번 기회로 몸 관리의 중요성을 더더욱 뼈저리게 느꼈다. 그런데 곽빈을 향한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에는 병역 혜택이 따르기 때문. 공 하나도 던지지 못한 선수가 혜택을 누린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정규시즌 마지막 등판에라도 좋은 공을 던지고 싶었다. 곽빈은 "팀 분위기가 한 경기 한 경기 결과에 따라 밑으로 갈지 위로 갈지가 달려 있었다. 요즘 안 좋은 말을 많이 듣다 보니까 계속 너무 힘들었던 것 같다. 이날 경기로 내가 보여주자고 강하게 인식하고 던졌다"고 힘줘 말했다.
담 증세 여파인지 구위 자체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 직구 최고 구속은 152㎞까지 나왔으나 평균 구속은 146㎞로 약간 떨어져 있었다. 게다가 직구로 스트라이크가 잘 잡히지 않았다. 직구 35개 가운데 볼이 17개에 이를 정도로 제구가 되지 않았다.
대신 슬라이더가 괜찮았다. KIA 타자들은 곽빈의 슬라이더에 헛스윙을 하거나 건드리지도 못하고 지켜보면서 삼진을 당했다. 109구 가운데 슬라이더가 54개에 이를 정도로 많이 활용했는데, 스트라이크가 41개일 정도로 효과적이었다.
포수 양의지는 "다른 구종(직구, 커브, 체인지업)이 제구가 잘 안돼서 슬라이더가 그나마 스트라이크가 들어가서 계속 주문했다. 카운트 유리할 때 다른 공을 던지게 하면서 결정구로 스트라이크를 던지게 해 결과가 좋았다. 단순하게 갔다. 되는 구종을 계속 요구한 게 결과가 좋았던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곽빈은 "직구 스트라이크가 안 들어가서 (양)의지 선배께서 1회부터 빨리 캐치하고 슬라이더 사인을 많이 냈다. 슬라이더는 스트라이크가 잘 들어가서 과감하게 공격적으로 썼던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곽빈이 꾸역꾸역 버틸 때 타선이 터지면서 힘을 얻을 수 있었다. 3회말 2사 후에 허경민의 볼넷과 정수빈의 중전 안타로 1, 2루 기회를 만들었고, 조수행이 2루수 김선빈의 손에 맞고 우익선상으로 굴러가는 내야안타를 쳐서 2루주자 허경민을 불러들여 1-0으로 앞서 나갔다. 계속된 2사 1, 3루 기회에서는 호세 로하스가 2타점 적시 2루타를 날려 3-0으로 거리를 벌렸다.
타선이 3점 리드를 안긴 뒤 곽빈도 한 차례 흔들렸다. 4회초 김선빈과 소크라테스에게 연속 안타를 맞아 무사 1, 3루 위기에 놓였고, 이우성에게 중견수 희생플라이를 허용해 3-1로 쫓겼다. 곽빈은 이후로 실점하지 않고 잘 버텼지만, 제구가 마음처럼 되지 않아 투구 수 관리에 실패하면서 6이닝 투구에 만족해야 했다.
곽빈은 "사실 대표팀에 합류했을 때 밸런스가 정말 좋아서 이제 잘될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담 증세가 있어서 그 밸런스를 잊었던 것 같다. 솔직히 경기 초반에는 정말 안 좋았는데, 코치님께서도 도와주시고 타자 형들도 점수를 내줘서 편하게 던진 게 결과가 좋았던 것 같다. 담 증세가 솔직히 100% 다 낫진 않았다. 미세하게 느낌이 있었는데, 신경 쓰고 던질 상황이 아니었다. 애초에 투구 수가 많아서 어쩔 수 없이 6이닝만 던지고 내려왔다"고 되돌아봤다.
성적만 놓고 보면 2018년 프로 데뷔 이래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곽빈은 23경기에서 12승7패, 127⅓이닝, 106탈삼진, 평균자책점 2.90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에이스 라울 알칸타라(13승, 186이닝) 다음으로 많은 승리와 이닝을 책임졌다.
하지만 전반기에 허리가 좋지 않아 잠시 자리를 비우고, 이번 대표팀에서도 담 증상으로 강제 휴식을 취하는 등 부상으로 좋은 흐름을 시즌 내내 유지하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더 크다.
곽빈은 "올 시즌은 작년보다 낫긴 하지만, 아직도 한없이 부족하다. 운이 좋았던 한 해인 것 같다. 부상도 자기 관리를 못 한 내 잘못이다. 앞으로도 더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 같다"고 힘줘 말했다.
곽빈은 이제 남은 시즌 동료들의 활약을 응원하면서 가을야구에 나설 준비를 해야 한다. 포스트시즌 때도 에이스로서 곽빈이 해줘야 할 몫이 크다.
곽빈은 "오늘(13일) 던졌으니까 이 감각을 잘 준비하고 잘 쉬고 가을 야구 때 오늘처럼 던지면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그렇게 믿는다. 2년 전 포스트시즌 때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 같다"고 각오를 다졌다.
다음에 태극마크를 달았을 때는 미련이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곽빈은 "올해 대표팀에 2번 갔는데, 나는 아직 한없이 부족한 선수라는 것을 항상 느낀다. 대만 투수들과 일본 투수들을 봤는데 엄청 좋더라. 나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아서 다녀오면 항상 겸손해지는 것 같다. 다음 대표팀에 뽑히면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며 다시 한번 국가를 대표할 순간을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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