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교통사고에 포도 농장이"…딸의 호소에 '기적'이 일어났다

이수민 기자 조현우 인턴기자 2023. 10. 14.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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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시기 놓칠라 광주 내려온 딸…커뮤니티 글에 수백명 찾아
구매자 직접 수확하기도 "온정 넘치는 대한민국" 훈훈
12일 광주 광산구의 한 포도 농장에서 만난 류수정씨. 2023.10.14/뉴스1 ⓒ News1 이수민 기자

(광주=뉴스1) 이수민 기자 조현우 인턴기자 = 교통사고를 당한 부모님을 대신해 포도 농장을 맡게 된 20대 딸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전국에서 이를 돕기 위한 따뜻한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14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안녕하세요 샤인머스켓 하시는 부모님 딸입니다'는 글이 게시됐다.

해당 글은 '2주 전 부모님께서 갑작스레 교통사고를 당하신 뒤 자신과 동생, 삼촌, 고모 등이 함께 열심히 농장에서 일하고 있다'며 '샤인머스켓을 원가보다 저렴하게 판매하니 도와달라'는 내용이다.

글쓴이인 20대 딸은 입원 중인 부모님이 정성들여 재배한 샤인머스켓의 수확시기를 놓치는 것을 우려해서 글을 올리게 됐다고 적었다. 자신 역시도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휴학을 결정하고 광주행을 택하게 됐다.

딸의 감동적인 사연을 접한 시민들은 '직장과 가까우니 꼭 들리겠다', '어린 친구가 너무 기특하다', '광주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방문해야 한다' 등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거리가 멀어서 직접 가기 어려운 시민들은 '공동 구매를 하자', '택배 판매를 하면 어떠냐'고 머리를 맞대기도 했다.

작성자는 글이 게시된 지 만 하루가 지났을 무렵부터 여러 차례 글을 다시 올려 "이미 많은 손님들이 농장에 다녀갔다"며 감사함을 표하기도 했다.

실제로 지난 12일 오후 <뉴스1> 취재진이 농장에 방문했을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서 장사진을 이뤘다.

광주 도심인 상무지구에서 약 20㎞, 차로 40분을 달려 도착한 광산구의 작은 마을은 이미 주차공간이 부족할 정도였다.

인근 마을에서 60㎏ 공동구매를 해 트럭에 실어가는가 하면, 충남부터 대전까지 광주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의 발걸음도 끊이질 않았다.

12일 류수정씨의 포도 농장에서 만난 한 시민이 직접 샤인머스켓을 수확하고 있다. 2023.10.14/뉴스1 ⓒ News1 이수민 기자

포장 박스의 수량이 부족하다는 정보를 미리 듣고 박스를 들고 온 손님도 있었다. 이에 포도 한송이를 덤으로 주는 훈훈한 광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하우스 앞에서 만난 글의 주인공 류수정씨(23·여)는 빗발치는 문의전화와 계산, 샤인머스켓 포장 등 바빴지만 힘든 기색 없이 밝은 표정이었다.

그는 "아침 일찍부터 농장에 수백명의 시민들이 다녀가 미리 포장해 놓은 박스는 이미 팔린지 오래"라며 "지금 오시는 손님들은 직접 포도를 따셔야 하는데 죄송스럽다"고 인사했다.

그러나 '직접 수확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왔던 손님들은 오히려 즐거워 했다. 가위와 집게를 받고 당황하는 듯 하더니 이내 표정이 밝아져 "농장 체험 해보는 셈 치죠" 말하며 그 누구도 불쾌해하지 않았다.

정장 재킷을 농장 한쪽에 벗어두고 와이셔츠를 걷은 뒤 땀을 흘리며 수확을 하는가 하면, 가족끼리 체험 셀카도 찍고 예뻐보이는 포도를 직접 바구니에 담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따온 포도를 저울 위에 올린 뒤 계산을 할 때 손님들은 한번 더 놀랐다. 바깥에서 샤인머스켓 시세가 2㎏에 2만원인데, 류씨네는 2㎏에 만원으로 반값에 판매했기 때문이다.

인근에 출장을 왔다가 들른 조진철씨는(58)는 "스스로 수확해야 해서 힘들기도 하고, 직접 집까지 가져가야 하는 불편도 있지만 맛 좋고 신선한 과일을 한아름 안고 가니 발걸음이 가벼울 듯하다"고 말했다.

광주역 근처에서 1시간을 달려 온 정두호씨(60)는 "광주는 원래 누군가가 어려우면 발 벗고 나서서 함께 어려움을 나누는 지역"이라며 "마침 광주에서 일이 났기에 당연히 내 가족의 일이라고 생각돼 도와주러 왔다. 내 가족 몫과 이웃 몫까지 사서 간다. 얼른 완판해서 일상으로 돌아가길 바란다"고 전했다.

류수정씨는 "글을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멀리서 오신 분들이 많아 기억에 남는다"며 "따뜻한 말로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위로를 받고 용기를 더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작고 평범한 우리 가족의 사연에도 관심가져 주시는 세상을 보며 따뜻함을 느꼈다"며 "포도는 다 팔려서 아마 곧 마무리할 테지만 지금의 감사한 기억을 안고 평생 다른 사람들에게 저도 봉사하면서 살겠다"고 덧붙였다.

breat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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