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이슬람 대통령’이 생긴다면?…80만부 팔린 역대급 문제작 [나쁜 책]
2015년 1월 7일, 프랑스 한 언론사에 테러리스트가 난입해 총을 난사했습니다. 프랑스 주간신문 샤를리 에브도 총격 테러 사건입니다. 21세기 현대 세계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참극 중 하나였습니다.
무장괴한은 “이슬람을 모독했다”며 언론인 12명을 사살했습니다. 대낮 테러에 프랑스는 ‘쇼크’를 받았고, 반(反)이슬람 여론이 가마솥처럼 들끓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테러에서, 우리가 잘 기억하지 못하는 한 가지 팩트가 있습니다. 테러 발생일은 ‘이슬람 모독 소설’이라고 평가받는 ‘복종’ 출간일이었고, 이날 발행된 샤를리 에브도의 1·2면 주인공이 바로 이 소설을 집필한 작가 미셸 우엘벡이었습니다.
이슬람 초강경 극단주의자의 테러의 시작점에 놓인 정치소설 ‘복종’은 어떤 작품이었을까요.
어느 날, 프랑수아는 20대 애인 미리암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듣습니다. 미리암은 유대인이었는데, 그녀의 부모가 이스라엘로 이민을 가려 프랑스의 전 재산을 처분중이란 고백이었습니다.
사실 프랑수아가 보기에도, 이 세상에선 곧 뭔가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파리는 현기증이 날 정도로 이미 이슬람화(化)를 경험 중이었습니다. 박하차와 사과향 물담배를 파는 이슬람식 카페가 오픈했고, 니캅(눈만 빼고 전부 가린 전통 복장)을 두른 여학생 그룹이 프랑수아의 강의실에 앉아 있었습니다.
아랍의 자본도 프랑스 대학사회에 홍수처럼 범람했습니다. 영국 옥스포드대와 프랑스 소르본대의 ‘두바이 캠퍼스’ 설립도 논의됩니다. 오일머니는 프랑스 대학들을 통째로 집어삼킬 듯한 기세였습니다.
프랑스는 대선 1차 투표에서 과반(50%)을 얻지 못하면 득표율 1, 2위가 결선투표를 치러 대통령을 선출합니다. 극우와 전통 우파가 둘로 쪼개진 상황에서, 만에 하나라도 대선 1차 투표 결과 이슬람박애당이 사회당을 누르면, 프랑스의 미래는 극우이거나 이슬람이었습니다.
프랑스의 무슬림 지도자 모하메드 벤 아베스는 중도적 행보를 보입니다. 청년운동, 문화센터, 자선단체로 영역을 확장하면서 프랑스 빈곤 해결을 정책 삼아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치러진 1차 투표 최종 결과는 이랬습니다.
‘극우파 국민전선 34.1%, 이슬람박애당 22.3%, 좌파 사회당 21.9%, 전통 우파 12.1%.’ 우려가 현실이 됐습니다. 프랑스 거리에선 비명이 들립니다. 극우파 국민전선과 이슬람박애당의 양자 대결만이 남았습니다.
사실 단일화의 난제가 없지 않았습니다. 최대 갈등은 교육이었습니다. ① 이슬람 교육(정교일치)과 공화국 교육(정교분리) 사이의 선택 ② 남녀공학 존속과 폐지 ③ 할랄 음식(무슬림 음식) 도입 등이었습니다.
해결책은 두 시스템을 모두 허용하는 방식이었지요. 대권이 좌절된 좌파 사회당 입장에선 당 존립을 위해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반면, 이슬람박애당 계산은 달랐습니다.
이슬람 신설 학교엔 거액 보조금을 뿌리면서, 프랑스 전통 공립학교 보조금을 감축하면, 결국 프랑스 부모들이 “차라리 우리 아이를 이슬람 학교에 보내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리란 속내였습니다.
소설에 나오는 대선 레이스가 매우 흥미로워서, 스포일러를 우려해 더 자세히 옮겨 적진 않겠습니다. 다만 ‘결과’는 이야기해야겠지요. (예상하셨겠지만) 이슬람박애당이 좌파와 중도 세력을 전부 결집해 연대하면서, 극우정당 국민전선을 압도적인 표차로 눌러버리고 프랑스 역사상 초유의 완승을 거둡니다.
여성 노동 제한에 따른 실업률 감소, 아랍 석유강국의 지원에 따라 프랑스 사회보장예산 85% 감액 등 프랑스의 고용과 재정이 점차 안정됩니다.
시민들은 ‘오일머니의 마법’에 도취되고, 이슬람교가 “무해하다”고 느끼기 시작합니다. 단, 조건은(혹은 대가는) 이슬람교로의 개종(改宗)이었습니다.
소설 주인공 프랑수아가 근무중인 대학에도 변화가 시작됐습니다. 일단 파리3대학 정문 간판 옆에 이슬람 상징인 ‘별과 초승달’이 붙여집니다. 학교당국은 교수들에게 무슬림 개종시 연봉의 3배 증액, 방 3개 짜리 아파트 지급을 약속합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혜택’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총장 르디에는 한술 더 뜹니다. 그는 아예 앳된 10대 소녀와 함께 삽니다. 총장은 프랑수아를 초대한 자리에서 말합니다. “아이샤라고, 새로 들인 제 처입니다. 이제 막 열다섯 살이 되었죠.”(295쪽) 총장의 원래 부인은 집안일을 담당하고, 15세인 두 번째 부인은 침대 위에서 남편과의 ‘다른 일’을 담당했습니다.
여성 지위가 수직 낙하했습니다. 여성 의류점은 문을 닫고 원피스와 미니스커트가 사라졌습니다. 아랍 청년들이 무슬림이 아닌 교수진을 폭행해도 경찰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외면합니다. 프랑스 언론들까지 단체로 ‘실어증’에 걸렸습니다.
결국 프랑수아도 선택의 순간에 직면합니다. 무슬림이 되기만 하면, 학자로서의 안락한 성공, 평생 누리지 못했을 막대한 부(富), 그리고 여러 명의 아내가 법적으로 허락되니까요. 과연 프랑수아는 무슬림으로 개종할까요.
우엘벡은 2000년대 초반부터 이슬람교의 부조리적인 측면을 공개 비판해 왔습니다. 2001년 한 언론과의 소설 출간 인터뷰에서 “이슬람은 가장 멍청한 종교”라며 경멸감을 숨기지 못하고 위험한 발언을 했다가 법적소송 끝에 무죄 판결을 받기도 했었지요.
악명 높던 작가가 이슬람 정권이 들어선 미래 프랑스를 우울하게 또 위험하게 묘사했으니, 이는 그야말로 불편했던 감정에 휘발유를 부어버린 격이었지요. 그 결과, 무슬림 초강경 극단주의자들이 결코 해서는 안 되는 테러를 감행했습니다.
테러 당일인 2015년 1월 7일자 신문엔 파란색 고깔모자를 쓰고 담배를 손에 든 우엘벡의 대형 캐리커쳐가 그려져 있습니다. 샤를리 에브도는 작가 미셸 우엘벡을 풍자하면서 그의 소설 ‘복종’에 실린 내용을 통해 이슬람까지 우회 비판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샤를리 에브도 1177호 13면에는 소설 ‘복종’의 리뷰기사도 실려 있었습니다. 우엘벡의 지인이자 파리8대학 교수, 칼럼니스트였던 베르나르 마리스의 글이었지요. 1177호가 발행된 그날, 샤를리 에브도 회의실에 있던 베르나르 마리스도 총격으로 즉사합니다. 한국에도 책이 다수 번역 출간됐을 만큼 베르나르 마리스는 세계적 학자였습니다.
약 370페이지로 구성된 ‘복종’ 한국어판에서, (저의 개인적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단어 ‘복종’이라는 단어는 정확히 딱 한 번 등장합니다. 40대 대학 조교수인 프랑수아가 자신의 제자이자 20대 애인인 여학생 미리암과 성교를 나누는 장면(125쪽)입니다.
사실 ‘복종’은 어지간한 포르노그라피나 야설은 대적할 수 없을 정도로 외설적입니다. 19금이 아니라 24금도 부족한 수위입니다. 이 때문에 해당 대목 인용은 곤란합니다. 다만 저 장면에서 프랑수아는 애인 미리암에게 자신의 ‘성기’를 내맡기며, 심적으로 “나는 (미리암에게) 복종했다”고 생각합니다.
① 남성적 성욕에서 기인하는 젊은 여체에의 복종(성애의 위계) ② 지식인으로서 갖는 학계 시스템에의 복종(지성의 위계) ③ 무신론자였던 자신에게 주어지는 유일신에의 복종(종교적 위계)입니다. 냉소적이고 당당했던 무신론자 지식인인 프랑수아도 성(性)과 학문과 종교 앞에서는 ‘복종’을 고민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때 우엘벡이 주인공 프랑수아를 통해 설정한 복종은 ‘굴종이나 항복’이 아닙니다. 인간은 무언가에 복종하고 자신을 온전히 내맡길 때 오히려 평온해집니다. 광신도들이 대개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처럼요. 그렇다고 저 평온한 얼굴이 과연 참된 자아도 아닐 겁니다. 그건 거짓된 ‘나’에 가깝겠지요.
결국 소설 ‘복종’은 무언가에 복종함으로써 안주할 것인가, 혹은 저항함으로써 본래의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것인가라는 심오한 물음을 던집니다. 프랑수아는 복종할까요, 저항할까요.
이 견해에 따르면, 인류 문명사에서 가장 찬란한 문화를 꽃 피웠던 프랑스는, 무슬림을 수용함으로써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소설 ‘복종’은 이를 프랑스 사회 전체의 ‘자살’로 언급합니다.
지금 이 순간, 유럽 전체가 고민하고 있는, 바로 그 주제입니다. 한국 역시 무관하지 않은 주제이지요.
무슬림 난민 사태를 ‘국가 정체성의 훼손’을 이유로 외면해야 마땅할까요. 그러나 유럽권 반(反)난민 정서에 따른다면 난민 수용은 사회적 문제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선택 가능할 문제일까요.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훌륭한 시민정신과 관용으로 무사히 해결됐지만 여론이 둘로 쩍 갈라졌던, 우리나라의 2021년 아프가니스탄 난민 사태를 떠올려보면 미래 한국사회와 소설 ‘복종’ 속 프랑스 가상세계는 서로 무관하다고만 볼 수 없을 겁니다. ‘복종’은 바로 양자택일할 수 없는 문제, 그 첨예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집니다.
미셸 우엘벡 ‘복종’은 그만큼 현재적인 작품입니다.
하지만 서점가 세계문학 책장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현실에 가까운 소설, 아니 현실보다 더 현실같은 소설이 적지 않습니다. 미셸 우엘벡의 ‘복종’처럼 말이지요. 이들 작가들이 쓴 책의 문장 한 줄에서, 우리가 살아갈 미래의 초상이 발견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다음주에는 세계적인 SF 거장 켄 리우 작가의 단편소설 <역사에 종지부를 찍는 사람들>을 다룹니다. 일본제국 731부대를 다룬 소설로, 이 책의 일본 출간 당시 삭제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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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에게 펼쳐진 책과 같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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