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덩이 던져 바다 구하겠다" 덴마크 도시의 비장한 도전

신은별 2023. 10. 14.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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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별의 별의별 유럽]
⑬ 덴마크 올보르: 해양생태계 복원
편집자주
인류와 지구를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하는 유럽의 마을과 도시를 탐험하는 기획을 신은별 베를린 특파원이 한 달에 한 편씩 연재합니다.
덴마크 북부에 위치한 올보르의 레세 프리만 옌슨 시장이 지난달 10일 올보르 북쪽과 완전히 접해 있는 림 피오르드를 향해 돌을 던지고 있다. 올보르(덴마크)=신은별 특파원

덴마크 북부에 위치한 도시 올보르. 올보르는 덴마크를 관통하는 '림 피오르드'와 북쪽 면을 완전히 접하고 있다. 피오르드는 빙하기 때 빙하 침식 작용으로 생겨난 U자형 골짜기 사이로 빙하기가 끝나며 녹은 바닷물이 들어와 생성된 지형을 뜻한다. 올보르는 바다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셈이다.

실제로 림 피오르드 해안을 따라 주거지, 산업 지구 등이 자리해 있다. 공원도 있다. 그중 린드홀름 공원은 한적한 공터에서 바다를 즐기기 좋은 곳이다. 그러나 지난달 10일(현지시간) 찾은 린드홀름 공원은 평소와 다르게 주민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레세 프리만 옌슨 올보르 시장도 보였다.

옌슨 시장은 대기하고 있던 소형 보트에 올랐다. 그를 태운 보트는 림 피오르드 중간 지점으로 이동했고, 옌슨 시장은 미리 준비해 둔 돌덩이 10여 개를 바다 쪽으로 내던지기 시작했다. 지름 20~30㎝쯤인, 한 손으론 들 수조차 없는 크고 무거운 돌이었다. 돌덩이가 든 통을 다 비운 후에야 옌슨 시장은 웃으며 말했다. "이 돌이 림 피오르드 생태계를 살릴 겁니다."

'림 피오르드를 살리겠다'니, 예부터 홍합 등 해산물이 풍부하게 나는 것으로 유명했던 이곳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돌을 던져 바다를 구하겠다'는 발상은 또 무엇일까. 한국일보는 현지에서 림 피오르드에 얽힌 사연을 취재했다.

덴마크 림 피오르드에 접해 있는 올보르에서 한 소년이 낚시 연습을 하고 있다. 올보르(덴마크)=신은별 특파원

"물 바깥 세상 개발" 욕심에 해양 생태계 훼손한 인간

덴마크 노르윌란주(州)의 주도(州都)인 올보르는 북해와 카테가트 해협을 잇는 림 피오르드와 접한 도시들 중 가장 규모가 크다. 덴마크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로, 인구는 약 12만 명이다.

예전부터 올보르는 림 피오르드 덕을 톡톡히 봤다. 각종 해산물을 채취해 삶의 기반으로 삼았다. 림 피오르드를 타고 바다를 오가는 장사꾼들로 1500년대부터 일찌감치 번성했다. 림 피오르드는 올보르의 '상징'이자 '선물'이었다.

인간은 림 피오르드를 고마워하는 대신, 더 야무지게 활용하려고 했다. 산업혁명을 거치며 커진 인간의 개발 욕심은 급기야 물 밑바닥까지 뻗쳤다. 항구 등 각종 시설과 건물을 짓는 데 대량의 석재가 필요하자, 수면 아래 암석을 들어 올려 충당했다. 림 피오르드를 수역으로 활용하는 18개 지방자치단체 협력체인 '림 피오르드 협의회'(이하 협의회)는 2010년까지 림 피오르드에서 면적 830만㎡에 해당하는 암석이 사라졌다고 밝혔다.

물속에 살고 있던 생물도 암석과 함께 실종됐다. 협의회에 따르면, 림 피오르드 내 최대 수역인 뢰그스토르를 기준으로 1980년 30분 만에 20㎏의 물고기가 잡혔는데, 1993년에는 같은 시간 동안 잡히는 물고기가 1㎏도 되지 않았다.

덴마크 올보르의 수역인 림 피오르드에서 채취한 홍합의 모습. 홍합은 바닷속 불순물을 제거해 해양생태계 유지에 도움을 준다. 올보르는 암석의 실종이 홍합의 서식지 실종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올보르(덴마크)=신은별 특파원

암석 실종과 해양 생물 실종 간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것일까. 림 피오르드 생태계를 보호·연구하는 덴마크 스포츠낚시협회 소속 에릭 하르 닐슨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정리하면 이렇다. ①바닷속에서 돌들이 겹치며 생기는 공간은 많은 해양 생물, 특히 몸집이 작고 어린 물고기의 서식지이자, 먹이 저장소로 활용된다. 인간이 암석을 가져가는 건 해양 생물의 집을 파괴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②해양 생물의 또 다른 서식지인 산호초도 암석이 없어지면 사라질 수밖에 없다. 산호초는 해파리, 말미잘 등의 분비물과 유해에서 나오는 탄산칼륨이 뭉쳐 형성되는데, 보통 암석에 달라붙어 생기는 경우가 많다. 암석과 산호초를 암초라고 통칭한다. ③건설에 활용된 돌들은 주로 크기가 컸는데, 큰 돌이 사라지면 주변의 작은 돌들이 침식되거나 흩어질 수밖에 없다. 암석 채취로 인한 해양 생물 서식지 파괴가 시간이 갈수록 심해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닐슨은 "사라진 암석의 양과 해양 생물 피해 정도의 관계를 (수학 공식처럼) 명확히 규정하는 건 쉽지 않다"면서도 "암석이 물속에서 파도를 일으켜 바다를 정화하고, 바닷속 불순물을 거르는 홍합 등의 주 서식지로 활용된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피해는 추정치보다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바다 살릴 돌 돌려달라" 지자체 SOS... 400톤이 모였다

'덴마크 해역에서 암석을 임의로 채취하지 말라'는 내용의 법이 2010년 제정됐지만, 너무 뒤늦은 조치였다.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 올보르시는 지난해 협의회 및 전문가 집단과 머리를 맞댔다. 회의에서 이런 아이디어가 나왔다. "인간이 돌을 뜯어가면서 해양 생태계 파괴가 발생했으니, 그 돌을 다시 돌려받아 바닷속에 넣어 두면 어떨까요?"

올보르 거주자는 물론, 이 도시에 위치한 기업 등이 사용하고 남았거나 별다른 이유 없이 보관 중인 자연석을 최대한 활용해 보자는 뜻이었다. 올보르시는 별도 연구를 거쳐 돌을 놓았을 때 가장 효과가 좋을 것으로 판단되는 장소 4곳을 정했다.

'돌 기증'을 요청하는 올보르시의 공지는 지난해 12월 나왔다. "정원에 혹시 돌이 있나요? 기부를 해 주세요. 지름 10㎝ 이상 자연석이라면 해양 생태계 복원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덴마크 북부에 위치한 올보르의 레세 프리만 옌슨 시장이 지난달 10일 림 피오르드로 돌을 던지기 전, 돌덩이들이 통에 수북이 담겨 있다. 올보르(덴마크)=신은별 특파원

'이색 정책'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시민들은 올보르시 재활용센터를 직접 방문해 돌을 전달했다. 올보르시에서 활동하는 농민단체는 농사용으로 썼던 돌을 기부하는가 하면, 자발적으로 캠페인을 조직해 동료들의 기부도 독려했다. 폐기물 처리회사인 RGS노르딕, 올보르대병원 등 다수의 기업도 동참했다. 공지한 지 1년 만에 자연석 400톤이 모였다. 옌슨 시장이 지난달 10일 던진 돌은 바다로 돌아가는 첫 번째 돌이었다.

올보르시의 홍보도 대대적으로 전개됐다. 린드홀름 공원 안에는 림 피오르드 수역에 사는 각종 생물들을 볼 수 있는 수조관이 설치됐다. 홍합이 각종 불순물을 빨아들이는 모습을 보여 주는 행사도 열렸다. 림 피오르드에 왜 돌을 던져야 하는지 주민들에게 설명해 준 것이다.

그 결과, 주민 100명 이상이 시장의 '돌 투척' 순간을 숨죽여 지켜봤다. 올보르시 직원 클라우스 프릴라익슨은 "많은 주민이 '수십 년 전엔 돌을 채취하던 곳인데 오늘은 돌을 던지다니 신기하고 바다에 미안하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올보르시는 암초 복원 프로젝트를 내년 말까지 진행한다.

레세 프리만 옌슨 올보르 시장이 주민들로부터 기부받은 돌을 던지기 위해 보트를 타고 림 피오르드 안으로 이동하고 있다. 올보르(덴마크)=신은별 특파원

"지자체만 나서선 문제 해결 안 돼"… '시민참여'가 핵심

길게는 수백 년에 걸쳐 사라진 돌을 2년 만에 모은다는 건 불가능한 목표다. 생태계 복원은 더욱 어렵다. 그럼에도 올보르시가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건 ①그만큼 해양 생태계에 대한 관심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덴마크 영토는 7,300㎞에 걸쳐 해안선과 접하지만, 바닷속 환경에 대한 관심은 턱없이 낮은 상태다. 닐슨은 "지구온난화로 해수면이 상승하면 홍수 등 재해가 발생할 위험이 커지는데, 암초는 이를 방지하는 데에도 효과적이다. 기후변화 대처를 위해서도 해양 환경에 더욱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뿐이 아니다. ②'다 같이 힘을 합쳐야 지구를 살리고 환경을 보호할 수 있다'는 메시지도 줄 수 있다. 옌슨 시장은 "환경 보호라는 거대한 목표를 달성하려면 국제기구와 국가, 도시 수준에서 의제를 설정하는 것만큼이나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와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했다. ③올보르시는 돌을 기부하는 간단한 행위를 통해 주민들이 환경보호 책임 의식을 갖게 되며, 이는 또 다른 환경보호 행위로 이어질 것으로 믿고 있다. 실제로 많은 주민이 림 피오르드에 돌을 재배치하는 과정에서 직접 발품을 팔기도 했다.

지난달 10일 덴마크 북부 올보르에서 시 당국이 설치한 수조에 대해 한 아이가 호기심을 보이고 있다. 덴마크 북부를 관통하는 림 피오르드와 도시 북쪽 면을 완전히 접한 올보르는 인간의 개발 욕심으로 인해 망가진 해양 생태계를 복원하고자 한다. 올보르(덴마크)=신은별 특파원

올보르시는 시민들의 '선의'에만 기대지 않는다. 시민 참여를 위해선 시스템이 구비돼야 한다는 게 올보르시의 철학이다. 옌슨 시장은 "시민들에게 어떤 일에 참여할 수 있는지 안내하고, 참여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규제를 없애는 게 지자체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라고 말했다. 올보르시에는 시민들이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아이디어를 내도록 자극하고, 시민들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면 이를 정책으로 구현하는, 일명 '녹색 직원'이 존재한다.

시민 참여를 독려할 기술도 적극 활용한다. 낚시를 하다가 어망을 놓쳤거나 버려진 어망을 발견했을 경우 해당 지점을 신고할 수 있도록 협의회와의 협업을 통해 개발한 별도 애플리케이션(앱)을 운영하는 게 대표적이다. 바닷속에서 떠다니는 어망은 해양 생물 목숨을 위협하고, 분해도 잘 되지 않아 환경오염을 일으킨다. 프릴라익슨은 "림 피오르드엔 1,000개 이상의 '유령 그물'이 떠다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덴마크 올보르 해안가에서 현지 주민 비베카 호인이 지난달 10일 한국일보와 만나 "림 피오르드를 지키는 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올보르(덴마크)=신은별 특파원

'돌을 모아 바다를 살리자'는 올보르시의 외침이 '보여 주기'식 행사로 비치진 않을까. 올보르 주민 비베카 호인은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괜찮아요. '인간이 훼손한 것은 인간이 책임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간명하게 보여주니까요."

올보르(덴마크)= 신은별 특파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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