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들고 도박에 빠진 '26살 청년백수'…세계 1위 기업 키웠다 [김익환의 컴퍼니워치]
경남 의령군 출신…日 와세다대 중퇴
26세 삼남매 아버지…도박에 빠져 방황
1937년 중·일 전쟁에…첫 사업 실패
대구에서 삼성상회로 재기…삼성의 모태 삼성>
"처음 본 그는 너무 야위고 키도 작았습니다."
1926년. 당시 19세인 박두을 여사는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과 결혼했다. 사육신 박팽년의 후손인 박 여사는 연하남인 17세 이 회장에 대한 첫인상이 썩 좋지 않았다. 경남 의령 '천석지기 가문' 출신인 이 회장을 향한 기대가 컸던 탓이다. 박 여사의 평가는 박씨 문중에서 구전으로 전해진다. 박 여사는 평생 이병철 회장을 내조했다. 이 회장이 삼성을 일구는 데도 상당한 역할을 했다.
박 여사와 가정을 꾸린 이 회장은 삼남매의 아버지였던 26세까지 방황의 시절을 겪는다. 몸이 아파 일본 와세다 대학을 중퇴했고 한 때 도박에 빠지기도 했다. 고향인 경남 의령군에서 절치부심한 이 회장은 부친에게서 받은 의령 쌀 300석으로 창업했다. 하지만 그는 이후에 숱한 실패와 시련을 겪었다. 어떻게 고난을 극복하고 삼성을 육성했을까.
지난 5일 찾은 의령군의 호암 이병철 창업회장 생가. 생가 오른쪽 옆 기와집은 이 회장이 17세 때 박두을 여사와 결혼해 분가한 본가가 자리 잡고 있다. 1931년 당시 19세였던 이 회장은 일본 와세다대로 유학을 떠난다. 하지만 유학 중 병을 얻어 2년 만에 중퇴하고 의령군 고향으로 내려온다.
그때부터 방황의 시절이 시작됐다. 복귀한 직후 2년 동안 서울에 머물며 사업 기회를 찾지만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다시 의령으로 복귀한 뒤 동네 친구들과 골패를 비롯한 도박에 빠져 지냈다.
1936년 어느 날 밤. 집으로 돌아온 이 회장은 안방을 둘러봤다. 박두을 여사와 세 남매가 잠자리에 든 모습에 깊은 상념에 빠졌다. 당시 잠자리에 든 세 남매는 장녀인 고(故)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 장남인 고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 차남 고 이창희 전 새한미디어 회장이었다.
잠든 세 남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가장의 책임을 느꼈다고 한다. 며칠 후 부친에게 사업 청사진을 밝히며 사업 밑천을 부탁한다. 부친에게서 받은 의령군 쌀 300석으로 경남 마산에 정미소를 세운다. 정미소에 벌어들인 현금으로 트럭 20대를 사들여 운송업에도 뛰어든다.
정미업·운송업으로 큰 돈을 벌어들인 이병철 회장은 승승장구하지 못했다. 이때부터 사업이 조금씩 꼬여갔다. 평생 적잖은 실패를 겪기도 했다. 사업을 둘러싼 불확실성과 지정학적 변수가 타격으로 작용한 결과다. 6·25 전쟁과 4·19 혁명, 5·16 군사쿠데타 등이 그렇다.
이 회장은 정미업으로 번 현금으로 부동산 사업에 뛰어든다. 경남 김해의 논·밭을 사들이기 위해 옛 조선식산은행에서 상당한 차입금을 조달했다. 661만㎡(200만평) 규모의 부지를 사들였다. 기세를 몰아 부산, 대구에 땅도 사들이기로 했다.
하지만 1937년 중·일전쟁이 터지면서 사업에 그림자가 드리운다. 중국의 만주국을 수립하고 화북지역을 장악한 일본이 그해 7월 중국을 침공한 것이다. '태평양전쟁'의 서막이었다. 전쟁이 터지자 땅값은 폭락했다. 여기에 일본은 비상조치를 선언하고 당시 조선의 모든 은행의 대출을 막았다. 차입금으로 땅을 사들인 이병철 회장은 도래하는 대출금을 막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사들인 땅을 전부 헐값에 매각하고 큰 손실을 봤다. 그의 나이 27세에 겪은 첫 사업 실패다.
이병철 회장은 호암자전에서 "이 실패는 그 후의 사업경영에 다시없는 교훈이 됐다"며 "사업을 운영할 때는 국내외 정세 변동을 정확하게 통찰하고, 무모한 과욕을 버리고 자기 능력과 그 한계를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적었다.
이 회장은 사업을 모두 청산하고 서울 대구 평양 등 전국을 돌아다닌다. 이 과정에서 무역업을 새로운 사업 아이템으로 점찍는다. 과일과 건어물을 만주와 중국으로 수출하기로 결심했다. 1938년 주변 지역의 과일을 수집하기 좋은 대구 수성구에 200평 남짓한 점포를 마련했다. 삼성그룹의 모태인 '삼성상회'의 시작이었다. 삼성상회는 매출이 급증하면서 이익을 냈고, 조선양조를 인수하며 사세를 불렸다. 삼성상회로 재기한 이 회장은 곧 위기를 맞는다.
→2화에서 계속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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