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도’ 걸으며 백성 생각, ‘여유당’ 돌아보며 다산 생각
남양주시와 함께하는
‘다산 발자취 기행’④목민심도
경기도 남양주에 ‘목민심도(牧民心道)’가 있다는 걸 아시는지. 다산 정약용의 대표 저서로 꼽히는 ‘목민심서(牧民心書)’를 본떠 이름 붙여진 ‘목민심도’는 등산객들 사이에서 ‘다산 능선’이라 불리는 구간을 포함해 남양주의 대표 산인 예빈산·예봉산·적갑산·운길산 등을 잇는 등산 코스다. ‘백성을 생각하던 정약용의 마음으로 걸어 보는 길’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일찍이 정약전·약종·약용 삼형제가 생가인 여유당(與猶堂·남양주 조안면 능내리 마재마을)에서 집 뒤 능선을 따라 오르내리며 학문의 도를 밝혔다고 전해지는 ‘철문봉(喆文峰)’을 비롯해 다산이 ‘상심낙사(賞心樂事·마음으로 감상하는 즐거운 일)’ 중 하나로 꼽던 운길산 ‘수종사’ 등을 두루 거친다.
등산 동호인들의 버킷리스트로 떠오르고 있는 ‘목민심도 종주’는 당장 실행이 어렵더라도, 곧 시작될 단풍철을 앞두고 ‘다산의 산’을 찾았다. 때마침 14일인 오늘부터 이틀간 남양주 능내리 ‘정약용유적지’와 ‘다산생태공원’ 일원에선 정약용의 생을 들여다보고, 그의 정신과 만나볼 수 있는 ‘정약용 문화제’가 열린다. 다산의 본향 남양주시와 함께하는 ‘다산 발자취 기행’ 네 번째 이야기는 다산의 산, ‘목민심도’다.
◇유배지에서 그리던 고향의 山
1801년 겨울, 전남 강진으로 유배를 간 다산은 유배 기간인 18년 동안 고향 산천이 그리울 때마다 ‘다산초당’ 뒷산(만덕산 자락)이나 ‘백련사’에 수시로 올랐다. 그곳에서 바라본 강진만(灣) 풍경은 고향 집이 있는 마재마을, 두물머리 풍경과 묘하게 닮아 위로가 되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200년이란 시간이 흘러 두물머리엔 팔당호가 생기고, 강진만 일부도 간척이 돼 풍경이 많이 변했지만, 낯선 유배지에서 다산이 애써 찾아낸 강진만과 닮은꼴 고향 풍경은 어디였을까.
다산을 연구하는 김형섭 남양주시 문화예술과 다산정약용팀장은 “정약용유적지에서 차로 5~10분 거리에 있는 예빈산(590m)과 예봉산(683m)은 다산이 생가가 있던 마재마을(능내)과 덕소를 오갈 때 애용하던 육로였다”며 “다산초당 뒷산에서 강진만을 보며 떠올린 풍경은 아마도 예빈산 견우봉이나 직녀봉·예봉산 철문봉 부근에서 바라본 마재·두물머리 풍경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철문봉은 다산이 강진 유배길에 오르기 전 형들과 능선을 거닐며 학문을 논의했다 알려진 곳이니 개연성이 있다. 다산이 꿈에 그리던 고향 전망과 만날 수 있다고 하니 아니 오를 수는 없는 일. 그 길로 예빈산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마재마을 전망대’를 찾아서
다산의 고향 마재마을과 두물머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 가려면 예빈산을 통해야 한다. 경의중앙선 팔당역에서 시작해 직녀봉까지 등산로를 이용하면 2시간 넘게 걸린다. 굳이 등산을 하지 않더라도 지금은 천주교 묘역이 들어서 있는 ‘천주교 신당동 성당 소화묘원’(이하 소화묘원) 정상부 부근에만 가도 유배 시절 다산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고향 풍경을 가늠해볼 수 있다. 포장도로를 따라 산 중턱쯤 자리 잡은 소화묘원 정상부에선 마재마을은 물론이고 양수리 시내, 강 건너 광주(廣州) 분원과 양평까지 보인다.
‘내륙의 바다’ 팔당호와 사방으로 이어진 물길 덕분일까. 그러고 보니 팔당호 한가운데 떠 있는 족자섬을 포함해 주변 산은 마치 섬처럼, 마재마을과 두물머리 일대는 바닷물이 파고든 ‘만(灣)’처럼 보인다. 강진만 풍경과 퍼즐이 얼추 맞춰지는 그림이다. 내친김에 목민심도(거치는 코스에 따라 25~35㎞)의 코스 중 하나인 직녀봉으로 이어간다. 소화묘원 정상부 등산로 이정표에서 예빈산 정상인 직녀봉까지는 1.7㎞다. “소화묘원 등산로 이정표에서 시작해 승원봉과 견우봉을 거쳐 직녀봉에 오르는 코스는 짧고 강렬한 등산을 선호하는 이들이 알음알음 이용하는 구간이긴 하나 등산 초보자라면 결코 만만하게 볼 것은 아니다”라는 게 먼저 나선 등산객들의 전언이다.
소화묘원 뒤편으로 난 등산로는 길이 다양해 등산의 맛을 느낄 수는 있으나 경사로가 이어지는 데다 비탈이 심해 미끄러운 구간도 심심찮게 나타난다. 중간 쉼터에서 등산화 끈을 바짝 조이고 ‘승원봉’ 부근에 오르면 소나무 가지들 사이로 검단산이, 멀리는 서울 잠실의 ‘롯데월드타워’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후 ‘맛보기’ 해주듯 한 걸음씩 올라갈 때마다 팔당호와 일대를 두른 산 능선이 우거진 나뭇가지들 사이로 빼꼼히 모습을 드러냈다가 사라지며 기대감을 높인다.
등산한 지 1시간쯤 지났을까? 다리에 힘이 풀릴 때쯤 견우봉 부근에 다다르니 비로소 시야가 확 트이면서 팔당호가 눈앞에 펼쳐진다. 힘들게 산에 오른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특별한 풍경이다. 시간만 잘 맞추면 ‘인생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아직 산천에 초록빛이 강하지만, 차츰 조금씩 물들어가는 가을 산을 발아래 두니 호연지기가 느껴진다. 다산이 “열수(한강) 가에 산다”는 걸 자랑스러워했을 만한 풍광이다. 예빈산과 예봉산은 서울 근교 일출 산행·운해(雲海) 전망 명소이기도 하다.
◇다산의 정원 ‘수종사’
다산이 고향을 떠올린 강진만과 닮은꼴 풍경이 또 하나 있다. 운길산(610m) 산허리 8분 능선쯤 해발 400m 부근에 자리 잡은 천 년 고찰 ‘수종사’ 마당에서 바라보는 마재마을이다. 이곳에서 바라본 풍경 역시 언뜻 다도해를 연상케 한다.
여유당에서 직선으로 6㎞ 정도로 가까이 있는 수종사는 다산이 시를 통해 ‘나의 정원’이라 했을 만큼 자주 찾던 곳이기도 하다. 김형섭 팀장은 “다산은 손님이 오면 접대 장소가 마땅치 않아 수종사에서 만나곤 했다”며 “초의선사, 홍현주 등 조선 후기에 종파와 당색을 가리지 않고 사회 변혁을 꿈꾸던 당대 선각자들이 수종사를 즐겨 찾은 이유도 다산 때문이었다”고 했다. 덕분에 수종사엔 다산과 관련한 즐거운 일화가 곳곳에 숨어 있다. 다산 또한 진사시 합격 후 ‘유수종사기(游水鍾寺記)’를 쓰는 등 수종사와 관련한 글을 여러 편 남겼다.
다산의 시대 때 사회 변혁을 꿈꾼 이들의 교유의 장은 시간이 흘러 이제 근교 나들이, 힐링 명소로 자리 잡았다. 계절이 따로 없이 수종사로 향하는 발걸음이 이어지지만, 이맘때면 500여 년 수령의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드는 풍경을 보기 위해 찾는 이들이 많다. 경내 다실인 ‘삼정헌’에서 전망을 감상하며 차 한잔하고 있노라면 신선이 된 기분이다. 총 9시간이 넘게 걸리는 목민심도 종주 시 수종사에서 마침표를 찍는다면 하산 시 멋진 일몰은 덤으로 감상할 수 있다. 차량 이용 시 진중리 ‘조안보건지소’를 통해 일주문 근처 주차장까지 진입이 가능하다. 도보 여행객은 송촌리 ‘연세중학교’에서 ‘한음의 별서 터’를 지나는 등산로를 이용하는 게 무난하다. 한편 운길산과 비교적 가까이 있는 용문산의 단풍은 10월 말(용문산 단풍 관측목 기준), 운길산 일대의 단풍도 그 즈음 절정(단풍 50% 이상)에 접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독백탄’ 그림 속을 걷다
마재마을 일대 산의 능선을 따라가는 목민심도 코스를 종주하려면 등산 고수라도 9시간은 족히 걸린다. 다산 발자취 기행에 의의를 둔다면 의미를 되새기며 일부 코스만 거닐어도 충분하다. 다산의 동선을 따라가 보려면 생가 ‘여유당’이 자리한 정약용유적지를 출발점으로 삼을 만하다. 정약용유적지에서 소화묘원 입구까지 도보 이용 시 최단 거리는 3㎞ 정도다. 다산생태공원, 북한강 자전거 길을 따라가다 ‘봉안터널’ 진입 전 소화묘원 방향으로 이어가는 길은 천주교 묘역을 거쳐야 하는 코스의 ‘특수성’이 있지만, 열수(한강)를 가까이 두고 가을 운치를 만끽하며 걷다가 묘역의 포장길 따라 예빈산 중턱까지 올라가기에 수월한 편이다.
해마다 ‘정약용문화제’가 열리는 정약용유적지와 다산생태공원 부근 족자섬도 지나칠 수 없다. 다산이 “나의 산”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좋아한 남자주(藍子洲)다. 김형섭 팀장은 “다산의 글 속엔 남자주가 자주 등장하는데, 다산은 ‘높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산이 아니며 낮다고 해서 산이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며 “‘올랐을 때 보여지고 느껴지는 것이 있으면 그게 바로 산’이라는 다산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족자섬은 조선 시대 한강의 명승들을 그린 겸재 정선의 ‘경교명승첩’ 속 ‘독백탄’에도 등장한다. 그림엔 한강에서 족자섬과 마재마을 일대를 바라본 풍경이 담겨 있다. 독백탄 속 남자주는 당시 나지막한 산이 있던 곳이나 팔당댐 건설 후 팔당호가 조성되면서 지금은 섬이 되어 봉우리만 보인다. 흥미롭게도 독백탄 속 강변 마을 일대를 병풍처럼 두른 산은 지금의 목민심도 코스와 겹친다. 목민심도를 종주하면 독백탄 속 산 능선을 두루 거닐어 본 셈이나 다름없다.
어스름 해 질 녘엔 다시 여유당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정약용문화제’에 앞서 지난 5일부터 가을 ‘여유당 야행’(10월 말까지 매일 오후 5~8시)이 시작됐다. 여유당 앞마당엔 청사초롱 대신 둥근 보름달이 마중 나온다. 달빛 아래 그야말로 영화같은 삶을 산 다산의 이야기가 소곤댄다. 정약용문화제의 주무대로 변신한 여유당 마당 주변에선 14~15일 이틀 동안 다산의 정신을 기리는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기념인물인 다산과 만날 더없이 소중한 기회다.
[ ‘다산 도시락’ 먹고 ‘여유당’으로 가을 소풍 가볼까? ]
‘정약용문화제’ 알차게 즐기기
찰밥에 호박전과 새우튀김. ‘1만원의 행복’을 담은 ‘다산 도시락’은 37회를 맞는 올해 ‘정약용문화제’(14·15일)에 처음 등장하는 나름 신선한 아이템. 주최 측은 “다산이 평소 즐겨 먹던 메뉴로 구성한 소박한 도시락”이라고 했다. 호박전은 실제로 다산의 종가에서도 대대로 제사상에 올리고, 평소에도 손님 접대용으로 즐겨 내는 음식 중 하나라고. 문화제 성공을 기원하며 마을 부녀회 등 주민들이 합심해 야심 차게 구성했다는 도시락은 피크닉존에서 사 자유롭게 버스킹 공연을 감상하며 맛볼 수 있다.
올해 ‘정약용문화제’는 이 다산 도시락처럼 행사 하나하나에 다산의 정신을 심어놓은 듯하다. 아내 홍혜완의 노을빛 치맛자락에 쓴 편지첩 ‘하피첩’을 모티브로 한 전시, 포토존이 들어서고, ‘문예대회’ ‘캘리그라피 다산 가훈 쓰기’ 행사 하나에도 무더운 여름에 마을 아이들을 위해 글짓기 대회를 열었다던 다산의 이야기를 입혔다. 차를 즐겼던 다산처럼 차향에 빠져볼 수 있는 다례 교육, 시음회도 마련한다.
메인 무대는 여유당이 있는 정약용유적지다. ‘조선의 멀티플레이어’ 정약용의 삶과 개혁 정신을 담은 ‘뮤지컬 약용’은 14일 오후 4시에 단 1회 공연하니 놓치면 아쉽다. 관람객이 참여하는 역사 연극 ‘정약용의 다섯 가지 직업’도 이틀간 오후 2~3시에 진행한다. 여유당 안팎에서는 ‘동백꽃은 지고 봄은 오고’ 전시가, 정약용유적지 주변에선 취타대 행렬, 마술쇼 등이 축제 분위기를 돋운다. 일부 사전 신청자에 한해 진행하는 행사와 플리마켓 등 외부 참여 행사를 제외하고 이틀간 정약용유적지 일대에서 열리는 공연 및 전시 관람, 체험 행사 참가는 모두 무료다. 축제 당일 기상 상태에 따라 운영 상황은 변동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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