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수산물과 육류 소비의 쌍곡선 [같은 일본, 다른 일본]
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토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 일본은 ‘수산물 천국’
일본에서 가을 식탁의 정수는 꽁치구이다. 가을철에 한껏 기름이 오른 꽁치에 날렵한 칼집을 내고 자글자글 굽는다. 간단한 요리지만 간 생강을 곁들여 간장에 살짝 찍어 먹으면, 고소함과 풍미가 폭발한다. 한국에서는 꽁치가 비린내 심한 생선이라는 생각이 많았지만, 일본에서 가을 꽁치를 맛보고 난 뒤에는 생각이 바뀌었다. 사실 일본에서 진가를 알게 된 생선은 꽁치뿐 아니다. 일본에서는 사시사철 싱싱한 수산물을 손쉽게 구할 수 있고, 회(사시미)나 초밥(스시)을 시작으로, 다양한 수산물을 활용한 요리가 풍부하다. 어지간히 신선하지 않으면 생으로 먹을 수 없는 등푸른생선의 횟감이나, 한국에서는 본 적도 없는 희귀한 어종을 동네 마트에서 어렵지 않게 구한다. 심지어 편의점이나 기차역에서 파는 생선초밥도 나무랄 데 없이 깔끔한 맛이다. 그야말로 일본은 ‘수산물 천국’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곳이다.
한국도 비교적 수산물이 풍부하고, 한식에도 맛깔난 수산물 요리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이기는 하지만, 한식 수산물 요리에는 정을 붙이지 못했다. 한식은 수산물을 그대로 먹기보다는, 소금에 절이거나 삭히고 건조시키는 등 보존 가공을 거치는 경우가 많다. 다른 식재료와 어우러지는 앙상블을 추구하는 조리법이 많다. 그러다 보니 강한 양념을 좋아하지 않고 비린내에 예민한 내게 한식 수산물 요리는 접근이 어려운 편이다. 바닷가에 가지 않는 한 횟집도 즐겨 찾지 않았는데, 생굴이나 전복회를 먹고 심한 배앓이를 몇 차례 한 뒤 더욱 소원해졌다. “회는 무슨 맛으로 먹나” 하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일본에서 이 편견이 깨졌다. 싱싱한 수산물에서는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잘 손질한 생선이나 어패류는 별다른 조리를 하지 않아도 맛과 질감이 훌륭하다는 것도 느꼈다. 마트에서 횟감을 사서 직접 떠 보고, 제법 근사한 초밥도 만들어 보았다. 계절마다 제철 생선을 꼭꼭 챙겨서 먹다 보니, 수산물이 ‘최애’ 식재료가 되고 말았다. 일본에서 수산물은 ‘바다의 행복(海の幸, うみのさち)’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바다가 주는 행복을 만끽하는 것이,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나라이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일 것이다.
◇ 수산물 중심의 일식 문화, 육류 중심의 한식 문화
그에 비해, 일본의 육류 요리는 다양한 편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7세기부터 육식 금지령이 존재했다. 육식을 기피하는 불교의 영향이었다는데, 19세기 말에 금지령이 폐지될 때까지 천여 년 동안 공식적으로는 고기를 먹을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유일한 단백질원인 수산물의 가공, 유통 기술이 잘 발전했다는 시각도 있다. 물론 육식의 역사가 짧다고 해서 고기 맛을 모른다고 할 수는 없다. 스키야키(얇게 썬 고기의 철판구이)나 샤부샤부(얇게 썬 고기를 육수에 살짝 데쳐 먹는 전골풍 요리) 등 정통 일식의 고기 요리도 나름 매력이 있다. ‘와규(和牛)’는 20세기 이후 일본에서 개량된 육우 품종이지만, 풍부한 마블링과 부드러운 육질로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다.
하지만 지금 일본에서 사랑받는 고기 요리 대부분이 외국에서 유래한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일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요리 랭킹 톱 3에 늘 포함되는 ‘야키니쿠(焼肉)’는 한식의 불고기 혹은 생고기 구이가 근원이다. 100여 년 전 식민주의 시대에 한반도에서 이주한 재일 동포들에 의해 이식된 식단이다. 한국에서는 정통 일식인 양 소개되지만, 진하게 우린 고깃국물에 국수를 말고 제육 고명을 올려내는 ‘라멘(ラーメン)’도 중식 면요리를 일본풍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돼지고기에 튀김옷을 입혀 바삭하게 튀긴 ‘돈가스(とんかつ)’도 서양 요리 커틀릿(cutlet)을 일본식으로 변형한, 요즘 말로는 퓨전 요리다.
‘외래종’ 육식 메뉴도 이제는 어엿한 일식의 한 축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다만, 일본인의 육식 취향에 다양성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다양한 고기와 부위가 세심하게 손질되어 유통되는 한국과는 달리, 마트에서 구입할 수 있는 고기의 종류도 적은 편이다. 재료 본연의 담백한 맛을 강조하는 수산물 취향과는 달리, 육식 식단에서는 달고 진한 양념 맛을 중시하는 것도 그렇다. 진한 고기향과 졸깃하게 씹는 맛을 좋아하는 정통 육식 마니아 중에는 기름지고 부드럽기만 한 와규에 대한 평가가 박한 경우도 많다.
일본의 육류를 다루는 솜씨에도 고개를 갸우뚱할 때가 있다. 한국에서는 시장통에서 파는 육회도 탈이 나는 경우가 적은데, 일본에서는 전문점 간판을 달고 영업하는 고깃집에서 육회를 먹고 식중독에 걸리는 사고가 종종 있다. 개중에는 육회를 먹고 여러 명이 사망한, 심각한 사고도 있었다. 수산물을 날로 다루는 데에는 기술이 좋지만, 육류의 유통과 손질법에는 의외로 노하우가 부족한 때문이리라. 식재료를 손질하고 가공하는 기술은 오랫동안 축적된 식문화의 중요한 부분이다. 역시 일본의 식문화는 수산물 중심, 한국의 식문화는 육류 중심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 추세적으로 감소 중인 일본의 수산물 소비
그런데 ‘수산물 천국’ 일본에서 수산물 소비가 줄고 있다고 한다. 일본수산백서에 따르면, 수산물 연간 소비량은 2001년 최고점을 찍은 뒤 20년 넘게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현재 1인당 수산물 소비량은 1960년대 이후 가장 적은 수준으로, 최고점과 비교하면 60% 수준에 불과하다. 반면 육류 소비는 늘고 있다. 벌써 10여 년 전에 육류 소비량이 수산물 소비량을 넘었고, 2022년 조사에 따르면 1인당 육류 소비량이 수산물의 두 배에 육박한다. 1970년대 이후 수산물 소비가 꾸준히 증가한 한국과는 대조적이다. 사실 한국의 수산물 1인당 소비량은 일본을 가뿐히 넘어서서 세계 주요 국가 중 최고로 조사된다. 이 추세라면 언젠가 일본의 식문화는 육류 중심, 한국의 식문화는 수산물 중심으로 자리바꿈을 할지도 모르겠다.
일본에서 왜 수산물 소비가 위축될까? 이유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값싼 수입육 때문에 수산물 소비가 위축되었다는 분석도 있고, 젊은 사람들이 조리법이 번잡한 수산물 요리를 가정식으로 기피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영향이 없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수산물 소비가 감소하기 시작한 것은 원전 사고가 일어나기 훨씬 전인 만큼, 원전 사고가 유일한 원인은 아닐 것이다. 다만, 원전 사고 이후 도쿄와 수도권 인근에서 소비되는 수산물의 주요 생산지였던 후쿠시마현의 어업이 크게 위축되었다.
실제로 해양 오염에 대한 일본 소비자의 우려도 계속 커지고 있다. 원전 사고가 장기적으로 수산물 소비심리를 위축시키는 요인의 하나일 가능성은 충분하다. 나만 해도 일본에 살 때에 원전 사고 이후에는 수산물 소비를 줄였다. 막대한 피해를 입은 후쿠시마 사람들을 위해 “먹어서 응원하자”는 부흥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도 좋아하는 수산물에 손이 썩 나가지 않았다. 원전 사고와 해양 오염에 대한 우려로 마음이 어두웠던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가 계속되고 있다. ‘수산물 천국’인 일본이 바닷물에 오염물질을 공공연히 투기하는 상황에서 모순을 느낀다. 이번 방류로 방사능에 오염된 식재료가 당장 유통된다는 것은 ‘괴담’일지 모르지만, 우리 모두의 바다에 방사능 물질이 섞여 들고 있다는 건 팩트다. 미래 세대에 짐을 지우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김경화 미디어 인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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