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와인] ‘캐시 카우를 넘어 마스터피스로’ 지디 바이라 바르베라 달바 수페리오레
‘캐시 카우(cash cow)’는 잘 키워놓기만 하면 평생 우유를 생산하는 젖소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경제용어다. 별 다른 위험성이 없는 데도 꾸준한 이익을 가져다 주는 효자 상품을 말한다.
쉽게 말해 돈줄 혹은 현금 창출원이다. 현대 경영학에서 캐시 카우는 이보다 다소 넓은 관점에서 투자 자본을 거의 들이지 않고도 다른 분야에 투자할 만한 현금을 창출해 주는 품목이나 사업 분야를 지칭한다.
기업이 캐시 카우를 보유하게 되면 안정적인 수익이 발생해 신규사업 진출에 수월하다. 확실한 캐시 카우를 가진 기업 주가는 고정 배당이나 낮은 위험성으로 항상 고평가 되기 마련이다.
마냥 좋아보이는 캐시 카우지만, 한계도 분명하다. 1968년 이 개념을 처음 제시한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고유한 전략평가 기법 BCG 매트릭스에서 캐시 카우보다 좋은 사업 모델로 스타(star) 사업을 꼽았다. 스타 사업은 성장률과 시장 점유율이 높아 계속 투자를 해야만 하는 유망 사업이다.
반면 BCG는 캐시 카우가 ‘기업 입장에서 안정적으로 돈은 벌어다 주는 효자 상품이지만, 앞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낮은 사업’이라고 꼬집었다. ‘현금 흐름은 양호하지만, 성장하기 어려운 사업이기 때문에 한계가 분명하다’는 평가다. 그러니 성장을 도모하려면 캐시 카우가 벌어온 돈을 밑천 삼아 스타 사업을 과감히 키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와인 업계에도 캐쉬 카우가 존재한다.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 지방은 와인 종주국을 자처하는 프랑스 바깥에서 가장 비싼 와인이 나오는 지역 가운데 한 곳이다. 이 지역을 대표하는 와인 바롤로(barolo)는 19세기 이후 소위 ‘와인의 왕, 왕의 와인’이라 불리며 독보적인 입지를 굳혔다.
이 와인은 바롤로라는 마을에서 네비올로라는 이 지역 토착 포도 품종만 이용해 만든다. 네비올로는 재배하기 까다롭다. 산도가 높을 뿐 아니라, 유난히 떫다. 충분히 익으면 왕의 와인다운 풍미를 보인다. 장미향을 중심으로 자두 같은 과실향이 풍성하게 올라온다. 네비올로 품종으로 공들여 양조한 바롤로 와인은 시간이 지나면 특유의 송로버섯 향까지 느껴진다고 평론가들은 말한다.
그러나 이 모습을 쉽게 보여주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바롤로 이름을 달기 위해선 의무적으로 최소 38개월을 묵힌 후 시장에 내놔야 한다. 아무리 짧아도 3년 정도는 있어야 제 맛을 낸다는 의미다. 자존심 강한 유명 생산자들은 의무 기한보다 훨씬 오래 저장고에 보관하는 일이 예사다. 오래 둘 수록 복합적인 풍미가 깃들기 때문이다. 이들이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든 공들여 만든 네비올로 품종 와인은 느리게 병 속에서 익어 가며 반세기도 거뜬히 견딜 수 있다.
이 때문에 네비올로로 좋은 와인을 만드는 생산자들은 보통 5년에서 길게는 십수년까지 와인이 든 나무통을 끌어 안고 버틴다. 완전히 제 모습이 아닌 와인을 내놓을 수는 없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사고도 생긴다. 2016년에는 이 지역에 와인 전문 도둑이 들어 20만달러(약 2억8000만원) 상당 와인을 훔쳐갔다. 자금이 절실한 일부 생산자들은 도산하거나 와이너리를 외부 자본에 넘기기도 한다.
바르베라는 이 지역에서 자라는 또 다른 토착 포도 품종이다. 이 품종은 이렇게 현금 흐름이 막힌 생산자들에게 단비 같은 존재다. 바르베라는 손이 많이 가는 네비올로와 달리 빨리 익고, 단위 면적 당 수확량도 많다. 양조한 다음 바로 마시기에도 좋고, 2~3년 정도 적당히 익혀 마시면 또 다른 특성이 나타난다. 산도가 높아 여러 음식과도 두루 어울린다.
대신 숙성 잠재력은 네비올로보다 훨씬 떨어진다. 바르베라로 만든 와인은 일반적으로 신선한 과일향을 내세운다. 시간이 지나면 묽어지거나 개성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복잡하고 다채롭기 보다 직관적이고 편하게 마시기 좋은 와인으로 널리 알려졌다.
피에몬테 지방 와인 양조가들은 바르베라 와인을 캐시 카우로 삼았다. 바르베라 혹은 이보다 여린 또 다른 포도품종 돌체토로 와인을 만들어 빠르게 현금을 융통한 다음, 이 자본을 가지고 고급 바롤로 와인을 만들어 인정을 받는 식이다. 가장 좋은 밭에는 스타 산업에 해당하는 네비올로를 심었다. 바르베라는 햇볕이 덜 드는 북쪽 밭이나 물 빠짐이 열악한 낮은 평지에 심어지기 일쑤였다.
그러나 일부 이 지역 선구자들은 바르베라가 그저 캐시 카우에 머물기를 거부했다. 이들은 발전 가능성이 떨어지는 이인자 취급을 받던 바르베라가 가진 성장 가능성을 알아봤다. 이들은 공 들여 만든 바르베라 와인을 네비올로처럼 오래 익혀 마실 수 있다고 믿었다. 이를 위해 햇빛을 듬뿍 받기 좋은 남향 포도밭에서 수확량을 줄여 키운 바르베라 품종 포도 알맹이를 손으로 따 선별했다. 이후 2년에서 길게는 3년 동안 나무통에서 숙성해 내놓는 방식으로 이 포도가 가진 한계를 넘어섰다.
지디 바이라 와이너리는 그 가운데 한 곳이다. 지디 바이라는 1972년 설립 이후 50년 이상 가족경영 체제로 내실을 다진 소규모 와이너리다.
지디 바이라 바르베라 달바 수페리오레는 이 와이너리가 보유한 가장 오랜 밭에서 키운 포도로 만든다. 2016년산 지디 바이라 바르베라 달바 수페리오레는 일반 프랑스산 참나무통보다 커다란 슬로베니아산 참나무통에서 28개월간 숙성했다. 더 큰 나무통을 사용하면 바닐라나 연기처럼 나무에서 베어 나오는 향이 고유한 와인 풍미를 과하게 가리는 현상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 와인은 2023 대한민국 주류대상 구대륙 레드와인 6만~10만원 미만 부분 대상을 받았다. 세계적인 이탈리아 와인 전문 평론가 안토니오 갈로니 역시 매년 이 와인이 새로 나올 때마다 92점 이상을 부여하고 있다. 수입사는 신세계L&B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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