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안내견’부터 정주영 ‘포니’까지…시대가 변해도 ‘위대한 유산’ [비즈360]
삼성 신경영 30주년 학술대회
SK 창립 70주년 디지털 어록집
현대차 포니 디자인 복원 모델
LG 의인상 확대로 사회공헌 계승
[헤럴드경제=양대근·김지헌·김성우·김민지 기자] “삼성이 처음으로 개를 기른다고 알려졌을 때, 많은 이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비록 시작은 작고 보잘것없지만 이런 노력이 우리 사회 전체로 퍼져나가 우리 사회의 의식이 높아질 수 있도록 해보자는 것이다.”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회장이 1993년 삼성화재 안내견학교를 세운 당시 한 말이다. 삼성화재 안내견학교는 기업이 운영하는 전세계 유일의 안내견학교로, 올해로 설립 30주년을 맞았다. 1993년은 이 선대회장이 재계 역사에 남을 ‘신경영 선언’을 발표한 해이기도 하다.
지난달 19일 열린 안내견학교 설립 기념식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어머니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이 직접 참석해 선대회장의 ‘동행 철학’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표했다. 삼성은 오는 25일 이 선대회장의 3주기를 맞아 그의 유산을 기리기 위한 다양한 추모 사업도 준비하고 있다.
최근 재계에서 대한민국 경제 부흥을 맨손으로 일궜던 창업 1세대 또는 선대회장들이 남긴 ‘위대한 유산’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다.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나 상징으로 남았던 유산들이 현대적인 의미로 재해석되고, 현재의 위기 상황에서 지속가능경영을 하기 위한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재계 맏형격인 삼성은 이 선대회장의 ‘동행 철학’을 되짚어보는 작업이 한창이다. 먼저 오는 18일에는 삼성전자 서초사옥 다목적홀에서 ‘이건희 회장 3주기 추모, 삼성 신경영 30주년 국제학술대회’가 개최된다. 국내외 저명한 석학들이 참석해 이 회장의 리더십과 삼성 신경영의 의미를 돌아보는 자리다. 로저 마틴 토론토대 명예교수와 김상근 연세대 신학대 교수가 기조연설을 맡는다.
19일 오후에는 경기 용인시 삼성전자 인재개발원에서 이 선대회장의 추모 음악회가 개최된다. 이재용 회장과 삼성 내 전 계열사 사장단이 참석하는 내부 행사로 진행될 예정이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의 참석도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음악회에는 피아니스트 조성진 씨가 직접 무대에 설 예정이다. 그는 선대회장 장례식에도 조문하는 등 삼성가와 연을 이어왔다. 올해는 호암상 예술상 부문의 최연소 수상자로 호명되기도 했다.
SK그룹은 지난 4월 창립 70주년을 맞아 고 최종건 창업회장과 고 최종현 선대회장 형제의 어록집 ‘패기로 묻고 지성으로 답하다’를 펴냈다.
그룹 측은 10개월에 걸쳐 창업회장과 선대회장의 발간물, 사사, 업무 노트 등 기록물 약 1만 5000장을 분석해 대표 어록 250개를 선별했다. 창업부터 선대회장 시기 1500여장의 사진자료를 복원해 170장의 이미지를 어록과 함께 디지털 책에 담았다.
SK그룹 관계자는 “두 회장의 사업보국·패기·인간중심경영·국가경쟁력을 강조한 70년 역사의 ‘SK DNA’를 조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8월에는 송재용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와 이지환 카이스트(KAIST) 경영학과 교수 연구팀이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SK이노베이션의 40년 R&D 경영’을 공동으로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의 성장은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과 전문지식(Expertise)을 바탕으로 기존사업의 경쟁력 강화(Exploitation)와 미래형 신사업 개발(Exploration)의 균형을 유지하며 혁신을 이룩하는 이른바 ‘4E 혁신모델’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특히 최 선대회장에서 최태원 회장으로 40년 동안 이어진 최고경영자의 연구개발(R&D)에 대한 뚝심이 기업 성장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대를 이은 노력이 결실을 맺은 사례도 나타났다. SK이노베이션의 자원개발 자회사인 SK어스온은 지난달 25일 남중국해에서 원유 자체 생산에 성공하면서 해외 자원 개발의 새 역사를 썼다.
40년 이상 석유개발사업을 이어온 SK가 독자적인 운영권을 확보해 탐사부터 개발, 생산까지 이어진 첫 사례다. 최 선대회장의 ‘무자원 산유국’ 꿈을 현실로 만들겠다는 최태원 회장의 뚝심이 결실을 맺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대그룹을 세운 고 정주영 창업주는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라는 자신만의 철학을 바탕으로 20세기 대한민국 경제 부흥을 주도한 대표적 선대 경영인이다.
최근 현대차그룹은 주력 사업으로 꼽히는 전동화 분야에서 정 창업주의 유산인 ‘포니’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복원모델 등을 잇따라 선보이며 산업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
현대차가 처음 세상에 내놓은 자동차 ‘포니’는 정 창업주의 열정으로 탄생한 자동차다. 현대의 자동차 사업 진출을 꿈꾼 그는 신규 차량 제작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1973년 포니를 세상에 선보였다. 그리고 곧바로 국민차로 등극했다.
포니 출시 당시 2만5000대에 불과했던 국내 자동차 등록 대수는 지난해 2000만대를 돌파할 정도로 거대한 시장이 됐다. 현대차도 세계 자동차 판매량 3위로 올라섰다.
현대차가 지난해 11월부터 진행한 ‘포니 쿠페 콘셉트 복원’ 프로젝트 역시 그룹의 헤리티지(유산)를 기리기 위한 행사다. 현대차는 기존 포니 쿠페의 특징을 살린 콘셉트 모델을 제작했고, 올해 5월 이탈리아 레이크코모에서 열린 ‘현대 리유니온’ 행사에서 이를 공개했다.
현장에는 포니의 디자인을 담당했던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와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이 참석해 정체성과 자부심을 전하기도 했다. 정 회장은 “정 창업주와 정세영 회장(포니정으로 불린 현대차 사장), 아버지 정몽구 명예회장의 노력이 있어 오늘날 우리가 있다”며 “우리가 노력해 결실을 얻었다는 좋은 기억을 바탕으로 계속 새롭게 나가려 한다”고 말했다.
복원 이후에도 포니는 서울에서 계속 빛을 발하고 있다. 이달 초까지 강남에 있는 ‘현대모터스튜디오 서울’에서 열리는 ‘포니의 시간’ 행사가 펼쳐졌다. 6월부터 8월까지 예정됐던 전시는 기대 이상의 흥행으로 2개월 연장된 바 있다.
현대차의 다른 차량에도 정 창업주의 유산이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아이오닉 5가 대표적이다. 패스트백 스타일의 차체 형태, 간결한 선과 면 구성, 긴 직사각형 틀 안에 배치한 앞뒤 램프 등 아이오닉 5는 현대차의 디자인 유산을 재조명한 것으로 평가된다.
문화예술·체육계에서는 고 구본무 LG그룹 선대회장이 남긴 유산들이 최근 주목을 받고 있다. 프로야구 LG트윈스가 29년 만에 정규리그 1위를 확정짓자 초대 구단주인 그가 남겼던 특별한 ‘야구 유산’이 팬들로부터 다시 소환된 것이다.
구 선대회장은 지난 1994년 LG트윈스가 한국시리즈 두번째 우승을 하자 그는 다음 우승을 기약하면서 야구단에 두 가지를 선물했다. 일본 오키나와산 ‘아와모리 소주’와 명품 브랜드 롤렉스 시계가 그 주인공이다.
35도짜리 이 술은 한국시리즈 세번째 우승을 한 후 선수단과 같이 마시기 위해서 준비가 됐지만, 현재까지 개봉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또한 구 선대회장이 MVP에게 주기 위해 해외 출장 중 구입한 롤렉스 시계도 화제다. ‘데이토나 레오파드’라는 모델로 당시 8000만원을 주고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이 시계는 단종된 가운데 현재 중고 시세만 1억6000만원 수준에 달한다.
구 선대회장은 선수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도 남달랐다. 매 시즌 전 선수단과 구단 프론트를 자신의 외가인 경남 진주 단목리에 불러 식사를 대접했다. 또 선수들을 만날 때마다 1·2군 가릴 것 없이 선수 이름을 불렀고 집안대소사까지 물어보며 챙겼던 것으로 전해진다.
야구광으로 알려진 구광모 LG그룹 회장도 다음달 초중순께 열리는 한국시리즈에서 직접 응원전을 펼칠 것으로 전해진다. 구 회장은 임직원 시절에 LG트윈스를 응원하기 위해 동료들과 야구장을 종종 찾는 등 야구 사랑이 각별하다는 전언이다.
잠실 야구장을 찾는 구 회장이 LG트윈스의 상징인 ‘유광점퍼’(광택이 나는 검은색 점퍼)를 입을지도 야구계의 주요 관심사다.
앞선 회장들의 유지는 각 그룹의 다양한 사회공헌을 통해서도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이건희(KH) 유산’으로 불리는 문화재와 미술품 2만3000여점이 국가기관 등에 기증된 것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이 선대회장의 남긴 유산의 약 60%에 달하는 문화재를 기부한 것으로,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사상 최대 규모의 사회 환원이었다.
SK그룹에서는 최태원 회장이 선대회장의 인재육성 유지를 잇기 위해 지난 2019년 ‘최종현학술원’을 창립했다. 당시 SK㈜ 주식 20만주(520억원)를 직접 출연하고, 스스로 학술원 이사장을 맡았다.
최종현학술원은 도쿄포럼, 트랜스퍼시픽다이얼로그, 전문가 특별강연 등 수준 높은 프로그램을 통해 세계적인 학술 및 경제 포럼으로 자리잡았다.
최 선대회장이 ‘10년을 내다보며 나무를 심고, 100년을 내다보며 인재를 키운다’는 신념으로 지난 1974년 설립한 한국고등교육재단 역시 현재 최 회장이 유지를 이어가고 있다. 재단은 한국의 우수한 학생들이 해외 최고 수준 교육기관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당시 대학 등록금은 물론 5년간 생활비까지 지원하면서도 의무 조항은 일절 없어 유학생들의 심리적 부담을 덜어줬다는 평가다. 그동안 4000명의 장학생을 지원했고, 세계 유수 대학의 박사 860명을 배출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달 21일(현지시간) 미국에서 펼치고 있는 사회공헌활동인 ‘현대 호프 온 휠스(Hyundai Hope On Wheels‧HHOF)’ 설립 25주년을 기념해 2500만 달러를 추가 기부했다. 이로써 누적 기부금 규모는 2억2500만 달러(약 3010억원)로 늘었다.
정의선 회장은 이날 미국 워싱턴DC 로널드 레이건빌딩에서 열린 HHOF 25주년 행사에서 “고 정주영 창업주 때부터 이어져 온 ‘사람 중심의 혁신’이란 철학과 이를 기반으로 한 인류애 정신이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LG그룹의 구 선대회장은 국가와 사회를 위해 희생한 평범한 사람들에게 보답하고 함께 기억하자는 뜻으로 ‘LG 의인상’을 만들어 남다른 사회공헌 철학을 실천하기도 했다. 2015년 LG복지재단을 통해 제정된 ‘LG의인상’은 구광모 회장 이후 수상 범위를 인명구조, 사고·범죄 대응 인원에서 장기선행 시민으로 늘렸다. 묵묵히 이웃에게 봉사한 시민도 의인으로 인정되면 사회공헌 저변이 더 넓어졌다는 평가다. 현재까지 LG 의인상 수상자는 214명에 달한다.
raw@heraldcorp.com
bigroot@heraldcorp.com
zzz@heraldcorp.com
jakmeen@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안연홍, 중견 사업가와 재혼…결혼식은 비공개
- 박수홍, 김용호 사망으로 형수 고소…‘허위사실 유포’ 바로 잡는다
- 유럽파 다 불러와 겨우 베트남과?…클린스만호, 소 잡는 칼로 닭 잡나
- '동치미' 서정희 "故서세원 내연녀, 내가 교회 전도한 지인"
- 24세女 ‘미스 유니버스’ 참가에…“부끄럽다” “누구 마음대로” 파키스탄 발칵
- 하루에 9.6억씩 버는 사람 누구?…노쇼로 동심 울렸던 호날두였다
- “애플 9년만 ‘야심작’, 470만원 매겼다가” 아우성에 보급품 나온다?
- “4호차 타면 앉을 수 있지?” 지하철 빈자리 쪽집게 예언…신기하네
- 송중기, 케이티와 여동생 결혼식 참석…"훈훈한 비주얼 여전하네"
- “집에도 모르던 마약 있다” 아무도 몰랐던 사실…이러다 큰일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