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백호부터 릴 우지 버트까지… 뮤직 페스티벌 빅뱅
DMZ 근처로도 확장된
음악 페스티벌 전성시대
#1. “지금부터 페스티벌 최고령 가수인 제가 공연을 시작하겠습니다. 약간 졸릴 수도 있습니다.”
지난달 3일 강원도 철원군 고석정에서 열린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축제의 마지막 날 청바지에 흰 셔츠를 입은 최백호(73)가 무대에 등장하자 객석에 있던 20~30대들이 뜨거운 함성을 질렀다. 그가 “궂은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로 흘러가는 히트곡 ‘낭만에 대하여’를 부를 때는 “꺅!” 소리와 함께 떼창이 들렸다. 관객들은 손가락 세 개를 들어 ‘사랑한다’는 표시를 하고, 영상을 촬영해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 올렸다. 최백호는 곡을 소개할 때 “젊은 여러분은 모르겠지만”이라며 운을 띄웠으나, 관객들은 “알아요! 좋아해요!”를 외쳤다. 흥겨운 리듬의 ‘영일만 친구’를 부를 때는 다들 ‘꼬리잡기’를 하며 즐겼다. 20대 류모씨는 “이것이 성인 가요의 정수!”라며 양손 엄지를 들어올렸다.
#2. “푸처 핸즈 업! 원 투 스리 포!”
지난 8일 서울 성동구 서울숲 삼표 레미콘공장 부지에서 열린 ‘원유니버스 페스티벌’. 올해가 1회인 이 페스티벌의 마지막 무대에는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한 미국 유명 래퍼 릴 우지 버트(28)가 등장했다. 첫 내한 공연으로 신생 페스티벌을 선택한 그는 ‘배드 앤드 부지’ 등 자신의 히트곡을 1시간 가까이 불렀다. 세계적인 수퍼스타를 페스티벌에서 만나 신난 국내 힙합 팬들은 ‘모시핏(moshpit·원을 만든 후 치고받으며 에너지를 발산하는 문화)’을 하며 즐겼다. 이 페스티벌에는 1980년대 힙합을 대표하는 그룹 런디엠시의 멤버 DMC(59)가 박재범과 합동 공연도 펼치며 힙합 탄생 50주년을 기념했다. 칸예 웨스트·드레이크와 함께 얼터너티브 R&B 장르의 태동에 큰 영향을 끼친 키드 커디(39)도 일본 힙합 그룹 데리야키 보이즈와 함께 ‘퍼수트 오브 해피니스’를 불렀다. 여기가 서울인지, 뉴욕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다양해진 라인업
국내 음악 페스티벌의 반경이 넓어지고 있다. 1996년 음반 사전심의제도 폐지를 기념하기 위해 서울대 문화관에서 열린 ‘자유’로 시작된 국내 페스티벌은 록에서 힙합으로, 인디뮤직에서 EDM으로 그 장르가 확장됐다. 장소도 부산에 DMZ로, 보령에서 남양주로 확대됐다. DMZ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이 열린 곳은 군사분계선에서 불과 20여km 떨어진 신라 진평왕이 세운 정자 고석정이었다. 걸 그룹 뉴진스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작곡가 250은 이곳에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불렀다. 지난 8월 펜듈럼·크루엘라·서드파티 등 세계적인 EDM 뮤지션들이 출연한 ‘월드디제이페스티벌’이 열린 곳은 충남 보령시 대천해수욕장이었다. 서울·부산에 이어 1만8000 관객을 모으며 성황리에 끝났다.
페스티벌을 위해 내한하는 가수의 라인업도 화려해졌다. 올해로 23년째인 ‘부산국제록페스티벌’에는 Z세대를 대표하는 팝스타 ‘더 키드 라로이’가 나왔다. 지난달 23일 서울 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에서 열린 ‘아트 포레스트 페스티벌’의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건 소프라노 조수미였다. 자우림의 김윤아, 악뮤의 이찬혁에 이어 그가 등장해 ‘아베마리아’를 부르자 한 관객은 “이탈리아로 순간 이동한 것 같다”고 했다.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한 자라섬재즈페스티벌에는 현재 재즈 신을 이끄는 리처드 보나와 세계적인 재즈 기타리스트 줄리언 라지가 출연했다.
◇K팝 성장과 Z세대
국내 음악 페스티벌이 커진 배경에는 먼저 K팝의 성장이 있다. 과거에는 세계적인 팝스타들이 아시아투어를 할 때 일본은 가도 한국은 들르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 가수·관객들과 만나기 위해 일부러 한국을 찾는다. 특히, 릴 우지 버트는 걸그룹 여자친구(현 비비지)의 오래된 팬이다. 내한 확정 소식에 팬들은 “여자친구 보러 오는 것 아니냐”며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였다.
해외 경험이 많은 Z세대는 페스티벌을 더욱 익숙하고 풍부하게 즐긴다. 강남 버닝썬 사건으로 클럽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진 것도 흥이 많은 Z세대들을 페스티벌로 끌어들인 요인으로 분석된다. 월디페·송크란 등 DJ페스티벌에서 클럽 문화를 즐기고, 자라섬과 더에어하우스에서 캠핑과 글램핑을, 아트포레스트와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등에서는 피크닉을 한다는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억눌렸던 수요가 반작용으로 더 커지며 페스티벌 산업이 성장하기도 했다.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은 지난해와 올해, 연달아 최다 관객을 기록했다. 업계 관계자는 “이는 예산이 줄어들고, 해외 뮤지션 라인업이 갈수록 악화되는 가운데 낸 성과”라고 했다.
그러다 보니 최근 주말마다 전국 각지에서 음악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다. 지난 주말에는 ‘부산국제록페스티벌’과 서울숲 ‘원유니버스페스티벌’ 외에도 잠실 올림픽공원에서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라이브 페스티벌’, 경기도 남양주에서 ‘더 에어 하우스 뮤직 페스티벌’ 등이 동시 다발적으로 개최됐다. 그러나 이렇게 페스티벌 산업이 우후죽순 커지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달 초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에서 열기로 했던 ‘우드스탁 뮤직 앤 아트페어’는 일정 연기, 장소 변경 등 난항을 겪다 결국 3주 전 취소 결정을 내렸다. 경기 하남시 미사경정공원에서 지난달 개최 예정이던 ‘슈퍼팝 2023 뮤직 페스티벌’은 무대 설치 중 사고가 발생하며 공연을 취소했다. 차우진 대중음악평론가는 “음악 페스티벌 문화가 질적으로 더 성장하려면 주최 측을 신뢰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검증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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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러 다니는 열정으로 공부를 했으면 하버드대를 갔지!”
어릴 적부터 부모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동료들과 퇴근 후 한잔하고 싶은데 어디가 맛집인지 모르겠다고요? 친구, 연인과 주말을 알차게 놀고 싶은데 어디가 핫플인지 못 찾으시겠다고요? 놀고 먹는데는 만렙인 기자, 즉흥적인 ENTP이지만 놀러갈 때만큼은 엑셀로 계획표를 만드는 기자가, 직접 가보고 소개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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